이제는 해야 하지 않겠냐
MBTI 검사를 하면 I가 90%가량 나오는 극 내향성의 사람이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함께하는 여행도 좋아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도 기꺼이 좋아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지독한 내향성의 인간이기에 크게 친하지 않거나, 편하지 않거나, 4명 이상의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주저하는 편이고 애초에 가지 않는다. 가더라도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끼며 겉으로는 웃고 있을지라도, 속으로는 울부짖으며 집에 가고 싶다고 오열하는 찌질하고 찌질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사랑하냐, 사랑하지 않느냐 택 일을 해야 한다면 여행을 사랑하는 편이다. 불편한 여행에서도 무언가를 얻어가는 여행이 되기 마련이다. 내가 이렇게 여행에 대해 지리멸렬하게 쓰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여행에 대해서 쓸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박상영 작가의 '순도 백 프로의 휴식'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읽었다. 교보문고 잠실점에서 잠깐 책이나 읽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펼쳤던 그 책을 교보문고 대리석 맨바닥에서 단숨에 해치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이런 책을!
나에게 여행 메이트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나의 대학시절과 이십 대 중후반을 함께 공유했던 홍씨다. 홍씨는 나와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이다. 큰 결은 같지만 작은 가지가 다르다고나 할까. 나와 홍씨는 간호대학에서 그렇게 희귀하다는 복학생이었다. 간호학과는 다른 학과와 다르게 남학생을 제외하고는 휴학생이 거의 없다. 취업을 하기 위해 휴학을 많이 하는 학과와는 다르게 취업의 턱이 낮기 때문에 다른 대외활동 및 취업준비를 위한 휴학이 딱히 필요 없기도 하고, '간호학과 갔으면 당연히 간호사 해야지.'라는 인식, 더불어서 전문적인 특성 때문에 앞을 보는 경주마처럼 본인의 전공 외에 다른 것들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어서 인 것 같다. (나의 뇌피셜) 추가로, 휴학을 하고 싶었지만 휴학하게 되면 후배들과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학업을 이어갔다는 동기들의 말도 있었다.
무튼, 그리 희귀한 복학생 (무려 2년이나 휴학한) 이 그 해 우리 과에는 둘이나 있었다. 나와 홍씨였다. 나와 홍씨는 2년간 학교를 다니다가 자꾸만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는 성향에 같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했었고, 둘 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 하고 복학을 했다. 휴학을 하기 전엔 홍씨와 그다지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홍씨는 사실 입학당시 우리 학과에 1등으로 들어온 장학생이었다. 생긴 것도 꽤나 착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였기에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시험에 합격해서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휴학할 당시 이 과에 돌아오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휴학을 했기에 홍씨와 내가 다시 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홍씨도 마찬가지였겠지만.
2015년 3월 2일.
복학을 한 첫날, 홍씨 또한 나처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나를 보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약속한 듯 나도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홍씨는 높게 머리를 묶고 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홍씨가 맞나,라고 갸우뚱했다. 휴학 전 교양 수업을 같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와 뭔가 다른 분위기와 모습이었다. 그 당시 홍씨는 수업시간에 매일 졸던 나를 말없이 깨워주고, 나와 이야기를 할 때에는 들어주는 편이었다. 몇 년 만에 만난 홍씨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무얼까, 조금은 아저씨 향기가 나는 듯도 했다.
나는 그 당시 무참히 패배하고 돌아온 패잔병의 심정으로 복학을 했었다. 복학 전 거의 우울증 말기의 심정이었다. 웃기게도 사실 패잔병의 심정일 것도 없던 것이, 합격선에 가까운 점수도 아니었다. 매일 오전 10시까지 잠을 잤고, 도서관에 가면 점심을 먹고 식곤증에 취해 낮잠을 잤으며, 수험생은 자고로 잠을 잘 자야 하고 체력이 좋아야 한다며 밤 10시면 베개에 머리를 눕히고 핸드폰을 열두 시까지 하다가 잠이 들었다. 나의 머리도, 나의 의지도 합격할 자격이 없었다. 그저 다니기 싫던 학교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죽도록 스트레스만 받다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질질 학교에 끌려갔다. 홍씨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애초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울의 꽤나 알아주는 대학을 포기하고 이 학교에 입학했으며, 휴학 후 시험에 실패하고 학교에 돌아오는 게 나만큼이나 싫었지만 그녀는 합격선에 가까운 점수였고, 잘못된 원서질에 합격을 놓쳤었다. 홍씨보다 낮은 점수로도 합격한 사람 있었을 정도로 그녀의 점수는 상위권이었다. 때문에 홍씨는 더더욱 마음이 쓰라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홍씨는 더 이상 집에 박혀 공부만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 복학을 했다고 했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그렇게 패잔병으로 재회한 홍씨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언제나 수업을 같이 듣고,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를 같이 마시며 금요일쯤엔 수업이 끝난 후 술을 마셨다. 곧 주말에도 가끔 만나고 전화도 하는 사이가 되며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서로의 연애사와 가정사까지 알게 된 사이가 되었다. 그 당시 서로 만나던 애인과 헤어지면 홍씨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학교 근처 이자카야에서 소주 서너병을 까고 네발로 집에 기어 들어갔다.
그런 홍씨와 나는 대학교 4학년 어느 날,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다. 간호대학생의 4학년 2학기란, 대부분 취업이 끝나고 그저 출석을 채우기 위해 학교에 가고, 매일 무슨 점심을 먹고 수업이 끝나면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던 때였다. 아마도 근처 분식집에서 쫄면과 김밥을 시켜 기다리며 여행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유행처럼 주변의 친구들이 대학 4년 동안의 8번의 방학 중 한 번은 삼사 주에 걸친 유럽여행을 다녀오곤 했었다. 홍씨가 나에게 먼저 물었다.
"야, 너 나랑 진짜 갈래?"
매일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타듯 하는 홍씨의 눈에 0.1초 정도 총기가 어렸다. 나의 지독한 내향성은 내가 홍씨와 진정 여행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일 초정도 하게 했다. 일 초 정도 고민 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출국일자는 간호사 국가고시가 끝난 삼 일 후였다. 여행을 결심한 때는 2학기 수업을 듣고 있던 시기였기에 시간은 넘치고도 남았다. 이 넘치고도 흘러 흘러넘치는 시간 동안 미래의 내가, 미래의 홍씨가 여행을 계획하면 될 일이었기에 우리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또한, 우리에게 국가고시란, 마치 자격증 취득 같은 거였다. 매해 합격률은 백 프로였고, 공부 지지리 안 하던 선배들도 철석같이 붙어서 병원에 버젓이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심지어 우리는 국가고시가 끝난 다음날인 토요일에 출국하는 비행기 표를 예매하려 했었다. 그래도 조금은 쉬어가자는 둘 중 누군가의 말에 월요일로 출국을 미뤘다.
언제나 그렇듯, 합격자는 합격했기에 말이 많다. 결국 나만 진심이었다. "야, 공부 안 해도 돼." "학기 중에 수업 들었으면 이미 붙은 거야." "얘들아, 국가고시를 누가 공부하니." 이런 허세 섞인 말들을 수 없이 들은 우리는 더더욱 국가고시를 만만히 생각했고, 홍씨와 나는 학기 중에 널널이 놀다가 겨울방학 시작되면 그때부터 공부하면 된다며 서로 혹은 자신들을 위한 말을 해가며 위로했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되어서는 야, 한 달 전에 하면 된대, 삼주 전에 하면 된대... 결국 우리는 국가고시 전 날까지 울며 벼락치기를 하다가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데리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홍씨와 나는 국가고시 준비 중에 삼 주간의 유럽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단 한번 만났다.
누가 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는 해야 하지 않겠냐."
각자 국가고시 준비를 하다가 둘 중 누군가가 '이제는 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런 레퍼토리는 이후 여행에서도 매번 등장했다.) 두 말 않고 대흥동 어딘가의 카페에서 만났다. 언제나 우린 둘 다 알고는 있어도 입에 올리고 있지 않다가, 누군가 한 명이 이제는 해야 하지 않겠냐 말을 입에 올리면 두 말 않고 대동단결하는 구석이 있었다.
홍씨와 나는 노트북을 갖고 카페에서 만나 각각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해 예매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사실 넷상으로 만났어도 일사천리로 진행됐을 계획이었다. 삼주동안 진행될 여정을 계획하는 동안 홍씨와 내가 의논 비슷하게 한 말은 "여기 괜찮은 것 같은데, 어때? 한다?" "어, 오키." 이것뿐이었다. 두세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갈등도 없이 우리는 모든 계획과 예매를 끝냈다.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