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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글 Dec 23. 2022

응급실 간호사와 중환자실 간호사

 며칠 전 예상치 못 한 휴직 연장에 덜컥 의료봉사를 신청했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지만, 막상 함께 파견에 나가자는 연구원님의 문자를 받았을 때도 설렘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왜냐하면 공모 대상은 중환자실 간호사였다. 난 응급실 경력만 있기에 애초부터 지원자격 미달이었다. 허나 몇 년 전부터 맘 속에 담아두었던 봉사였기에 용기를 내 메일을 보냈다. 내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자친구는 아마도 지원자 미달이 아니었을까라는 대답을 내놔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내 생각도 그리 다르진 않았다. 좀처럼 없는 소아환자를 다뤄본 경력이 있다는 사실로 뽑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그리 두려워할 정도로 중환자실과 응급실은 다르냐? 그렇다. 중환자실 간호사와 응급실 간호사는 환자를 보는 각도도, 업무 스타일도 굉장히 다르다. 응급실은 그때 그때 내원하는 환자들을 빠르게 상태를 사정하고 그에 따라 응급한 처치를 우선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후 결정되는 플랜에 따라 입원 보내거나 퇴원을 시킨다. 그렇기에 빨리빨리가 몸에 배었고 (모든 간호사가 그렇고, 모든 한국인이라면 또 그러할 것이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꼭 왜 오늘 와야만 했는지(간호사가 왜 자꾸 "지금" 왔는지에 집착한다고 해도 화난 것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가 가장 궁금하고 중요하며 정말 응급한 상황만 처리하고 어디론가 환자를 보내버린다. 그렇기에 응급실 간호사는 대게 성격이 급하고(사실 나만 그럴 수도 있다.) 짧은 순간에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또한, 다양한 케이스를 접해왔기에 아는 것은 많을 수 있으나 깊게 알기 어렵다. 더불어 추가하자면, 온갖 진상들을 마주해왔기에 본능적인 자기 방어적 시니컬함과 무심함이 특징이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꼼꼼하고, 꼼꼼하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환자에 대해 빠삭하게 알 수밖에 없기에 똑똑하다. 담당 환자를 head to toe로 기본 30분에서 1시간마다 상태를 확인하고 사정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응급실은 보호자가 있기 때문에 "환자분 약 좀 먹여주세요." "기저귀 좀 갈아주세요." 할 수 있지만, 중환자실은 간병인, 보호자 없이 전인 간호를 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똥, 오줌을 포함해 모든 것을 알 수밖에 없고 알아야 한다. 자신의 환자에게 동시에 투약되는 많은 승압제와 약물을 눈감고도 외울 수 있을 것이며 중심정맥관을 비롯한 많은 수액 라인들을 야물딱지게 척척 정리해 놓을 것이다. 추가로 거의 모든 환자가 진정제를 맞고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기에 보호자나 환자의 컴플레인을 마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코로나로 많은 격리 환자가 생겨 격리실에 들어갈 때도 사뭇 다를 수 있다. 사실, 응급실이고 중환자실이고 격리환자를 간호하다 보면 보호장구만 착용하다가 허송세월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중 응급실은 미치도록 다양하고 많은 환자가 오고 가고 하다 보니 여기서도 나를 부르고 저기서도 나를 부른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 격리실에 들어갈 때 위 사진의 빵오빠처럼 최소한의 보호장구만 하고 가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보호장구를 착용하면서 전화를 받고, 환자 교육을 하며, 발은 환자에게 이미 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할 것은 많은데 한가롭게 보호장구 착용할 시간이 없다. 특히나 격리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환자 모니터 알람이 울리면서 산소포화도 수치가 무섭게 떨어지는 것을 보면 보호장구고 뭐고 그냥 달려가게 되는 것이 성격 급한 한국인의 본능이다. 위 사진은 정신없는 시장통 같은 응급실에서 간호사가 격리실에 들어갈 때와 꼼꼼하고 원칙을 중요시하는 중환자실 간호사를 비교한 짤이다. 저 짤을 처음 봤을 때 배꼽을 잡고 웃었다. 보호장구 좀 착용하라는 수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더럽게도 안 듣는 소싯적의 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물 좀 넣어주라고 하는 격리실 환자에게 갈 때는 격리실 문이 열릴 때를 틈 타 보호자에게 물병을 던져주기도 했다. 모든 의료진분들, 아무리 바빠도 모두를 위해 보호장구를 열심히 착용합시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응급실은 무수한 환자를 수술장으로 보내지만 수술을 한 환자가 도로 응급실로 내려오지 않는다. 내 평생 그러한 레전드 같은 일화는 '그런 적이 있었다더라'라고 이솝우화처럼 듣기만 했다.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수술을 끝낸 환자를 케어해 본 적이 없다. 수술 끝나고 나오면 그냥 마취가 깰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상과는 다르게 수술 후 간호는 너무나 중요해서 국시에도 매일 나오는 단골 문제다.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의 의식 사정, 수술부위 사정, 출혈 양상 사정. 어떤 수술을 했느냐에 따라 어떤 것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 달라진다. 이번 봉사활동도 모집 대상이 중환자실 간호사라는 것은 한마디로 심장수술을 막 하고 나온 환자들을 집중 케어할 수 있는 간호사를 뽑는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나는 파견을 같이 가자는 문자를 받고도 불안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을 것 같고 전전긍긍 눈치만 보고 있을 등신 같은 내가 그림처럼 선명해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의 욕심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급습했다.


"나 있잖아. 막상 무서워. 흐흐"

"눈치껏 해야지, 뭐. 별 거 있냐."


 나 또한 그렇지만, 내 친구들은 절대 마음에 없는 위로 따위는 하지 않는다. 충청도 특유의 '어떻게든 되겄지, 뭐 별 거 있냠마'. 그리고, 친구들의 위로에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던 와중에 아프리카에 가기 위한 황열 예방접종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다가왔다. 이 불안감이 제거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안도하고 설레고 말았다. 과연 나는 코트디부아르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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