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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Feb 02. 2024

[시골 쥐의 서울 생활] 03. 계절학기 - 리뷰

중간, 기말이 끝나고 주관적으로 훑어보는 계절학기 내용과 소감

# 2023. 12. 27. ~ 2024. 01. 17.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쉽지 않은 수업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가 우선 쉽지 않은 일이다.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 한 번도 일어나본 적 없는 시간인 7시에 몸을 일으키려니 머리가 격하게 다시 잠을 청했다. 미리 맞춰둔 알람 수십 개 중 절반 정도가 울린 뒤에야 겨우 움직이는 데 성공하고, 정신없이 준비하다 집을 나서곤 했다. 늦잠이 그렇게 고프더라. 다만 아침 수업을 신청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만약 오후 수업을 신청했다면 늦잠 자고 일어나 수업을 갔을 텐데, 그러면 수업이 끝나고 나면 어느새 저녁이 되어버린다. 서울까지 왔는데 무언가 할 수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 버리면 너무 아쉽잖은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침 수업이 끝난 후 오후 시간대에 크게 뭘 한 적은 없는 듯하다. 에잇...)


 사실 막 일어났을 때에는 다시 잠을 자려 난리를 치는 내 머리 상태와는 달리, 화장실 가서 머리 한 번 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개운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아침에 등교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중요한 건 그렇게 깨운 잠을 다시 청하는 무시무시한 요인이 또 있다는 것이다. 바로 교수님이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당최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건지 파악할 수가 없다. 개념의 예시를 들려고 비유적 표현을 쓰시는데, 그 비유적 표현으로부터 딴소리들이 시작된다. 딴소리가 막 이어지다 보니, 아침이라 졸린 나는 '아, 별로 안 중요한 내용이네...' 하며 졸기 시작한다. 그런데 잡설을 늘어놓던 교수님이 갑자기 PPT 내용으로 급선회를 하신다. 졸고 있어 반응 속도가 느린 나는 본론으로 넘어갔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허겁지겁 필기를 한다. 대부분의 수업시간이 이런 메커니즘으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면 길게 내쉬는 한숨과 어질어질한 상태로 강의실을 나서는 머리는 덤.


열심히 공부하는 척하며 찍어본 연세대 도서관 책상과 중간고사 직전 찍은 교수님의 글씨.


 새해가 시작되고 중간고사가 나흘 가량 남은 상황에서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했다. 총 7개의 PPT를 보고 공부해야 했는데, PPT가 무슨 소리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PPT에는 대개 개념어들과 그 PPT 내용을 정리하는 말이 나와 있었는데, 정작 개념어를 부연 설명하는 내용은 없어 교수님의 말씀을 수업 시간에 알아듣지 못했다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구태여 교과서 사는 게 아까워 사지 않고 있었는데, 교과서라도 없으면 공부가 안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구매한 기억도 난다. PPT의 개념어를 확인하고 수업 내용을 복기한 다음, 교과서를 펼쳐 그 내용이 나오는 곳을 찾아 부리나케 읽고 A4용지에 볼펜으로 휘갈겨 정리하는 수고도 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무색하게도 중간고사 문제들은 지나치게 쉽게 나오고 말았다. 객관식 사지선다는 수업을 들었으면 풀 수 있을 정도, 주관식 문제는 PPT 한 번 훑었으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정도였고, 그나마 변별을 준 뒷부분의 서술형 문제도 다들 빠르게 적고 사십 분이 채 되지 않아 대부분 강의실을 빠져나갈 정도였다. 


 기말고사는 그래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공지하시기를 딱 두 문제의 서술형 문제를 낸다시기에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을 다 꿰는 문제가 나오나 걱정했는데, 웬걸 기말고사는 오픈북이라고 덧붙이셨다. 사실 이정도면 수업을 조금 들었다면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안 보고 가면 시험 때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까봐 PPT 정도는 훑고 갔다. 


기말고사 시험지와 답안지. 모든 전자 기기가 다 허용이니 이런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기말고사 문제 중 하나는 청소년에 대한 이슈를 다룬 두 기사 사례 중 하나를 선택해서 기질(organic), 개인내(intrapersonal), 개인간(interpersonal), 상위 맥락(superordinate)에서 분석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최근 이슈가 되었던 촉법 소년에 관한 기사를 골라 답안을 적었다. 촉법 소년이 어떻게 기질적, 그러니까 유전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지, 부모와 친구들에 의한 개인내, 개인간의 맥락에서는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스마트폰의 보급과 미디어의 발달로 말미암은 사회 변화로서 상위 맥락이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서술했다.


 적으면서 여운이 남았던 부분은 기질적, 개인내 맥락에서 촉법 소년을 분석할 때였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할 수 없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나는 비행 청소년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반사회적인 특성을 물려받으며, 자라날 때는 부모의 폭력과 불화에 놓인 채 비행 청소년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청소년들에 의한 범죄로 세상이 청소년들을 탓할 때, 그들의 부모나 그들이 놓인 환경을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고 느낀다. 천종호 판사의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을 읽은 적이 있다. 법정에 선 아이들을 서슴없이 꾸짖고 무거운 처벌도 마다하지 않는 천종호 판사가, 오히려 무조건적인 엄벌주의에 반대하며 청소년들의 교화를 외쳤던 이유를 여기서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었다.


 

대학 생활 중 두 번째 에이쁠! 우리 학교는 에이쁠이 귀한 터라 여기서라도 못 받았으면 억울했을 뻔했다.


 성적은 A+를 받았다. 사실 계절학기 학점 교류가 처음이기도 하고, 학교 커뮤니티에서 들리기로 연세대에서도 B대를 받아가는 학생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성적이 나오기 전까지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그래도 중간, 기말, 과제를 하며 쏟은 노력이 어디 가겠는가. 좋은 성적을 받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내 전공과 하등 상관없는 과목을 듣는 색다른 경험과 함께 좋은 성적도 가져가니, 이런 일석이조가.


 그렇게 계절학기 수업이 끝났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정처없는 여행을 시작할 때이다.



이 영롱한 자태를 보라...


 + 지난 4년간 함께한 ASUS 노트북을 뒤로하고 노트북을 장만했다. 금년도 1월에 나온 갤럭시 북4 프로다. 마침 기말고사 끝나는 날에 배송이 와서, 가는 중에도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기존에 쓰던 녀석보다 주사율이 배가 되고 디스플레이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니 노트북을 하면서도 미소가 멈출 줄을 몰랐다. 프로세서도 울트라 7인 모델을 구매해서 나중에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려도 괜찮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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