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 있게 늙어 갑시다
점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회, 전 그냥 잠수 탈래요.
내가 다니는 여러 모임 중, 신생 모임이 하나 있다. 그저 가볍게 2개월에 한 번 얼굴이나 보고 그냥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의미로 정말 가볍게 모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모임에 나이 든 빌런 하나가 물을 흐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느 날, 그 모임에서 친한 동생이 연락이 와서는 모임의 큰 어르신이랑 (나이 많은 빌런) 그 친구분이랑 함께 식사 한 번 하자더라. 뭐 이상하게 생각 안 했다. 우리들은 종종 시간 맞는 사람들끼리 번개도 하고 만났으니까,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본인이 곧 머리를 올리니 (이 친구가 골프를 이제 막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만든 자리라며 라운딩 가기 전 가볍게 식사나 하자는 거였다.
뭐, 모임에서 "언제 한번 라운딩 함 하시죠" 라며 인사치레로 던졌던 말이 진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 몰랐지만, 놀라운 추진력에 호응해 주기로 하고 식사 자리에 나갔는데, 그게 잘못된 거였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1차 식당에서는 머 이상하진 않았다. 맛집에 모여서 옹기종기 식사하고 이냥 저냥 사는 이야기 하고 평범했다. 그런데 2차 가자며 일어나서 이동하는 중간, 자꾸 나를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함께 부르는 친한 동생에게도 어깨동무를 하고 치근덕 대는 것이었다. 심지어 2차 자리에서는 수위 높은 발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날 라운딩 할 때, 라운딩 끝나고 2차 술자리 가는 겁니다 빠지면 안 돼요"
어머 이게 웬일이야. 어디 스폰하는 여자들 데리고 라운딩 나가는 아저씨들이나 할 법 한 추태를 부린다.
불쾌했다. 모임에서나 "어르신" 하며 호응해 줬지, 나이 들어서 이게 무슨 추태인가 싶더라. 심지어 나는 불편해서 자꾸 빼는대도 어깨를 쓰다듬으면 끌어안으니 이거 좀 아니다 싶어 그냥 이 자리를 파투 내고 싶었다. 내가 다음 날 일정이 바쁘니, 먼저 모임에서 일어나겠다는 의사를 여러 번 표출했는데, 되게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아니, 난 내가 다니는 회사 회식도 내 맘대로 일어서는데, 이깟 모임이 머 대수라고 내가 이런 불쾌한 기분을 감내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노인네는 집에 내 나이만큼이나 나이가 찬 딸이 둘이나 있다. 근데도 이런 추태를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가 대표로 있는 곳에서 어린 직원의 사생활을 캐묻고 쫑크를 줬다는 둥,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줘야 하니 그 앉아 있는 시간이 겨우 2시간 정도 남짓이었으나, 내겐 인터스텔라의 시간 같았던 지루한 시간이었다. 심지어 내 휴대폰 케이스가 맘에 든다며, 마구잡이로 가져가 험하게 케이스 벗겨가지곤 자기 거에 그냥 끼워버린다.(내 핸드폰 액정 나갈 뻔했다.)
"어 잘 맞는데? 이거 내가 해도 될까?"
아니 그럼 내가 안 됩니다. 이럴 수 있나? 머 이런 답. 정. 너 같은 경우를 봤나...
솔직히 기분도 별로인 데다, 옆에서 멋도 모르고 추임새 넣는 후배도 꼴 보기 싫고 해서 그냥 줘 버렸다. 그까짓 거 쿠팡에서 9800원 주고 하나 더 사지머, 이 노친네 보면 또 언제 보겠다며 옛다, 너 가져라
나이가 한 해 한 해 들면서 나는 말은 아끼고 지갑은 열어야 된다는 걸 배우고 있다. 이 노친네는 그걸 알까? 뭣도 모르는 양반이 나이 들어 은퇴 후 갈 데 없어서 어디 협회에 자리 하나 꿰차고는 심드렁하게 아래 직원들 훈육이나 두는 일이나 하더니, 이젠 모임에 기어 나와서는 볼썽사나운 꼴을 한꺼번에 버라이어티 하게 보여준다 정말 더러운 거 본 기분이다.
대놓고 지적질을 하기엔 말 들이 많을 거 같고, 그렇다고 알 면서도 당해주기엔 내가 너무 화가 나고 그래서 묘수를 내기로 했다.
"집에 일이 있어, 당분간 못 나갈 거 같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잠수 타야지
아, 왜 요즘 현대인들이 카톡에서 잠수가 많아지는지 알 거 같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안 하는 거다..
할 말 하 안.
해 봐야 본 전도 못 건질 거라면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지. 나이 든 똥들은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다. 똥이 냄새 풍기고 다들 싫어하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 이렸다. 심지어 그 똥은 자아성찰 따윈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의 수많은 똥들은 본인을 두고 하는 메타포임을 알지 못한다.
그냥 피하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