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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 Oct 20. 2024

제주 1일 차. 친구와 함께 보낸 하루

8/22(목)

4:00 am

2024년 8월 22일 목요일 새벽 6시 20분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새벽부터 출발하는 이유는, 비행기 값이 저렴해서. 그래도 나름 비행 경비는 최대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새벽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최소한 5시 좀 넘어서 김포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그때 지하철은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아빠에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아빠는 뭐 어디 데려다주는 건 항상 오케이이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나를 데려다주는 것이 아빠의 하나의 기쁨 중 하나하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나는 효년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항에 5시 좀 넘어서 도착했다. 오랜만의 김포공항인데, 새벽부터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가족단위의 여행객들도 많았고,  외국인 여행객들도 많았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안보였다. 하지만 난 혼자 여행을 좋아하니까 괜찮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두님과 올리부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완벽한 여행이 될 것 같아 설레었다.

8:20 am

제주에 도착한 후 숙소로 향했다. 첫날의 숙소는 '호텔아난타'. 두두님과 함께 쓰는 숙소다. 나의 제주 여행 첫날은 두두님과 함께 보낼 예정이다. 두두님은 내가 도착한 주의 전주에 제주에 도착하여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우리 하루만 겹쳐서 같이 여행하자고 했다. 그녀는 고민하다, "Yes"라고 대답해 주었다.

숙소 앞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그녀가 마중 나와있었다. 같은 한국이지만, 물 건너 비행기를 타야 올 수 있는 제주에서 그녀를 만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서로를 얼싸안으며 반겼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초록초록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를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 옆 서랍 위에 그녀가 준비해 둔 웰컴키트가 있었다. 귤 한 개, 귤 치약, 그리고 귀여운 메모. 그 메모에는 '선아! 웰컴투 JEJU! 혼저옵서예! 우리 잔뜩 놀자'라고 적혀있었다. 그녀의 이 배려심과 다정함을 정말 어떻게 내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9:10 am

용담포구

숙소에서 짐 풀고 수영복으로 바로 갈아입은 후 용담포구로 향했다. 용담포구는 제주 공항 근처 포구이다. 우연히 인스타에서 용담포구에서 바다 수영하는 것을 보고, 두두님에게도 같이 바다 수영하자고 했다. 그녀도 바다 수영을 좋아해, 의견이 딱 맞아 해가 뜨거워지기 전 아침에 수영을 하기로 했다.

용담포구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곳이 맞나 순간 걱정했지만 다행히 사람들 몇몇이 와서 다이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해 암튜브를 찼다. 이번 여행을 위해 샀는데, 혹시나 불량이 아닐까 걱정하면서... 불량이면 난 여기서 죽는 건데 그럼 어떡하지 상상하면서 암튜브를 차고 조심스럽게 바다에 몸을 담갔다.


올해 첫 바다 수영이다. 물속에 몸을 담그니 물에서 느껴지는 시원하고 차갑고 추운 감각이 짜릿하게 다가왔다. 용담포구는 비행기가 제주 공항으로 착륙할 때, 가장 가까이 스쳐가는 포구이다. 그래서 바다 쪽을 향하면 제주로 오는 비행기를 아주 크게 볼 수 있고, 그 뒤편으로는 야자수를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 특징이다.


한 시간쯤 즐겼을까, 머리가 너무 뜨거워 이제 나가야 할 때라고 느꼈다. 그래서 주섬주섬 준비하고 바다를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어둑어둑한 구름이 우리의 머리 위를 덮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올여름 내 몸의 분신처럼 들고 다닌 우양산을 바로 펼쳤다. 비가 와 우양산을 쓰고 식당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좋았다.


제주 오기 전에, 경이님이 해 준 말 덕분이었다. "제주 유연하게 다녀요. 계획대로 안 되어도 즐겨야 돼" "제주는 날씨가 거의 타로카드 수준이에요" 이렇게 미리 말을 해줘서 변화무쌍 달라지는 제주 날씨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날씨가 변하면 그것을 온전히 유연하게 받아들여 즐길 준비도 되어있었다. 그래서 비가 갑자기 오니, 신났다. '이렇게 오자마자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를 경험하는구나!라고'


10:15 am

제주은갈치김밥

용담포구에서 한 5분 걸어 아침을 먹기로 계획한 김밥집으로 향했다. 두두님이 단골이라고, 제주 여행 갈 때마다 먹는 곳이라고 소개해준 곳이다. 자리가 한 3 테이블정도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입구 바로 왼쪽에는 여러 유명 인사들의 싸인이 붙어있었다. 식당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포장주문을 많이 해갔다. 그 와중에 바다에 쫄딱 젖은 우리는, 의자에 비치타월을 깔고 앉아서 먹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잡았다.

이곳의 메뉴는 은갈치김밥, 한치김밥, 한치무침, 멸치고추김밥 등이 있다. 나와 두두님은 은갈치김밥, 한치김밥, 한치무침이 세트로 묶인 '한라세트'를 주문했다. 은갈치김밥은 김밥 안에 튀긴 은갈치가 들어간다. 한치김밥은 데친 한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고추냉이마요소스가 사이드로 나온다. 은갈치김밥은 튀김이 들어있어서 그런지 약간 느끼할 순 있지만, 맛있는 화려한 김밥 느낌이다. 여기에는 살짝 매콤한 한치무침이 짝꿍이다. 한치김밥은 속 재료들이 다 조금 심심한 느낌이라 자칫 평범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계속 먹기에 물리지 않고 심심한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는 담백한 맛의 김밥이다. 여기에 고추냉이마요가 킥이 되어 참 잘 어울린다. 두 개의 김밥 모두 각자의 매력이 달라 두 개를 모두 시켜서 한 입씩 먹는 것을 추천한다.


11:00 am

아베베 베이커리

"제주에 가면 아베베 베이커리에 꼭 가라" 누가 말한 진 모르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지도에 표시해 둔 곳이다. 서울에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기왕 제주에 왔으니까 한번 들려보기로 했다.


생각보단 줄이 안 길었다. 내부에 들어와서 가장 우리 둘의 눈에 띄었던 것은, 빵들의 네이밍이었다. '우도 땅콩 크림 도너츠', '하도리 얼그레이 크림 도너츠', '한라산 돌멩이 도너츠', '함덕 옛날 옥수수 크림빵'등. 하도리와 얼그레이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함덕과 옥수수는. 관련이 없지만, 이색적으로 제주에 맞추어 네이밍을 한 것이 재미있었다.

네이밍 구경하면서 우리는 '우도 땅콩 크림 도너츠', '비자림 녹차밭 호지차 쿠키 크림빵'을 시켰다. 주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하나 포장해 숙소에 도착했다. 일단 바다에 빠졌었으니 각자 샤워를 하고 나와 로비로 빵과 커피를 들고 나왔다. 각자 한 입씩 먹어보는데, 정말 너무너무 달았다... 둘 다 한 입씩만 먹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둘이어서 다행이었다.


'우도 땅콩 크림 도너츠'는 우리가 모두 아는 땅콩 과자, '국희 땅콩 샌드'를 크림 도너츠로 만든 맛이었다. '비자림 녹차밭 호지차 쿠키 크림빵'은 겉 부분은 녹차 쿠키 베이스이고, 안에는 호지차 크림과 찰떡, 화이트 초코가 들어있었다. 호지차 크림과 찰떡은 너무 맛있었는데, 화이트초코까지 있으니 이게 너무 달아서 아쉬웠다. 난 그래도 개인적으로 호지차를 좋아해서 그런지 더 맛있게 먹었다. 두두님은 땅콩 크림 도너츠가 더 취향이라고 했다. 우리 둘은 단 것을 많이 선호하지 않아서 만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크림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색다르고 다양한 크림빵을 접할 수 있어서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2:00 pm

호텔아난타

우리의 다음 일정은 호텔에서의 낮잠. 낮잠도 계획해 두었다. 평화로운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으며, 전날 두두님이 독립서점에서 산 책들을 같이 읽었다. 기억에 남는 책은 그림책이었다.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내가 떠나고 혼자 지내는 삶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혼자 밥도 먹고, 양치도 하고, 물고기도 키우고 식물도 키우는 삶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가 홀로 티비를 보고 있는 장면. 그 그림을 보고 있자니, 우리 아빠가 떠올랐다. 엄마, 나, 오빠가 모두 출근한 평일 아빠는 홀로 이렇게 티비를 보고 있겠지.. 쓸쓸하진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저릿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3:30 pm

섬조각

숙소 근처 소품샵이다. 두두님의 노트를 보며 제주만을 위한 여행 노트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런데, 노트를 안 가져와서 소품샵에 가면 팔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방문했다. 근데 노트는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대신 제주 냄새 많이 나는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여기 소품들은 섬조각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소품샵과는 다른 개성 있는 제주 소품들이 많았다. 호텔 로비에 있는 포스터가 참 매력 있다고 생각했는데, 섬조각에서 제작한 제품이어서 신기했다!


이때 업무상 문제 아닌 문제가 터져서 업체랑 물류와 엄청 전화를 했다. 그래서 한동안 밖에서 계속 통화하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본 두두가 커플 팔찌를 하나 선물해 주었다. 정말, 당신 이러니 내가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4:30 pm

필름로그 제주 직영점

여행을 할 때, 필름카메라를 꼭 챙기는 편이다. 필름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필름이 주는 특유의 사진 느낌도 있지만, 현상하고 스캔하는 동안 어떤 사진이 나올지 기다리는 설렘의 시간을 참 좋아한다.


'필름로그'는 필름 자판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찾아보니, 제주가 본점이라고 한다. 보통 자판기만 있는 경우도 많은데, 제주의 경우는 내부에서 구경할 수 있는 필름 및 카메라들이 많았다.

필름로그 제주 직영점의 외관은 노랑 천막과 약간 빛바랜 빨간 철문이 잘 어울리는 빈티지한 공간이다. 일본 여행 온 느낌이 나는 외관이었다. 아마, 자판기가 있어서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앞에서 사진 찍고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정말 여러 가지 필름 카메라들과 필름들이 있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각각의 필름마다 이름 옆에 QR코드가 있었다. 이게 무엇인가 찍어보니, 이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 어떤 느낌이 나오는지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는 링크였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실제 필름 구매자가 사진을 찍고 업로드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링크를 통해 사진의 느낌을 보여주면서, 뭔가 소비자가 제품의 정보를 더 풍성하게 하는 제공자의 역할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4:50 pm

데이빗 보이

필름로그 근처 LP카페이다. 이곳은 경이님이 추천해 준 곳! LP와 카세트테이프를 골라 청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건물의 3층정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다 큰 통창이 인상적이다. 통창에서 보이는 초록초록한 잎사귀들과 빛들이 내부 약간 어두운 공간과 대비되며 더 따뜻한 공간의 분위기가 형성된 느낌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우드톤으로 되어있고, 한쪽 벽면은 모두 LP판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곳에서 원하는 LP를 골라 자리에 앉아서 들어볼 수 있다. 구매도 가능한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나와의 워크숍'을 시작했고, 두두님은 LP노래를 들었다. '나와의 워크숍'이란, 김해리 작가님이 쓴 책으로, 책을 통해 나다운 일을 찾는 툴킷과 방법을 제안한다. 이 책은 5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번 제주 여행의 개인적인 목표로 '나와의 워크숍' 책을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요즘 '일'과 관련하여 고민이 많을 시기라,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리하고 싶었다. 근데, 일을 정리한다는 것. 처음 시작하는 게 뭔가 어려워서 먼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함께 같이 하려고 했지만, 그다음 일정에 시간이 쫓겨 1일 차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6:20 pm

한주훈 요가원

나의 제주 여행의 테마 중 하는 '요가'이다. 나는 요가를 좋아한다. 요가를 왜 좋아하는 걸까? 어릴 때는 사실 잘해서 좋아했다. 내가 유연해서 할 수 있는 자세들이 많아서 좋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도 아직 존재하지만, 이제 요가를 하며 내 숨과 나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 요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하타요가, 아쉬탕가요가, 빈야사 등. 어쩌다 보니 나는 주로 하타 요가를 한 것 같다. 하타요가는 한 동작에 머무는 시간이 긴 요가이다. 한 자세에 조금 오래 머무는 시간을 통해서 내가 인지하지 못하였던 나의 부분들을 만나고 내 내면의 공간들을 확장해 가는 것이 참 좋다.


이번에 간 요가원은 하타 요가의 대가, 한주훈 선생님의 요가원이다. 내가 처음 하타요가를 시작한 선생님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효리네 민박'에 이효리의 요가 선생님으로 목소리로 출현하셨던 분이시기도 하다. 처음엔 나같이 초짜가 그런 수업에 가도 될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친구가 궁금하다며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고 해서 나도 용기를 내보았다.


요가는 자신의 난이도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무리 없이 따라 할 수 있었다. "3년, 6년, 9년, 12년 꾸준히 하세요" 중간중간 어려운 자세가 나올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멀리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밖에는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선생님의 안내를 들으며, 내가 진짜 제주에 왔구나를 한번 더 느낄 수 있어서 그 순간 참 행복해서 기억에 남는다.


수련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수강생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하셨다. 원래 점심, 저녁 수련 후에 원하는 사람에 한해 같이 식사를 하신다고 한다. 그렇게 수련생들에게 밥을 사주시는 그 마음. 참 감사했다. 같이 수련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막걸리도 한 잔 걸쳤다.


9:00 pm 제주 동문 수산 시장

저녁을 먹어 배가 불렀지만, 제주에 왔으니 고등어 회는 빼놓을 수 없지! 숙소 들어가기 전 시장에 들러 고등어회 1인분은 포장해 왔다. 한라산 소주 한 병과 함께! 두두님과 새벽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서울과 멀리 바다를 건너야만 올 수 있는 장소에서 이렇게 함께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또 좋았던 것 같다. 아! 제주 동문 시장은 9시 마감이다! 마감할 때쯤 가서 횟집이 여는 곳이 별로 없었다. 꼭 운영 시간 참고하여 가시길!


서울에 있으면 수많은 일정들에 둘러싸여 일정도 대화도 빨리빨리 진행된다. 두두님과도 자주 만나는 편이지만, 가끔 시간이 부족해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적이 꽤 있었다. 친구와의 여행은 그런 일상적이고 바쁜 순간에서 잠시 우리를 빼내어 조금은 여유를 찾고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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