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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코더 Jun 20. 2023

1. 검정고시 출신 미국 아마존 본사 시니어 개발자

검정고시 출신 미국 대기업 직장인

평범한 고등학생이 학교를 자퇴하고, 도피식으로 간 유학을 두 번이나 실패했다. 우왕좌왕 방황하다 정신 차린 후 검정고시를 쳤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최종적으로 미국의 명문대 UC Berkeley에서 Computer Science를 전공하고, 미국 아마존 본사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었고, 20대에 꿈꾸던 세계 배낭여행도 하고 자가도 갖게 된 9년 차 미국 직장인의 이야기다.


이 글은 앞으로 연재될 이야기의 서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자퇴생이 된 이유

고등학교 1학년, 어린 나이에 학교 성적이 이미 나의 미래를 정했다. 야간 자습을 열심히 하고 학원에 열심히 다녀도, 나는 등수가 낮아서 좋은 대학을 못 갈 학생이었다. 좋은 대학을 못 가면 취업도 못 하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했다.


당시 <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라는 책을 우연히 읽고 유학 생활에 대한 동경심이 생겼었다. 지금 와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데 그땐 무작정 도피 유학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유학 갈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식 투쟁으로 가까스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고등학교 자퇴생이 되었다. 그리고 큰 계획 없이 일단 호주로 영어 공부하러 튀었다. 당시 미국에 비해 호주 유학이 저렴했었고 학생이 일할 수 있는 등등 메리트가 좀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웃으면서 유학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부모님이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 당시 '가진 것을 모두 잃더라도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면 그러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와 다르게 준비했을 것 같다. 한 가지 꼭 집어서 말하자면, '결정은 신중하고 빠르게 하자'다. 인생에서 새로운 계획을 짤 때 무조건 한 가지만 보지 말고, 누가 '이거 하니까 좋다더라'만 듣고 정하지 말아야 한다. 계획할 때는 무조건 여러 가지 옵션을 찾아보고 장, 단점을 먼저 따져 봐야 한다. 하지만 계획을 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단호함'이다. 제일 좋은 옵션을 빠르게 선택하고 결정하면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난 이 'Data-driven Decision Making'을 모든 의사 결정에 적용하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겠다.


쨍쨍한 햇볕 아래 걸어서 10분 내로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를 볼 수 있었고, 여유로움이 넘쳐나는 호주 사람들을 보니 꿈만 같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도피’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걱정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여기까지 읽고 당장 긍정적인 유학 결과를 기대하겠지만 '검정고시'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계획 없는 나의 호주 유학은 실패했다. 그래도 8개월 동안 했던 호주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가까스로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고등학교 학교에 입학했다. 호주에서 미국으로 가게 된 이야기는 너무 기니까 나중에 하겠다.


"The land of opportunities!"

"The American Dream!"


미국 땅을 밟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뻤고, 나름 처음에는 열심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당시 다니던 학교에는 아시안이 딱 4명이었고 그중에서 2명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였다. 나머지 한 명은 어렸을 적 캐나다에서 조기 유학을 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한국 교환학생이었고, 마지막 한 명은 한국 억양이 심하고 영어를 제대로 못 하던 나였다. 학교에서 난 늘 이방인이었고, 문화 차이와 외로움이 점점 나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었다. 게다가 호주에서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영어 실력은 미국 대학을 준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나이에 맞게 11학년에 입학해야 했지만, 학교에서 나의 영어 실력을 고려해 내 나이에 비해 낮은 10학년에 입학했고, 동기들은 나보다 최소 1살에서 2살이나 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았고, 달러가 강세였으며, 나의 유학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부모님은 "괜찮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하신 게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국에서 공부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결국 나는 미국 유학을 1년 만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졸지에 고등학교 자퇴생이 되어 버렸다.


"봐, 맞지? 실패했잖아. 자퇴하면 저렇게 돼"


이 말을 하는 사람에게 '실패'를 증명해 준 것만 같아서 나의 자존심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했다(사실은 부끄러워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피하고 싶었다). 양재사거리 근처 스무디킹, 강남역 파스쿠찌, 신사역 가로수길 그리고 강남에 있는 백화점 등등 많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두 탕 세 탕씩 뛰며 돈을 벌었다. 열심히 사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내 상황이 답이 없어서 모든 걸 포기한 상태였다. 아르바이트는 내 생활비를 내가 벌려고 하는 거였다. 부모님은 속으로 애간장이 많이 타셨겠지만,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하지만 이미 난 낙오자로 찍혔고 주변에서 ‘유학 실패한 고등학교 자퇴생‘으로 가십거리가 되어 있었다.



검정고시생의 현실

어느 날 현실 도피만 하던 날 정신 차리게 해 준 일이 있었다. 당시 아르바이트하던 백화점 푸드 코트에 있는 식당에 외국인 손님이 오셨다. 약 2년간의 유학 생활을 해서 영어 회화가 되던 나는 당당하게 외국인 손님을 응대했고, 점장님이 이를 보시고 나의 영어 실력에 놀라시며 "어떻게 영어를 할 줄 아냐며" 물으셨고 나에 대해 궁금해하셨다. 자초지종 내 유학 경험을 말씀드렸더니,


유학 가서 잘하고 있는 지인 자식들의 이야기를 하시며,


"너는 왜 유학까지 다녀와서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냐?"

"유학은 왜 다시 안 가느냐?"


라고 물으셨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 말들이 상처가 되었다. 상처를 주려고 하신 게 아니겠지만, 비교를 하려고 한 말씀이 아니겠지만, 갑자기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며 그날 그 말들이 나에게는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날 나는 더 늦기 전에 용기 내서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제대로 도전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차리고 제일 먼저 했던 일은 검정고시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험을 통과해도,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 한 검정고시 출신인 나에게 사회는 혹독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찾아봐도 검정고시 출신에게 희망을 주는 사례가 없었다. 온라인은 검정고시 출신에 대한 부정적인 말만 가득했고,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원하는 꿈을 이룬 케이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같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길을 걸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이룬 것들

그러나, 어차피 바닥까지 찍어본 인생 앞으로 올라갈 날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일단 뭐라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남 눈치 따윈 신경 안 쓰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 후 나는,

미국의 명문대인 UC Berkeley에 입학하게 되었고,

우연히 적성에 맞는 길을 찾아 늦깎이로 불가능하다던 컴퓨터 공학 전공 공부를 시작했으며(당시 컴공과 카운슬러가 나보고 3학년이라 늦어서 절대 안 된다며 컴공 공부를 포기하라고 했다),

아마존에서 개발자 인턴쉽을 마친 후,

실리콘 밸리에 있는 회사에 다른 회사보다 경쟁력 있는 억대 연봉을 받고 사회에 첫걸음을 디디게 되었다.



다시 찾아온 시련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좋으련만 나에게는 두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이제 좀 정착하겠다 싶었는데, 외노자로 치열한 실리콘 밸리의 직장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직장 문화 차이, 의사소통, 비자 문제 등등). 게다가 미국 취업 비자가 나오지 않아 미국에서 쫓겨날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수년간 일구어낸 것들을 버리고 다시 새 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실패를 통해 '모든 걸 내려놓고 언제든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시 새 길을 열어보리라 다짐했다.


퇴근 후 매일 2, 3간씩 열심히 공부한 결과,

아마존 웹서비스 캐나다 지사에 입사했고,

마음속 깊숙이 품어둔 세계 배낭여행의 꿈을 20대 중반에 이루었고,

아마존 입사 후 약 4년 만에 2번의 승진을 해서 시니어 개발자가 되었으며,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어 미국 기술 특허를 2개 신청하고 현재 승인받은 미국 특허 1개를 갖고 있고,

20대 후반에 미국에 자가도 갖고,

나름 다시 미국에 정착해서 잘살고 있다.


9년 차 미국 개발자. 유학에 실패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잡으려고 열심히 '나 같은 사람'을 찾으며 '나도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을 때, 아무도 '넌 할 수 있어!'라고 해주지 않았다. 첩첩산중으로 당시 고등학교 자퇴생, 검정고시생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이 길도 가능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으로 연재할 <검정고시 출신 미국 대기업 직장인>이라는 글을 통해

검정고시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아! 할 수 있어!'라는 용기를 주고 싶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동기부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도움 되는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 계속


이미지 출처: 실리콘 밸리 via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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