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히로세 유코
아침에 일어나면 녹슨 기계처럼 온몸이 삐걱거린다. 둘째를 낳고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는데, 한쪽 얼굴이 미끄러진 채 좌우가 삐뚤어져 있었다. 와사풍 진단을 받고 놀라서 눈물도 흘리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는 그래서 공포다. 늙어가는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이 부식되어 툭 떨어져 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난다. 틀어진 뼈마디에 기름칠이라도 하는 양, 아침에 눈을 뜰 때 두 팔로 몸을 쓸어내린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노년이 약간은 두렵다.
‘어쩌다 보니’ 나도 나이 쉰을 넘었다. 50이 되던 그 해, 서점에 갔을 때 나를 보듯 본능적으로 손이 닿아 가져 버린 책이다.
몸에 부대끼는 것이 싫고 뭔가 거칫거리는 것도 싫다. 자연스럽고 가볍고 보드라운 옷을 찾아 입게 되는 것처럼 삶도 그렇다. 소장품이나 만나는 사람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마음도 너그럽고 평온해진다. ‘이유가 있겠거니’ 그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으려니... 마음이 조금 더 커지고 헤아리는 아량이 넓어진 듯하다.
나이 듦에 대하여,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 또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과의 관계와 얽힘에 있어서 몇 걸음 더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조바심을 덜 내고 ‘다행스럽게’ ‘감사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놓고 흡족해한다.
그래도 아직 맡겨진 삶에 대해서 정진(精進)한다. 만나는 사람과 일에 대해서 더욱 정성을 다하여 나가고 싶은 것은 욕심이 아니라 본심이다. 부끄럽고 서글픈 자신의 과거에 대해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요량으로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을 낸다. 그러면서 살 것이다. 건강한 죽음까지 나는 움직인다. 그리고 썩 반갑지 않지만 나이 드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를 읽으며 나를 받아들인다. 나이 듦을 나의 것으로 그냥, 그대로 받아내면 편안한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