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필사습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 May 28. 2024

호모 사피엔스와 책 읽기

어른의 어휘력/ 유선경 作 / 그림 pinterest

호모 사피엔스는 태생적으로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고, 독서에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 책을 읽어 지혜로운 자가 된 게 아니라서 그 후손들은 그냥 놓아두면 '자연스럽게'책을 읽지 않는다. 원시 인류는 사냥, 수렵, 채집 등으로 먹을거리를 구하고 맹수 등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하고 관찰하고 경계해야 했다. 눈 두 개가 가운데 몰려 있어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 적합하지 않으니 고개나 몸의 방향을 쉴 새 없이 바꿔가며 두리번거렸으리라. 


  그 초원이 오늘날에는 인터넷에 있다. 눈 두 개가 가운데 몰려 있어 휴대전화의 좁은 화면을 보는 데 적합하니  고개와 몸의 방향은 절로 고정된다. 먹잇감을 찾아 손가락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눈동자가 두 발인 양 쫓아간다. 그때는 실재였고 현재는 가상이지만 뇌는 실재와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며, 인간의 뇌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산만하다. 


  인류는 먹고사는 데 노력을 소진하느라 책 읽는 데 쓸 노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책과 무관하게 살았으며 현재도 대체로 그러하다. 대신 그들에게는 우주의 순환과 생명의 생로병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자연이 있었고, 지식과 경험을 담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찾아가 물었다. 


  "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가 겪은 고통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앞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에 대한 답을 들려줄 대자연과 지혜로운 노인은 더 이상 곁에 없고 책은 흔하다. 하지만 인생 사용설명서 삼아 읽고 싶어도 세월이 검증했고 내로라하는 이들이 추천한 책치고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 무슨 글자인지 알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까막눈'은 아니나 '실질문맹'이다. 이게 다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답게 자연스럽게 산 탓이다. 그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도 경고하지 않았던가. 품성의 덕 중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안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고. 책을 읽으려면 상당히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게 도리어 당연하다. 





 당황한 적이 있다. 너무나 유명하고 다들 읽은 듯, 아는 척 이야기하는 책인데 나는 뒤늦게서야 샀다. 책 제목도 꽤나 멋지고, 꼭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펼치는 순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얼른 읽혀지지 않았고 쉽게 이해되지도 않았다. 


 '오, 마이 갓' 

 나의 무지를 사람들은 알려나..., 나의 독서 실력에 당황했다. 사실 이 비슷한 일이 어떻게 딱 한번뿐이었겠느냐만 너무 유명한 책인지라, 다소 충격적이었다. 때문에 작가의 말에 조금 위로와 안심이 된다. 


  독서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이라는 서울대 장대익 교수의 논문을 근거로 , 책 읽기는 상당히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나의 자존감을 살짝 유지시켜주었다.  자신없는 채 그늘진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온 작은 햇살같은 것~^^ 




매거진의 이전글 청룡이 나르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