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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Jan 30. 2024

엄마와 공항버스

“모두가 너처럼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야”


처음으로 엄마와 단 둘이 떠난 여행이었다. 엄마에게는 첫 해외 방문이기도 했다. 낯선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집을 피워 계획을 강행했다. 해외는 커녕 국내 여행도 늘 내켜하지 않았지만, 머지 않아 결혼을 앞둔 딸이 막무가내로 항공권을 예매해버리니 못이기는 척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리라.


2박 3일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향신료는 입에 대지 못하는 엄마도 같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검색한다고 스마트폰 액정에 고개를 처박았다. 비행기에 타면 귀가 찢어질 듯 아프다기에 기압 조절 귀마개를 사겠다고 엄마 손을 잡아끌어 드럭 스토어를 샅샅이 뒤졌다. 엄마를 위해서라기엔 좋지 않은 모양새였던 것 같기도 하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꾸만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낯선 땅에서 사흘 내내 나는 아마도 엄마가 서 있는 곳보다 반 발자국 앞서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회색 미세먼지로 뒤덮인 인천 하늘은 따뜻한 타이베이에서의 꿈이 산산이 깨졌음을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공항 출구 앞 키오스크 대기줄에 서 있는데 엄마가 말했다. “꼭 기다려서 예매를 해야돼? 그냥 저기 정류장에 서있다가 타면 안돼?” 괜시리 우울한 마음에 까칠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저기 예약 필수라고 써있잖아.”


이내 내가 예약한 공항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춰 섰다. 버스에 타서 잠깐 눈을 붙이려는데, 앞에서 큰 소리가 났다. 어떤 노부부가 교통카드를 찍고 승차하는 바람에 버스는 만석이 됐고, 미리 티켓을 예매한 사람은 앉을 좌석이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예매하지 않고 버스에 탄 승객은 내리라는 기사의 외침과, 앉을 자리를 잃은 승객의 난처한 눈빛에도 노부부는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 요금을 냈는데도 내려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저것 봐. 써져 있는 대로 안하면 저런 꼴을 당한다니까.“ 출발이 지연되니 괜히 볼멘 소리로 중얼거렸다. 잠깐 말이 없던 엄마로부터 나지막히 대답이 돌아왔다.“모두가 너처럼 다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야.“


노부부가 하차하자마자 버스는 출발했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데 불현듯 슬픈 장면 하나가 그려졌다. 버스 티켓 없이 교통카드를 찍고 공항 버스에 올라탔다가 쫓겨나듯 내리는 엄마 모습이.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내 입을 빌리지 않으면 짧은 대화도 힘들었을, 2박 3일동안 딸의 뒤통수를 가장 많이 봤을지 모를 엄마도 사실은 알고 싶었을 것이다. 처음 간 곳에서 무엇이든 능숙하고 싶었을 것이고, 알 수 없는 외국말을 알아듣고 싶었을 것이고, 복잡하기만 한 번체자를 술술 읽고 싶었을 것이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불어치던 어느 저녁. 회사 앞 정류장에서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패딩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서 있었다. 그 때 “이 버스 타면 사당역 가는 건가?” 어떤 할아버지의 혼잣말이 이어폰 너머로 들려왔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거 타면 방배동 가는데...’


모두가 나처럼 잘 아는 건 아니다. 자꾸만 그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이어폰을 떼어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 이 버스 타지 마세요. 이거 다음에 오는 거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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