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나 혼자 다 정리하고 오라고?
남편은 이미 떠났다. 나는 거의 매일밤 남편 없는 쓸쓸한 집에서 나날들을 보냈다. 사실 허전하거나 그런건 없었다. 눈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아이들 케어하다 같이 잠들기 일쑤였으니깐...
남편은 잘 도착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 학교 시험일자가 6월 14일로 잡혔으니 그 전에 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시차가 15시간이나 나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하기엔 둘 중에 한 명이 잠들어버렸다. 달력을 보니 4개월 남았네. 갑자기 4개월 만에 모든 걸 정리하려니 너무 막막했다.
일단 첫 번째,
나는 한 회사를 11년을 다녔다. 잠깐 부서 이동이 있었지만 그건 내가 입사하고 6개월쯤? 되었을 때 한 번의 부서이동이 있었고 거의 10년을 넘게 같은 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였다.
동료들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한자리에서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 근 10년을 똑같은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물론 지겨운 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감사하고 좋은 날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의 일에 애정이 있었고 뭐 되돌아보면 좋아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런 회사에 난 사직서를 제출했다. 국장님께 말씀드리고 사직서를 작성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던 순간은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나는 날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 다음 날은 회사 전체가 다 뒤집어졌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고 약간 고인 물 (사실 나는 3층의 군기반장이었다.)이었던 그 여자가 회사를 그만둔다니... 다들 무슨 일이냐고 메신저창이 난리가 났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집도 문제였다. 위임장 하나만 써서 던져두고 간 남의편아....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사실 지금까지 내가 "아.. 여기 좋다! 여기 살까?"이야기하면 나머지 일처리는 남편이 다 하곤 했다. 경제관념이 뚜렷하고 수계산이 빠른 남편의 일이었다. 공동명의였던 서울 집을 팔거나 전세나 월세를 주고 가야 했다. 평소에 왕래하던 부동산 아저씨에게 얘기해 두고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집 보러 오는 사람도 없었고 점점 초조해져 갔다.
매일 부동산을 들락날락거렸고 부동산 아저씨에게 독촉을 해대던 어느 날, 갑자기 부동산 아저씨가 전화가 와서 다짜고짜 오후 1시에 집을 볼 수 있냐고 했다. 오우! 나는 언제든 가능해요!
나보다는 조금 연령이 있어 보이는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갑자기 계약을 하잔다. 오늘 당장! 계약서를 쓰다 보니 현재 사는 곳이 반포동이란다.... 반포 사시면서 왜... 이렇게... 누추한 곳에.....(아직도 의문인 점....!)
깨끗하게 잘 살고 계시겠지?
세 번째, 아이들 유치원
아이들의 유치원에도 이야기를 했다. 과테말라 학교에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을 요청하고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친구들에게도 알렸다.
5살 때부터 다닌 유치원이니 2년 반을 다녔던 곳인데 엄마들과 인사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워킹맘으로서 많이 신경을 못썼고 엄마들끼리 만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 부분을 동네 유치원 엄마들이 많은 부분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땐 미처 몰랐다. (무려 그중에 한 분은 이 브런치를 소개해주신 분이다.)
이렇게 나에게 고마운 사람들이 많구나. 항상 내가 알지 못했지만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인복이 많았다.
마지막 관문은 이사였다. 그것도 해외이사.
결혼해서 2번의 이사가 있었고 (한국은 당연히) 포장이사였다.
그리고 항상 엄마는 우리 자매들이 이사할 때마다 와서 모든 정리와 청소를 도와주곤 하셨다.
남편의 회사에서 잡아준 회사 업체 사람들이 왔다. 아.. 국내에서의 포장이사랑은 장비부터 다르네.
이미 과테말라서 살고 계신 회사사람들은 일단 쓰레기까지 다 가져오라는 이야기에 정리하지 않고 일단 다 싸버렸다. 그리고 한국만큼 싸고 질 좋은 것들은 없으니 최대한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을 다 가져오라고 해서 신나게 쇼핑을 했었다. 살면서 그렇게 신나게 쇼핑한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가장 행복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 짐들을 다 정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4명의 아저씨들이 오셔서 일사천리 하게 움직이고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192개의 박스가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고 문을 닫았다. 이제 두 달 뒤에 과테말라에서 다시 만나자.
그렇게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정말 한국을 떠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은 상황판단력이 아주 뛰어난 편인 사람이지만 나는 항상 뒤늦게 현타가 오는 편이다.
컨테이너에 짐을 다 싣고 다니 그제야 내가 정말 해외이주를 선택했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게 맞는 건지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맞고 틀린 건 없다.
나의 오래된 친구가 했던 이야기였다.
이미 결정은 내렸으니 너의 그 선택이 올바른 결정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그게 바로 맞는 선택을 했다는 너의 믿음을 만드는 거야.
좋아!!!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