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2차 기자회견을 보고
하이브와 어도어, 방시혁과 민희진과의 공방으로 대한민국이 뜨겁다. 평소 아이돌 산업에 관심이 없는 이들까지도 민희진을 이야기한다. 세상 사람들은 민희진의 1차 기자회견이 주는 임팩트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민희진 해임을 막는 가처분소송 인용 후 가진 2차 기자회견에서 민희진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하이브와 어도어 간의 분쟁은 각자의 입장 차이가 있는 문제고, 주주 간 계약, 상법상 절차에 따라서 공방이 이루어질 것이고 누구 일방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고 해서 일방만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 글은 민희진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글이다.
1. 경영인의 관점
민희진은 훌륭한 경영인이다.
인터뷰 내내 민희진은 어떤 것이 주주에게 이득이 되는지를 얘기했다. 어도어의 대표로서 최고의 매출을 올려준 자신과 뉴진스. 그리고 자신을 내쫓으려는 하이브와, 어도어의 이익이 아닌 모회사 하이브 계열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어도어의 성과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 누가 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충실히 일하는지 말이다. 무엇이 배임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 지난한 분쟁조차 하이브에게도 어도어에게도 하이브의 주주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일이므로, 그만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민희진은 기존 아이돌 산업 틀에 있는 매출 짜내는 방법과 다른 방법을 시도해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 냈다. 팬사인회 입장권과 포토카드 가챠를 통해 앨범 판매량 늘리기 같은 방법은 싫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늘 새로운 시도를 생각했고, 시도에 그치지 않고 결과마저 좋았다. 또 뉴진스의 뮤비 제작비는 다른 아이돌 평균에 비해 1/4 정도라고 한다. 민희진이 뮤비 제작을 오래 해봤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 원가절감이 가능한지 모두 파악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들어냈다고 한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영인이 아닌가.
어떤 산업이든 기존의 BM을 따라 하는 안전한 방법과 새로운 시도가 충돌한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므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안전한 BM을 답습하는 선택을 한다. 게임산업에서 나오는 양산형 가챠게임도 그런 예다. 때로 어떤 회사들은 산업에 대한 애정이 담긴 장인정신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돈이 되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의식과 장신정신만 있고 비즈니스 관점이 부족한 경우다. 민희진은 둘 다 해냈다. 어느 산업이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회사와 경영진은 더욱 많은 찬사를 받아야 한다.
2. 직장인의 관점
민희진은 훌륭한 직장인이다.
내 기준에서 훌륭한 상사는 일을 잘하는 상사다.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므로 아무리 사람이 좋고 선하고 화를 안내도 일을 못 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인간적인 면모는 그다음 따라오는 부차적인 요소다. 민희진은 늘 좋은 성과를 내 왔다. 그리고 모든 것을 꼼꼼히 본인이 체크한다고 한다.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다분히 상상이 된다.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본인의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들을 후드려 팼겠지. 중간 관리자는 직접 손대면서 수정해 나갈 수라도 있지만, 민희진은 대표이사다. 아마도 기준에 못 미치는 것들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 엄청 닦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닦달을 하건, 화를 내건, 혼을 내건, 지적을 하건 지난한 수정의 과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인터뷰에서 민희진은 직원들에게 늘 삐지지 말자고 말한다고 한다. 내가 너희를 혼내는 건 일에 대한 것뿐이니까 감정 담지 말고 삐지지 말라. 뒤끝 가지지 말라. 일을 제대로 해내는 상사한테 혼나고, 그 상사가 나를 뒤끝 없이 봐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사다. 내가 할 일은 더욱 열심히 일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뿐이다.
또, 민희진은 아닌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부하직원이다.(부하직원, 아랫사람 한국어에서 하위 직급자를 표현하기 적절한 단어가 부족한 것 같다. 모회사인 하이브 사장과, 계열사 의장인 방시혁 입장에서 계열사 대표를 하고 있는 민희진을 부하직원이라고 표현했다.) 관리자가 되면 늘 판단을 해야 한다. 본인의 판단력이 좋고 여태 좋은 성과를 내 왔고, 일 처리에 자신감이 있는 상사라면 늘 직접 판단한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알기에 대부분의 부하직원들은 그 뜻을 따른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관리자도 틀릴 때가 있다. 이럴 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유능한 직원이 곁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무조건 그 말을 따르지 않더라도, 생각을 환기하고 여러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보탬이다. 민희진은 그런 사람이다. 하이브 계열사 내에서 방시혁 의견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이런 사람은 늘 곁에 두고 써야 한다.
3. 팬들을 보는 관점
민희진은 훌륭한 아티스트다.
엔터 산업도 산업이다. 아이돌 팬은 소비자다.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것이 기업이 할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엔터산업을 보면 많은 엔터사들이 팬심을 돈으로 환원해서 최대한 빨아먹고 있는 구조다. 좋아하는 아이돌 팬사인회에 입장 티켓을 앨범 구매자 중에서 추첨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한 팬이 앨범을 수백 장 사게 하는 방법, 멤버들의 포토카드를 앨범에 랜덤 하게 넣고 수집하도록 하는 방법, 유료 채팅앱을 통해 연예인과 팬이 일대일 소통하는 듯 착각하도록 하는 방법 등등. 아이돌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 돈을 저렇게 쓴다고..?" 싶다. 극악의 확률로 돈을 계속 쓰게 만드는 한국의 모바일 가챠 게임과 비슷 하달까나.
민희진은 팬들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빨아먹는 것이 싫다고 한다. 그래도 이 산업에 있는 경영인으로 돈은 벌어야 하니, 콘텐츠로 승부하고 싶다고 한다. 100개의 콘텐츠 중 아무거나 골라도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한 방법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팬들을 돈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팬심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진 아티스트는 응원하게 된다.
4. 산업을 보는 관점
민희진은 엔터 산업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앞서 말한 BM도 마찬가지고, 성공한 모델을 따라 하면 적당한 성공을 거두기 쉽다. 아이돌의 음악, 앨범, 컨셉,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하이브는 뉴진스의 이미지를 다른 레이블에서도 따라 해서 성공한 걸그룹을 계속 만들어내길 원했다. 하이브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식의 비슷한 아이돌들이 대거 탄생하면 팬을 나눠먹기 하는 구조가 될 뿐이다. 뉴진스에게는 당연히 좋지 않을뿐더러, 아이돌 산업 전체가 획일화되고 전체 팬의 수, 시장의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장기적으로 건강한 생태계에서 시장이 계속 커 나가려면 다양한 컨셉의 다양한 아이돌들이 계속 나와줘야 한다.
민희진은 뉴진스의 기획자니까 뉴진스를 따라 하는 다른 레이블에게 불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감안하고 생각해도 산업 전체에 대한 그녀의 고찰은 지극히 타당하다. 유전자의 다양성이 멸종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5. 뉴진스 멤버들을 생각하는 관점
민희진은 훌륭한 어른이다.
민희진은 뉴진스에게 계약 기간 동안 자기랑 공부하는 것이라고 늘 얘기한다고 한다. 그동안 좋은 선생님들과 교수들, 좋은 기회들로 너희들을 성장시켜 주겠다. 7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먹고살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어떤 하고 싶은 음악이 있을 수도 있고, 연예인을 그만두고 싶다고 해도 좋으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라고 한다고 한다.
보통 엔터산업에서 아이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회사에서 투자한 자산이고, 이 자산은 최고의 수익으로 환원해야 한다. 이들은 아플 새도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소속사와 연예인간의 분쟁은 늘 기사거리가 된다.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는 바라기 힘든 업계다. 그런데 민희진은 뉴진스를 내 새끼들이라고 말하며, 엄마가 없어도 홀로서기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후배 세대에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필요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2차 인터뷰를 보고 민희진의 매력에 퐁당 빠져 버렸다.
저렇게 당당하고 멋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민희진은 일을 사랑하는 것 같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산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며, 좋은 결과들을 만들어 내서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민희진은 그 과정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사적인 카톡이 들춰져도,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아도 굴하지 않으려면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도 일을 사랑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민희진처럼,
"맞다이로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