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이뚜와르 바자르는 아이들 국제학교 근처에 있다. 학교에서 우리 집 가는 길에 있기에 방문하기가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해서 나는 주로 이곳에서 장을 봤다. 바자르는 일주일에 3번 문을 여는데 화요일, 금요일, 일요일에 문을 연다.
바자르는 우리나라 말로 하면 '시장'이라는 뜻인데, 물건의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이 싸서 현지 서민들이 많이 가서 사는 곳이다. 우리나라 전통시장과 비슷하다. 바자르는 생각보다 규모가 굉장히 커서 이것저것 장을 다 보면 약 30분~1시간 정도 걸린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바자르에는 한 번씩 가 본다. 그리고 보통 많은 한국인들이 바자르에서 장을 보고 국제학교 외국인 학부모들도 바자르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바자르에 장 보러 가면 아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가 많다.
유럽 특정 국가 학부모 같은 경우에는 원래는 바자르에서 장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암암리에 장 보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에 선진국의 경우, 혹시나 위험할까 봐 우리나라보다 제한되는 장소가 굉장히 많다.
특히 국제학교 학부모들은 대부분 각국 대사관이나 국제기구에서 일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안전에 굉장히 민감하다. 선진국의 경우,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를 벗어나려고 하면 사전에 자신이 속한 선진국 정부에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해서 한국인에 비해 수도 밖으로 여행 가는 것이 상당히 까다롭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도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나도 때때로 독일 친구가 보내주는 정보를 보고 참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파키스탄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개인기사를 대동하고 바자르에 갔었다. 아이들은 오전 7시 40분~8시 사이에 등교시켜줘야 하는데,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8시쯤 가면 마침 딱 바자르가 시작할 시간이기 때문에 좋은 시간이다. 이 때는 현지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주차하기도 쉽고 과일이나 채소도 갓 도착해서 싱싱하다.
바자르 정문. 여러개의 게이트들 중 7번게이트(좌), 바자르 맵. (우)
바자르에는 여러 개의 출입문이 있는데 나는 개인 기사가 있을 때는 정문을 이용했었지만, 이후에 개인기사를 고용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운전하고 다닐 때는 주차장에 가까운 쪽문을 이용해서 다녔다. 오전 8시 30분 정도만 되어도 차들이 많이 몰려오고, 사람들이 많이 몰릴 때는 혹시나 모를 위험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나 국제학교 학부모들은 주로 8시쯤 일찍 장을 본다.
트롤리보이가 내가 장본 것을 트롤리에 싣고 끌고 가는 모습
내가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면 간이 수레처럼 생긴 트롤리를 끌고 오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트롤리를 끌고 다니면서 영업을 하는데, 내가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이미 몇 명이 기다리고 있으면서 서로 자기를 써 달라고 "마담, me, me"라고 한다.
이 아이들의 나이는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데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벌려고 서로 경쟁하며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저 아이, 다음에는 다른 아이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써 줬다. 트롤리보이를 쓰면 주로 100루피(약 500원) 정도를 주는데 100루피이면 현지 한 끼 식사값 정도 된다. 이 아이들은 트롤리를 끌고 내가 장 보는 데 따라다니며 장 본 물건을 트롤리에 실어준다.
나는 보통 장 보는데 3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내가 끝나면 또 다른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돈을 번다.
바자르 그릇 가게
바자르 가방, 신발 가게
바자르에서 과일, 채소, 두부, 계란, 쌀, 닭고기, 생선, 그릇, 식탁보, 신발, 옷 등을 구매할 수 있고 각각 섹션이 나눠져 있다.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을 바자르에서 구할 수 있다. 바자르에는 거의 모든 물건을 판다.
바자르에서 파는 옷과 신발의 경우,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기 위해 무상으로 주는 것을 가져와서 저렴하게 파는 물건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제품의 질이 좋은 편이고, 신발 같은 경우도 정품 나이키(중고)도 간혹 굉장히 싸게 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바자르 옷가게
바자르 잡화점 가게, 귀금속 가게
나는 주로 바자르에서 과일, 채소, 두부, 계란을 기본적으로 구매하고 간혹 쌀이 필요하면 구매하기도 하였다.
특히 두부는 파키스탄에서 구하기 힘든 식료품으로, 중국 사람이 두부를 만들어서 파는데 한국 두부처럼 품질이 좋지 않다. 맛도 탄내가 나는 것도 있다. 가끔 날씨가 더울 때는 잘 상하기 때문에 분홍색 곰팡이가 조금 핀 것을 팔기도 하지만, 한국 두부와 최대한 비슷한 맛을 구할 수 있다면 곰팡이 정도는 덜어내고 사용한다. 가격은 한국두부와 비슷하거나 좀 더 비싸다. 그래도 거의 독점이라 잘 팔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갔을 때 한인마트에서 두부를 사 오는 한국인도 있다.
쌀은 현지마트에서는 길쭉하고 찰기 없고 가벼운 현지쌀밖에 팔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찰기 있는 쌀을 구하려면 중국마트에 가서 사거나, 바자르에서 현지쌀인데 찰기 있는 쌀을 파는 특정 가게에 가서 사는 수밖에 없다. 이 쌀들은 품질과 위생이 좋지 않은데 가격이 한국쌀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배로 짐을 실어올 때, 한국에서 쌀을 100킬로 정도 실어서 온다.
바자르 건과일, 견과류 가게. 한국쌀 처럼 찰기있는 쌀을 파는 특정 가게도 있다.
바자르 과일가게
바자르 코코넛 가게. 손질도 해준다.
바자르의 장점은 모든 물건이 있어서 한 번에 장보기 편리하고 물건이 싱싱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고, 단점은 물건을 살 때 고르지 못하고 외국인의 경우 바가지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바자르에 자주 가니까 시세를 알아서 바가지를 쓰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처음 오는 외국인이나 외국인 남자가 장 볼 경우에 바가지를 쓰기 쉽다.
계란의 경우, 파키스탄에서는 닭을 풀어놓고 키우기 때문에 유정란이라 매우 싱싱한데 특이한 점이 계란을 깨면 노른자가 거의 주황빛에 가까운 노란색이다. 나는 계란을 주로 한판씩 구매하는데, 약 700루피~800루피(약 3500원~4000원) 정도로 한국보다 조금 저렴한 정도이다.
채소나 과일의 경우 한국 가격의 1/10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바자르 채소가게
바자르 계란. 매우 싱싱하다.
그리고 특이한 점이 바자르에서 사탕수수로 주스를 만들어서 파는 가게가 있는데, 직접 바로 사탕수수를 기계에 넣어 주스로 짜준다. 맛은 밍밍한 주스 맛인데, 그래도 먹을 만했고 가격도 한 컵당 50루피(약 250원)로 매우 저렴했다.
사탕수수 주스를 파는 가게. 나무처럼 보이는 것이 사탕수수다. 중간 사진에 있는 기계에 사탕수수를 넣으면 주스가 되어 나온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외국인의 경우, 현지인보다 더 비싸게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외국인들은 돈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똑같은 물건이어도 외국인에게 가격을 더 비싸게 부른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학부모가 있었는데 남편이 유럽사람이다. 그 학부모가 처음에 바자르에 가서 양탄자를 사려고 했는데 만 루피(약 5만 원)를 불렀다고 한다. 그 가격도 현지인에 비해서 비싸게 부른 가격일 텐데, 오케이를 하고 남편을 데리고 갔더니 가게 주인이 유럽사람인 남편을 보더니 3만 루피(약 15만 원)를 부르더라고 했다.
같은 물건이어도 동양인보다 서양인에게는 훨씬 더 비싼 가격을 부른다. 서양사람은 부자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일 때문에 이곳에 일하러 온, 각국 엘리트이긴 하지만 본인 나라에서 월급 받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서양인 남편이 나에게 파키스탄이 자기에게는 물가가 싼 나라가 아니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