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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꽁어멈 Jun 13. 2023

소아백혈병 관해를 마치고 더이상 시련은 없을 줄 알았어




4살이던 2016년 미니미의 소아백혈병 성공적인 관해를 위해 본격적으로 항암치료가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구토도 시작되고, 입안이 다 헐어 목까지 아프다고 해서 가글과 양치에 신경을 더 쓰고 뿌리는 스프레이도 처방을 받았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변비인 것 같아요.

시원하게 싸지를 못하고 배도 딱딱한데, 섣불리 변비약을 사용할 수 없어서 따뜻한 찜질팩을 배에 대주는데도 효과가 없어서 종일 엄마 손은 약손~ 만 하라고 합니다.

아이가 아픈 건 안쓰럽고 애가 타는 일이기는 하지만 종일 하고 있으려니 저도 너무 힘들어서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엄마 손 약손 해주는 기계가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사 오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 외에도 4살짜리 아이는 자기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은 아는데 표현할 길이 없으니 짜증과 울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잠도 푹 이루지 못해 컨디션이 바닥이에요.

그만큼 많이 힘들다는 거겠죠?

대신 아파줄 수도 없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어집니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감염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에 폐렴 예방약, 중성구 수치가 낮아지면 곰팡이균이 생길 수 있는데 그 균을 예방하는 약 등도 매일 먹어야 하고 척수 검사를 해서 암세포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예방약도 넣고 다양한 스케줄로 이루어져요.

그 밖에 중성구 수치가 1000미만이면 촉진제 주사를 수치가 오를 때까지 맞아야 해서 정말 끊임없는 주사와 약의 싸움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힘든 과정 속에서 기쁜 소식도 맞이하며 성공적인 관해에 한 발자국 다가서고 버텨냅니다.

어느 순간 감염 지표상 정상 범위가 되며 입원과 동시에 쭉 이어지던 항생제 주사도 끊고, 소변량도 좋고 배출상태도 좋아 수액 양도 줄여갑니다.

이렇게 지지고 볶으며 미니미는 잘 견뎌줘요.

저희 딸은 아무래도 엄마인 저보다 더 강하고 씩씩한 예쁜 공주님인 거 같아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저희에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관해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퇴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첫 외래진료가 곧바로 찾아왔지요.

미니미는 백혈병 종류 중에서도 항암치료만으로도 완치율이 높다는 림프구성 백혈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처음 치료를 시작할 당시에는 백혈구 수치가 위험할 만큼 높았었더라도 관해도 확실히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원을 하였으니 이제 긴 시간과의 싸움만 남았다. 잘 이겨내보자.라며 신랑과 서로를 위로하며 응원하며 마음을 가벼이 하고 외래진료에 가게 되었죠~

백혈병 확진 받을 당시에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가 3,4주는 되어야 나오기 때문에 첫 외래진료에 듣게 되는데 여기서 또 한 번 저희 부부는 절망으로 무너져내려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습니다.

미니미는 소아 림프구성 백혈병임에도 불구하고 1% 미만의 안 좋은 케이스라고 해요.

백혈병 치료를 할 때 백혈구 수치가 높은 것도 좋지 않은 경우지만,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염색체 수가 부족한 경우라고 하는데 우리 미니미는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되는 경우라고 합니다.

정상 개수의 염색체 수는 45개로, 44개만 돼도 골수이식을 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미니미는 43개로 무조건 골수이식을 준비해야 된다고 합니다.

항암치료만으로는 예후가 좋지 않은 4, 5년 만에 1명 나올까 하는 케이스라고 해요.

하... 도저히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습니다.

신랑과 저는 서로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터져 나와서 집으로 돌아는동안 차 안에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저는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제 슬픈 마음과는 달리 야속하게도 날씨는 왜 그리 화창하던지... 제 기억 속에 7년 전 그날은 정말 날씨까지 밉고 원망스러운 날이었어요.

제가 무슨 죄를 그리 지었다고...

훨씬 큰 죄를 짓고도 잘 사는 사람들이 많던데...

왜 이렇게 힘든 시련만 주시는 걸까?

더 이상의 바닥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 있었어요.


4살이던 미니미는 우리보다 제일 많이 힘들 텐데도 차 안에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저희 부부의 눈치를 살피며 저를 애타게 부르던 날입니다.

이날의 시련이 끝이라도 말하고 싶지만, 그 뒤로도 여러 번의 위기를 더 맞이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니미와 저, 신랑과 이쁘니까지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결국 모두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어요.

덕분에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미니미의 병상일기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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