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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19. 2022

두 번째 십 년이 시작되었다

나의 2022년을 돌아보다 

작년 이맘때쯤 2022년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조금 특별했다. 2011년 12월에 뉴욕에 도착해서 어느새 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이다. 아직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나의 뉴욕 살이, 두 번째 십 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2022년을 시작할 때 조금은 웅장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난 십 년은 내 인생에서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리고 새로운 두 번째 십 년은 어떻게 만들어 가고 싶은가? 


(스스로 던졌던 질문에 대한 생각과 대답들은 제대로 따로 정리해야겠지만, 지금은 간략히 남겨본다) 


지난 10년은 새로운 터전에서 자리 잡기 위한 완전한 서바이벌 모드였다. 처음엔 유학생 와이프로 시작해 첫 임신과 출산, 그리고 첫째가 만 1살이 되고 시작했던 나의 대학원 생활. 석사 1년 차를 끝내고 여름 방학 때 둘째 출산, 마지막 석사 1년은 두 아이를 키우며 졸업과 취업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5년 만에 다시 잡마켓에 나갔는데 다행히 졸업 전에 직장을 구했고 그 후로 쭉 두 아이를 가진 워킹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주 짧게 정리한 뉴욕에서의 나의 첫 십 년 타임라인이다 (이렇게 적다 보니 빌드업의 시간이었네?). 잠시 숨을 돌리고 시간을 확인할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들이었다. 친구나 인맥 하나 없는 이 도시에서 자리 잡기 위해 나의 신경은 항상 밖으로 향해 있었다.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익숙해져야 했고 외부 환경에 따라 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야 했다. 내 안을 돌아볼 여유는 없이 계속해서 시선과 에너지가 밖으로만 향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의 두 번째 십 년은 조금 다른 모드로 살고 싶었다. 빌드업을 어느 정도 했으니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내 안에 쌓여있는 생각들, 끊임없이 보고 들으며 차곡차곡 쌓아온 기억과 정보들을 정리하고 다듬어 나의 목소리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인풋과 아웃풋에 투자하는 시간을 균형 있게 가져가는 시간들을 만들고 싶다.   



이렇게 조금 특별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나의 2022년이 저물고 있다. 돌이켜 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새로운 십 년의 첫 해였다. 눈에 띄는 아주 큰 성과는 없다. 올해의 마지막 달에 브런치라는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 겉으로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성과일까? 하지만 올해 결심한 대로 내 삶의 모드가 바뀐 것을 스스로 느낄 만큼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앉아서 회고글을 쓰고 있으니 이 정도면 아주 충분히 만족스러운 첫 해이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미뤄졌던 두 번의 여행을 했고 그때의 이야기를 남겨 보려 한다.   


    

14년 만에 다시 간 파리. 여전히 화려한 도시. 그때는 대학생, 이제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여행한다.


14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 - 걱정이 앞섰던 여행, 하지만 아이들은 그새 많이 자랐다.  


4월 파리로 가는 휴가를 앞두고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코로나 때문에 국경을 넘는 여행을 한 지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입국절차 및 코로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를 미리 생각하고 그에 따른 준비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만 8세, 6세 아이 둘을 데리고 파리 여행이라니.. 나 이 결정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내 걱정에 비해 여행은 너무 순조롭고 수월했다. 코로나 2년 반 사이에 우리 아기들이 이렇게 많이 컸다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나의 두 아이는 새로운 음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행 다닐 때 굉장히 중요한 자세인데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엄빠를 닮아 호기심도 많고 일단 먹고 보는 성격이다. 파리에서도 아이들은 새로운 식재료와 조리 방법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을 호기롭게 받아들였다. 바람이 엄청 부는 센강 다리에서 멀리 솟아있는 에펠탑 야경을 보며 오들오들 떨면서 젤라또를 먹는 즐거움도 함께 누렸다. 파리 최고의 크로와상과 바게뜨를 먹겠다고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빵셔틀 해준 남편 덕분에 아침에 눈 뜨면 맛있는 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행복도 함께 누렸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여행지에서도 아이들과 이런 순간들을 큰 스트레스 없이 누릴 정도로 그새 아이들은 많이 자라 있었다.


파리하면 에펠탑, 그중에서도 정시가 되면 반짝이는 마법 같은 그 시간을 우리도 즐겼다. 아이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개선문 전망대에서 에펠탑을 보다가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졸랐다. 나는 5분만 더 있다가 가자며 시간을 끌었고 곧 에펠탑은 언제 봐도 예쁘게 반짝반짝 빛을 냈다. 우리 딸 입에서도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치, 파리의 이 마법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지. 에펠탑만큼이나 반짝이는 만 8세 소녀의 눈빛을 보니 이제 이런 거 보고 감동도 할 줄 알고 진짜 여행 데리고 다녀도 되겠구나 싶었다.   


일주일 정도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이들도 나도 많이 자랐음을 느꼈다. 나의 두 번째 십 년은 아이들과 더 자주 더 멀리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아이들과 가고 싶은 곳 리스트가 너무 길다. 알래스카, 미국 횡단 기차여행, 코스타리카, 아이슬란드 정도는 조만간 가뿐히 갈 수 있을 듯하다. 재밌겠다. 기대된다.       

           

5년 만에 방문한 한국 - 처음으로 한국이 home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 이제 정말 이민자인가?


올해 8월, 5년 반 만에 한국에 갔다. 2013년과 2016년 이 후로 세 번째 방문이었다. 작년 겨울에 티켓팅을 하고 한국 갈 생각에 신이 났었다. 가서 무얼 할지 계획 세울 필요도 없이 그냥 가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곳. 한국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부모님과 형제와 오래된 친구들이 있는 나의 집. 


하지만 이번 한국 방문은 이 전 두 번과 너무 느낌이 달랐다. 13년, 16년 때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내가 한국에 계속 쭉 살아왔던 사람처럼 바로 한국에 적응이 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 익숙했고 뉴욕에서의 생활은 정말 1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뭔가 진행 방식이 내 손에 착 달라붙지 않았고,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말투나 작은 행동들이 뭔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과 달리 내가 이 사회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잠시 놀러 온 여행객처럼 약간의 거리감이 내내 존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한국이 이제 예전처럼 나의 home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주 휴가가 끝날 때쯤에는 한국을 떠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얼른 이제 다시 집에 가자라는 마음도 절로 들었다. 뉴욕에서 만들어 온 나의 일상과 터전이 꽤 깊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사실 남편과 나는 유학생으로 뉴욕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계획을 정하고 온 게 아니어서 이렇게 뉴욕 생활이 길어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스스로 이민자라는 정체성이 없었다. 언제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깐, 우리가 무슨 이민자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한국 방문으로 우리가 어떤 모멘텀을 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보다 더 길게 뉴욕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고 두 아이 모두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우리는 이미 꽤 멀리 와 있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태어나서 자란 모국 대신 다른 곳을 나의 홈이라고 부른다면 난 아마 이민자가 된 거겠지. 기분이 아주 약간 이상했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이곳에서 쏟아부었던 시간과 노력의 결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넓은 세상에 또 하나의 집이 생긴 거니깐. 나와 아무 관련이 없던 곳에 나의 흔적을 이렇게 남기고 있으니깐. 2022년은 이민자라는 새로운 나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해로 기억해야겠다. 


두 번째 십 년의 첫 해는 이렇게 마무리되어 간다. 내년엔 조금 더 자주 글을 쓰고 나의 생각과 목소리를 다듬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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