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35.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
1.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뻗어나가느냐,에 대한 이 시리즈의 발전 방향에 있다. SF호러의 마스터피스와도 같던 <에이리언>, 짙게 깔려있던 호러의 색채는 덜어내고 블록버스터 프렌체이즈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놓은 <에이리언 2>,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종교적인 색깔을 집어넣었던 <에이리언 3>, 호불호는 강하게 갈릴지언정 독특한 분위기와 새로운 설정 추가로 흥미를 불어넣었던 <에이리언 4>까지. <프로메테우스>에 와서는 제노모프로 공포를 넘어 이제 생명의 기원까지 언급하게 된다. 크리처 한 마리로 시작했던 이 시리즈는 매 편마다 (완성도의 편차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색다른 스타일과 해석을 들고 나와 소재 하나를 얼마나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준다.
여러 내용들을 보여줬지만 개인적으로 시리즈가 가장 잘 어울리는 분야는 1편과 2편 사이의 어디쯤, 그러니까 호러와 블록버스터의 적절한 혼합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 제작진들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나 보다.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까지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등장한 이번 편은 <에이리언>과 <프로메테우스> 둘 사이에서 따지자면 전자에 가깝다. 언제부턴가 이 시리즈가 치중하고 있는 철학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주제보다는 첫 편에서 선보였던 SF 호러에 훨씬 더 충실하고 있다. 새로운 입문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줄 제노모프의 특색을 공포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에 애정을 가지고 작업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그렇다면 이번 영화는 '공포를 어떻게 구현하는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편 속 공포를 구현하는 방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의외로 외계생명체보다 배경이다. 영화는 제대로 된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잿빛 도시를 묘사하며 시작한다. 보기만 해도 기관지가 답답해지는 것 같은 뿌연, 아니 까만 먼지 가득한 배경을 보여준다. 관객들이 답답한 시야에 익숙해질 시간을 벌어줌과 동시에 영화 속 암담한 사회 배경까지 설명해 준다. 본격적으로 제노모프와 마주쳤을 때에도 영화는 어둠을 이용하여 관객들의 시야를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영화의 배경이 우주, 게다가 버려진 우주 정거장인 이상 빛을 상당히 제한되게 사용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를 적극 활용한다. 영화 <맨 인 더 다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페데 알바레스 감독은 '어둠'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사람으로 보인다. 공포를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여할 수밖에 없는 시각과 청각의 공백을 우주라는 배경 설정을 이용하여 어색하지 않게끔 능수능란하게 끌어온다. 단순하게 공포를 위해 '여기서는 어두워야 해'라며 억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영화 배경 설정과 어우러지게 자연스럽게 혼합한 것이다. 물론 펄스 소총을 통해 제노모프를 마구잡이로 쏘아댈 때는 시원하게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
3.
개인적으로 에이리언 시리즈의 외계생명체들은 CG 구현을 통하여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보다 애니매트로닉스 특유의 부자연스럽게 뚝뚝 끊기는 움직임을 보여줄 때 훨씬 더 기괴하고 효과가 배가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날로그 한 방식 만으로는 구현할 수 있는 액션의 범주가 줄어들고, CG 기술이 충분히 익숙한 요즘 세대 관객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애니매트로닉스 기술 또한 과거보다 많이 발전하여 다양한 방안을 통해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한계는 결국 존재한다.
감독 또한 이를 의식하고 있는지,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적절하게 섞어 활용한다. 떼로 몰려오는 대량 군집의 페이스허거나 제노모프를 보여줘야 할 때, 혹은 외계생명체들의 재빠른 움직임을 강조해야 할 때는 CG를 통하여 외계생명체들을 구현한다. 반대로 한 마리씩 대면하며 개체의 외형을 진득하게 묘사해야 하는 상황에선 CG 사용을 지양하여 그로테스크한 움직임과 질감의 비율을 높인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기괴한 움직임을 재빠르게 보여주는 제노모프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는 관객들이 느낄 공포감, 그리고 (좋은 의미의) 혐오감을 조성에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과하다고 느껴질 여지는 충분히 많다.
4.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자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 흔히 표현하는 민폐 캐릭터들도 적당히 자기 역할을 마무리하고 퇴장한다. 다만 모든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챙겨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이는 충분히 아쉬운 지점이다. 그래도 극 진행에 있어 무리는 없게끔 캐릭터들을 구성해 놨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면죄부는 주어진다. 무엇보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정체성과 같은 여전사 캐릭터의 구현이 나쁘지 않다. 물론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리플리라는 아이코닉한 캐릭터의 존재감을 지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 속 여성 인물이 가지는 의미를 되짚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효과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5.
다만 아쉬운 점은 편의적인 설명들이 잦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요소가 웨이랜드의 합성인간 앤디다. 칩이 변경된 앤디를 통하여 극 진행에 필요한 정보들을 빠르게 읊어내는데, 이런 장면들이 영화 내내 꽤 많이 이어진다. 물론 오래된 시리즈의 설정을 다시금 설명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랜 팬들이야 얼추 설명해도 알겠지만, 새로 입문한 일반 관객들에게는 의문 투성이만 남아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반대로 자세한 설명은 새로운 관객들에게는 친절하겠지만 팬들에게는 지루한 동어반복이 될 뿐이다. 이 두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은 꽤나 까다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설명투 대사로 설정들을 빠르게 뱉어내는 것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시리즈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자 했던 감독의 야심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부분도 아니다.
6.
이번 편은 새로운 설정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기보다는, 기존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설정을 충실하게 활용하는 길을 택한다. 그 얘기는 이번 편을 봤을 때 새로운 것이 딱히 없다는 의미와 같다. 외계생명체도, 인조인간도, 주인공이 쏘는 총도, 시리즈를 봤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익숙해할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즐거운 이유는 결국 활용과 재조합이다. 기존 시리즈를 가지고 새로 영화를 꾸려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리즈가 내놓은 기분 좋은 출사표를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