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50. 영화 <대가족>
1.
어느 날 잘 나가는 만둣집 평만옥의 사장 무옥에게 두 아이가 찾아온다. 그들은 무옥이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주장하는데, 안 그래도 놀랄 일이지만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놀랄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무옥의 아들은 이미 오래전 출가해서 속세를 떠난 스님이기 때문이다! 무옥의 표현대로라면 저물어가던 함 씨 가문에 새로운 희망이 생긴 일이긴 한데 뜬금없이 스님의 아이라니, 도대체 이 아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2.
항상 국가 단위의 거대한 사회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양우석 감독이 이번에는 스케일을 조금 줄였다. 가장 처음 접하는 사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이렇게 담대하게 권력과 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직설적으로 피력하는 사람은 미시 사회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바로 직전 연출했던 영화 <강철비 2: 정상회담>이 약간 아쉽긴 했지만 그럼에도 꾸준한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기 때문에 기대가 조금 더 컸다. 무난한 가족영화 정도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그럴듯한 의견을 피력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일단 영화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소재 참 재밌네'였다. 속세를 떠나기 전, 몇 차례 기증했던 정자로 인해 아이가 생겨버린 스님이라니. 사실 꽤 흥미롭지 않은가. 확실히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소재도 소재지만 결국 영화 자체의 재미가 중요한데, 전반적으로 매끄럽게 진행되는 편은 아니지만 소소하고 꾸준하게 재미를 툭툭 던진다. 그 웃음이 되게 잔잔한데, 애초에 빵 터지는 코미디 영화를 노리고 만든 것이 아니기에 다소 빈약하게 느껴질 수 있는 웃음도 너그럽게 넘어가진다.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꽉 막힌 유교 대법관 아저씨 정도로 그려졌던 주인공이 점차 변화하며 단순한 핏줄로서의 가족이 아닌 진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은 꽤나 감동적인 편이다.
4.
영화 광고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기시감이 드나 몇 번을 생각했더니, 그렇다. 김윤석 배우의 사투리였다. 게다가 이북사투리다. 이북 사투리는 영화 <1987>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김윤석 배우가 여러 영화들에서 다양한 사투리를 구사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입에 딱 달라붙는 사투리 톤으로 대사를 잘 녹여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른 배우들도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낸다. 이승기 배우는 아무래도 영화보단 드라마 위주로 활동하다 보니 여태까지 연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맡은 바 역할을 잘 수행해 낸다.
무엇보다 연말에 보기에 딱 좋은 영화다. 아무래도 훈훈한 가족영화가 어울리는 시기가 겨울인데, 몇몇 지역은 눈도 펑펑 내리고 있는 지금 상영관 밖 날씨와 딱 어울린다. 항상 말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영화 자체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냥 '영화'가 아니라 '상업영화'인 이상, 영화와 어울리는 마땅한 시기에 적절한 타겟층을 설정하고 이를 겨냥해 개봉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능력이다.
5.
아쉬운 점도 못지않다. 일단 전반적으로 복잡한 설정이 아님에도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 극 후반부에 그 느낌이 더 강해진다. 무옥은 민국, 민선이 자신의 친손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충격에 쓰러져 병원 입원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들을 변함없이 대한다. 물론 동생을 잃었던 과거사를 풀어주며 힌트를 주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핏줄에 집착하던 문석에게 내적 갈등을 조금은 더 비춰줬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몇몇 장면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코미디 요소는 다소 불협화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담고 있는 것도 많다. 영화 소재 상 출생의 비밀은 물론이고, 굴곡의 한국사를 겪은 무옥의 과거사, 문석이 속세를 떠나기까지 있었던 부자간의 갈등, 스님이 나오니 아무래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불교적인 교훈에 가장 베이스에 깔린 가족의 의미까지. 엮으려면 충분히 엮을 수야 있었겠지만, 이 영화에선 적확하게 맞물렸는지 의문이다.
전체적인 노림수도 빤히 읽히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민국, 민선 두 아이가 함문석을 찾아온 순간부터 후반부에 진행될 반전까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다. 다만, 이런 종류의 가족 영화를 몇 번이라도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했을 법한 내용이긴 하다. 게다가 가족 영화를 볼 때 각본과 편집 사이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시도하려는 관객도 없기 때문에 뻔한 내용도 어느 정도는 참작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치명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큰 문제는 없다. 문제는 반대로 큰 장점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점도, 장점도 없는 게 문제다. 무난하다는 말은, 냉정하게 말하면 색이 없다는 뜻이다. 색이 없는 영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잊힌다.
6.
만약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 나들이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추천할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팍팍한 소재들이 점령한 요즘 극장가에 이런 슴슴하고 따뜻한 만둣국 같은 영화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물론 조금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훈훈한 연말 분위기는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