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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Dec 21. 2024

어느 날 뻔한 액션 영화를 보고 든 생각, 착하게 살자

2024_51. 영화 <센트럴 인텔리전스>

1.

 바로 어제 새벽이었다. 12시가 넘었으니 오늘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쨌든 새벽 1시. 다음 날 오전부터 일정이 잡혀 있어 이미 한참 전에 잠이 들었어야 했는데, 왠지 오늘따라 영화 한 편을 꼭 보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라기보다는 의무감에 가까운 그런 느낌이었다. 몸도 피곤하고, 눈꺼풀도 무거워지고 있어 대단한 영화를 볼 상황까지는 아닌 것 같고 적당히 자극적이고 시끄러우며 덜 졸릴 법한 영화, 소위 '뇌 빼고 볼 수 있는 영화'를 찾기 위해 넷플릭스를 켰다. 그리고 마침 찾은 것이 영화 <센트럴 인텔리전스>였다. 포스터에 드웨인 존슨이 대문짝 하게 걸려있는 액션 코미디 장르니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조건에 응당 부합하는 영화일 것이라는 강렬한 직감이 들었다. 지체할 필요가 있겠는가.


영화 <센트럴 인텔리전스>

 단순하게 평가하자면 관객 예상에서 한치 벗어남 없는 전형적인 드웨인 존슨 주연 액션 영화였다. 조금 풀어 말하자면 놀라울 만큼 근육으로 꽉 찬 거구, 그리고 배우 특유의 익살스러운 눈썹 움직임에 모든 진행을 맡긴 액션 영화다. 당연히 새로울 것도 없다. 대충 눈에 보이는 OTT 서비스에 들어가 액션 카테고리 선택 후 아무 영화나 재생하더라도 이와 비슷한 영화일 확률이 반 이상은 넘어갈, 그 정도로 평범한(혹은 진부한) 액션 영화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해 한번쯤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이상하게도 참 착했기 때문이다.


2.

 20년 전 잘 나가던 고등학교 시절 이후 평범한 회계사가 된 칼빈은 자기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자존감 바닥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뚱뚱하고 못생겼던 왕따 동창생 로디가 SNS를 통해 칼빈에게 연락해 오고 반가운 마음에 로디를 만나러 술집을 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속 장소에 나온 로디는 탄탄한 근육질 몸매의 매력적인 남자로 변해있었다. 소란스럽게 술 한잔하고 돌아온 로디는 칼빈에게 회계 관련 도움을 청하고, 이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 칼빈은 로디와 함께 위험천만한 미션을 함께 수행하게 된다.


3.

영화 <센트럴 인텔리전스>

 조금 우습게 들릴 수 있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착하게 살기'다. 2000년대 초반 조폭 코미디 영화에 나올 법한 깡패 좌우명 같은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진심이다. 사실 대부분 실패하긴 한다. 착하게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뜬금없이 드웨인 존슨 영화 얘기를 하다 이 얘기를 꺼내느냐, 의아할 수 있는데 내가 이 뻔한 영화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3.

 20년 전 로디는 학교 양아치들로 인해 전교생 앞에 나체로 내던져진다. 모든 학생들이 비웃고,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그 양아치들을 혼내지 않지만, 칼빈만이 나서서 자신의 겉옷을 로디에게 전달해 준다. 칼빈은 모두가 비웃는 누군가를 유일하게 도움을 줬던 사람이다. 로디는 10대 끝무렵에 받았던 이 호의를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살아간다. 함께 일하는 누군가의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반복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감사한 것은 감사하다고 표현하며 사는 법을 아는 사람. 감사한 일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상식 같지만 참 놀랍게도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영화 <센트럴 인텔리전스>

 또 그 도움은 후에 자신의 확실한 아군이 되어 돌아온다. 누군가 확실한 내 편이 생긴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이다. 그리고 그 든든한 아군이 다른 무언가가 아닌 나의 작은 선행으로 인해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가. 매기 또한 참 착한 사람이다. 맨 몸으로 던져진 로디를 위해 직접 나선 사람은 칼빈이지만, 매기 또한 로디를 비웃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지금에 와서는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못난 말을 하더라도 싫은 내색 없이 칼빈을 돕는다.


 배신이 난무하고 선혈이 낭자한 영화들이 쏟아지는 요즘 시대에 이렇게까지 순수한 사람들로만 만들어진 영화라니. 귀엽기도 하고, 가상에서나마 찾아볼 수 있는 이런 인간성이 부럽기도 하다.


4.

영화 <센트럴 인텔리전스>

 결정적으로 꽂혔던 부분은 로디 대사 중 하나였다. 뚱뚱하고 매력 없던 로디가 탄탄한 근육질로 돌아오자 칼빈은 '대체 뭘 한 거야? 나한테 말해봐'라며 물어본다. 그러자 로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별거 없어. 단 한 가지만 했어. 하루도 안 쉬고 매일 6시간씩 20년 동안 운동만 했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 난 이 대사가 참 좋았다. 극 중에선 약간의 낮은 자존감에 기인한,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표시로 멋쩍음 섞어 뱉은 대사지만, 무언가 우직하게 밀고 나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겸손함을 표현하는 말로 보였다. 우직하게 한 가지 목표를 밀고 나가는 일이란 단순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수행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5.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총으로 사람 쏴재끼는 영화는 맞지만, 웃기게도 참 착하다. 난 착한 사람이 좋다. 착한 영화가 좋다. <센트럴 인텔리전스>가 흔하디 흔한 드웨인 존슨표 액션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괜찮은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요즘 같이 팍팍한 세상 속에 마냥 착한 영화를 보고 싶었던 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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