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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Aug 03. 2024

둘 중 누구 덕이든 MCU에 활력을 준 것은 확실하다

2024_31.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1.

 일어나선 안 되는 그런 일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해선 그러지 않기를 바랐던 일이 일어나 버렸다. 울버린이 되살아나버린 것이다. 영화 <로건>의 장엄한 마지막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미 할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을 통해 보내줬던 캐릭터이기 때문에 구태여 다시 살려내는 것은 말 그대로 '사족'이 돼버릴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라는 것은 누구나 내릴 수 있을 법한 결론이었다. 게다가 한두 편 정도 얼굴 비추고 퇴장한 것도 아니고 무려 17년의 시간 동안 여러 영화를 통해서 할만한 이야기는 충분히 풀어놓은 상황 아닌가.


영화 <로건>

 그런고로 데드풀과 울버린이 한 자리에 같이 모여 있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장면임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웬만해선 보고 싶지 않았던 그런 그림이기도 했다. 안타깝지만, 이역만리 타지에서 큰 돈 움직이시는 분들이 내가 뭐라고 나를 신경쓰겠는가. 어쨌든 휴잭맨의 울버린 복귀는 확정되었고,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던 데드풀의 세 번째 이야기 또한 울버린의 복귀와 함께 탄력을 받은 듯했다.


2.

 나도 어쩔 수 없는 팬이기 때문일까,그럼에도 이 영화를 개봉날 찾아볼 수 밖에 없게 만든 소재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꽤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다. 엑스맨 시리즈를 비롯한 히어로 장르를 즐겼던 오랜 팬들이라면 (그것이 폭소든 실소든) 웃음 지을 수밖에 없는 팬서비스로 가득한 영화임은 확실하다. 개봉 전 여러 소식통을 통해 흘러나온 정보들로 유추할 수 있듯,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같은 종류의 팬서비스를 주는 영화다.


 다만, 두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과는 결이 조금 달랐는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보다는 장엄함이 부족하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보다는 접근 방식이 가볍다. 그럼에도 두 영화를 흥미롭게 봤던 팬들이라면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사실 애당초 영화 타이틀에 '데드풀'이 들어가는 이상 장엄해서도, 무거워서도 안되긴 하다.)


3.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제작진 입장에서는 MCU가 고마웠을 것이다. 헛발질이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현재 MCU는 멀티버스를 소재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데, '멀티버스'라는 마법의 단어 하나만 있으면 '로건을 어떻게 살려낼까'와 '엑스맨 세계관을 어떻게 MCU에 편입시킬까'라는 데드풀 속편의 가장 큰 문제 두 가지가 바로 해결될 테니 말이다. 실제로 영화는 멀티버스 소재를 통해 두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적어도 최근 제작된 멀티버스 사가의 MCU 영화 중 멀티버스 소재를 가장 흥미롭게 활용한 영화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냥 어쩌다 보니 멀티버스에서 넘어왔어'라며 막무가내로 극을 진행했으면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으로 흘러가는 캐릭터를 데리고 만든 영화라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듯한 소재가 있는 것과 어떻게 그 소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낼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드라마 <로키>에서 소개된 'TVA(시간변동관리국)'과 '보이드'를 통해 두 세계관의 통합을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설정 상 TVA는 여러 시간선을 관리하는 관리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엑스맨 세계관을 관장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렇게까지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마침 전작 <데드풀 2>에서 케이블이라는 미래에서 온 캐릭터가 등장하며, 그의 타임머신을 통해 데드풀이 직접 시간여행을 다니기도 했으니, TVA와 데드풀 사이의 이질감이 더더욱 줄어든다.


 '엑스맨 세계관을 없애면서 필요할 법한 캐릭터만 쏙 빼와 활용하고자 하는 윗분들의 계획'이 문장을 읽으면 이게 영화 속 이야기일 것 같은가, 영화 밖 이야기일 것 같은가? 전 편들에선 단순히 데드풀이 제4의 벽을 깨는 캐릭터였다면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에선 TVA를 활용하여 영화 설정 자체가 제4의 벽을 깨버린다. TVA를 활용하는 방식은 이 조직이 처음 등장했던 <로키>보다 흥미로웠다고 생각한다.


4.

 영화는 드라마 <로키>에서 소개되었던 '보이드'라는 공간에서 대부분의 사건을 진행한다. 다만 <로키>에서 보이드는 'TVA가 처리한 존재들이 격리되는 곳'이었다면, <데드풀과 울버린>에서는 새로운 설정을 더해, 일종의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분리수거장' 같은 곳으로 묘사된다. 20세기 폭스사가 디즈니에 인수되어 새롭게 MCU에 편입된 캐릭터들을 소개하기 딱 좋은 공간으로 보인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게다가 영화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싹 다 써먹어보자'라는 생각인지, 두 세계관을 묶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잊혀있던 과거의 다른 영화들까지 적극적으로 들고 나와 활용한다. MCU 이전 별개의 시리즈로 제작되었던 영화 <판타스틱 4>의 쟈니 스톰을 비롯하여 영화 <엘렉트라>, <블레이드> 속 캐릭터들이 캐스팅까지 그대로 유지한 채 등장하며, 심지어 디즈니의 20세기 스튜디오 인수와 함께 제작이 전면 취소된 비운의 영화 <갬빗>의 캐릭터 또한 등장한다.(이런 면에서 스크린 테스트 이후 무산되었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슈퍼맨이 영화 <플래시>에서 깜짝 등장했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팬들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는 부분.


 이 외에도 관련 소식에 능통한 사람들이라면 피식할 수밖에 없는 설정과 농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물론 이런 영화 내외적인 요소들을 알고 있지 못하더라도 약간의 눈치만 있다면 감상에 큰 무리는 없다. 영화 속에 녹여져 있는 모든 코미디 요소들을 이해하고 넘어가겠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저런 사정을 알고 영화를 보고 난 이후 감상은 크게 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5.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이런 설정과는 별개로 봐도 꽤 재밌는 액션 영화임은 분명하다. 메인으로 세운 두 캐릭터 모두 죽지 않는다는 설정 때문에 가능한 막무가내 액션은 시원시원해서 보는 맛이 있다. 특히 데드풀이 울버린의 뼈를 활용해 TVA 요원들과 전투를 벌이는 오프닝 시퀀스는 관객들을 성공적으로 몰입시켜 준다. 데드풀과 울버린이 서로를 찌르고 쏘며 벌이는 전투는 극 중 대사처럼 '관객들이 보고 싶은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전 두 편의 영화에서도 느꼈지만 이 시리즈는 대사가 쉴 틈이 없다. 주인공이 고뇌에 빠질 때에도, 위기에 처할 때에도, 몸 한두 곳이 부러지고, 총에 맞아 피가 튀고 사람이 말 그대로 갈려나갈 때에도, 심지어 고문을 당할 때에도 영화는 대사를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 이렇게 던지는 농담들이 실소를 터뜨리기엔 부족함이 없어 최소한 지루함은 느낄 틈이 없다. 다만 취향 아닌 관객들에게는 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6.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어쨌든 데드풀이든 로건이든 돌아왔다. 그것도 꽤 잘 만들어서 돌아왔다. 많은 관객들이 피로를 느끼고 있던 MCU 세계관에 활력을 불어넣은 영화임은 확실하다. 이 한 편을 가지고 지금까지 실망하고 떠난 팬들을 모두 붙잡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닐 수 있지만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극 중 데드풀의 말마따나 진짜 휴 잭맨을 90살까지 부려먹을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부려먹을 예정이라면 이렇게 준수한 완성품을 통해 시리즈를 잘 꾸려가며 부려먹었으면 하는 작은, 아니 큰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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