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비덕 Dec 10. 2022

영화_가면을 쓴 자, 거짓의 유희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미국, 1999)

만약 잠깐 빌려 입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유니폼을 보고 당신을 프린스턴대 출신으로 누군가 오해한다면 '아니 이건 그저 잠깐 빌려 입은 거예요'라고 답할 것인지 아니면 슬쩍 웃으며 '알아보시는군요?'라고 할지. 사실 뭐 그 순간 그냥 일단 그런 채 할 수도 있겠죠. 우리도 리플리처럼.




행운인지 불운인지 리플리를 자신의 아들과 동문 생으로 착각한 사람은 선박재벌 그린리프였고 리플리에게 유럽으로 사라진(도망간?) 자신의 아들을 데려와 달라는 부탁까지 하게 됩니다.


상류층의 가면 속_우월과 멸시

리플리가 디키를 만나는 순간은 아주 우스꽝스럽습니다. 감독은 철저하게 리플리를 미국 하류 촌뜨기처럼 만들죠. 디키의 여자 친구와 비치에서 마주칠 때 디키는 "You are so white"라고 리플리를 놀리듯 말하는데 실제로도 리플리 역의 맷 데이먼은 태양빛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듯한 새하얀 피부에 낡아빠진 슈즈를 신고 해변가에서 처음 디키와 마지를 만납니다. 리플리는 프린스턴대를 함께 다녔다고 둘러대지만 역시나 디키는 "Do we know each other?" 이라고 다시 한번 슬쩍 너 같은 촌뜨기와?라는 선을 긋죠.

마지와 디키

하지만 이탈리아 시골마을에서 심심한 놀이 중인 두 사람에게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일종의 유희가 되죠. 리플리는 필사적으로 디키의 유희가 되기 위해 준비한 장기를 뽐냅니다. 바로 그것은 재즈. 상류층 자녀로 자유롭게 자란 디키는 재즈광이죠. 찰리 파커와 쳇 베이커 유명 재즈 뮤지션의 곡을 눈을 가리고 들으며 연습해간 그는 디키에게 재즈로 접근합니다. 둘은 어찌저찌 그래서 친구가 되죠. 그래서 탄생한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가 리플리(맷 데이먼)가 부르는 쳇 베이커의 명곡 'My funny Valentine'이기도 합니다.

리플리 마지 디키

흑수저의 가면 속_동경과 욕망

그러나 역시 부유층의 흥미라는 것은 잠깐일 뿐입니다. 리플리가 제아무리 재능 넘쳐도 알거지인걸 모를 리 없는 디키와 마지 그리고 그들의 프린스턴대 동문 프레디 마일즈까지 가세하면서 리플리는 그들의 놀이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하죠. 물러날 곳이 없는 리플리의 동경과 욕망은 비뚤어지기 시작합니다. 날카롭게 그의 욕망은 디키를 파괴하고 그리고 그를 대신하는 것으로 변모하게 되죠.

디키와 리플리

사실 그런데 영화 시작부터 리플리는 디키 행세를 하기도 해요. 이탈리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섬유 재벌가의 딸인 메르디스에게 자신이 디키라고 소개하거든요. 그 시작이 약간 복선처럼 느껴지는데 그린리프 가문의 능력을 인지한 순간부터 사실 디키를 만나기 전부터 리플리의 욕망은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가면 속 진실_양쪽 모두의 파멸

마지는 끊임없이 디키를 죽인 자가 리플리라고 의심하지만 결국 그의 가면을 벗길 수 없었죠. 그러기엔 디키의 망나니 시절 행적은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는 프린스턴대 재학 시절에도 여자 문제로 친구를 심하게 구타했고 그런 이력 등을 들어 디키의 아버지마저 디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위선으로 가득 찼던 삶을 산 것이 사실 리플리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디키 역시 마지를 사랑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죄 없는 여인을 희롱하고 그녀를 희생시키죠. (사실 이 부분은 감독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 여인을 죽인 것 역시 리플리였을 거다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리플리는 자신의 새로운 남자 친구와 새로운 항해를 떠난 선박에서 하필 메르디스를 마주쳐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르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https://youtu.be/N_A9xX_CVFA?t=96  

OST 'My Funny Valentine'


'안소니 밍겔라'의 1999년 작품인 이 영화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탈리아 풍경과 가난하고 슬프고 이중적인 리플리(맷 데이먼) 연기가 돋보이는 명작입니다. 디키(주드 로)와 마지(기네스 팰트로) 이들의 자연스러운 상류층 삶 속에 아슬아슬하게 끼어든 리플리(맷 데이먼)의 행각들이 아주 조마조마하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아름다운 태양 아래서 한없이 즐거워야 할 젊은 날의 리플리가 초라하게 그들 사이에서 위태하게 있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타인과 교류할 때 인간은 마치 달과 같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당신에게 오직 한쪽 면밖에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하는 바로 그 사람으로 늘 보일 수 있게 가면을 만드는 재주를 타고난다. 그 효과는 매우 기만적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나를 칭찬하여 나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가면을 쓴다. 우리는 가면 뒤에 숨은 얼굴보다는 가면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지 모른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독일, 1788~ 1860)-


거짓을 일삼은 것이 리플리만이었을까요? 사실 상류층의 그들도 모두 가면 속에서 진실은 모른 척했을 수도 있죠. 진실을 마주하지 않은 채 자신이 보고 싶은 면 만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삶은 위태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리플리 증후군으로 유명한 '리플리'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