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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안 Jan 20. 2021

제목 짓는 게 늘 어려워 오늘의 생각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글은 결국 지나간 자리를 더듬을 뿐이다.


일을 하러 나가는 것 자체가 생활 패턴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오늘은 12시 이전에 침대에 눕는 역사를 기록해보고 싶은데 브런치를 켜서 글을 적기 시작한 순간 이미 오후 11시 51분이다.


나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터덜터덜 집에 들어와 왜 이렇게 늦었냐는 식구의 물음에 '일하다가.'라고 짧게 대답하고 방의 온도와 습도를 살피고 건조함이 가득한 피부에 스트레스 받으며, 툭 치면 물을 뿜을 수 있을 만큼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커피를 다섯 잔 들이부은 탓인가 겨울철인 탓인가 얼굴이 너무 건조하다.


방에 들어와 읽지 않는 책들을 버리려고 한 권 꺼냈다가 찬찬히 읽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집어든 것이 시집이다. 시를 읽고 나니 또 시의 세계에서 한참 허우적댄다.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걸. 이 사람 시가 내 마음 같아. 이 시를 어떤 소재를 두고 썼겠구나. 이런 표현을 쓰다니. 이건 비약이지만 사랑스럽다.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시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는 데에만 한나절이 걸릴 것 같아 피상적으로 적었다. 피상적인 글은 무엇이든 재미가 없지만, 나는 지금 필사적으로 일터에서 꺼내온 나를 말리는 중이다. 일에 젖은 나를 말리는 일은 오래 걸린다.


감자탕을 먹고 싶어서 찾아간 점심 밥집은 손님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서, 푸드코드에서 경양식 돈까스로 점심을 해결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먹은 돈까스였지만 맛은 있었다. 아침밥을 늦게 먹어서 반밖에 못 먹었다. 저녁에는 감자탕을 기어코 먹고 말았는데, 감자탕 역시 반밖에 못 먹었다. 밥 먹으러 가기 전에 배고파서 과자를 먹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일인줄 알면서도 기어코 한다. 이 쿠키를 못 먹으면 내가 너무 비참해. 그렇게 생각하고 먹는 것이다. 옆자리에서 쿠키를 까먹는 동료가 민망하지 않도록 나도 까먹어야 해. 그렇게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하고 먹는 것이다. 나는 쿠키가 좋고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렇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몸무게가 건강에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고, 사무직 특성상 평소 움직임이 적어 뱃살이 좀 문제이긴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제 3분 밖에 없는데, 오늘 하루에 있었던 모든 일 중에서도 단 한 가지 일만 기록하라고 한다면 오늘 하늘이 무척 맑았다는 것이다. 눈이 오고 난 하늘이 청명하였고, 가을처럼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서른 살이 된 후로는 일을 하고 집에 오고 계속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나에 대한 혐오가 이어지는 날들이 많아지는데, 이것도 이제 놓아버리게 될 때가 왔으면 좋겠다. 올해는 아무 계획도 하지 않는 것이 계획이다.


바라는 것은 없고 그저 내가 어리석은 선택을 좀 줄였으면 한다. 오늘 저녁에 콜라를 마시지 않았다. 이것은 잘한 일처럼 느껴진다. 해답을 던질 수 없어도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나도 글을 써봐야겠다, 고 다짐하고 작가가 되었다던 한강 작가의 인터뷰 한 부분이 계속 생각이 난다. 작품은 2년에서 3년의 시간을 바꾸는 것이라고. 나의 2년에서 3년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질까? 내가 천착하려던 그 주제에 내가 인생을 걸어도 된다고 나를 허락해주지 않아서 실행을 못하는 걸까. 웹소설이든 아니면 무슨 글이든 쓴다고 하고 말만하고 쓰지 않는 건 내 허영심 때문이고 나는 그저 생활인일 뿐 무엇이든 쓸 수 없는 걸까. 회사에서 문서 쓰는 능력을 다 소진해버리고 온 탓이라고 해야하나. 나는 핑곗거리를 찾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인터뷰의 구절 구절들이 오늘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면서, 회사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커다란 건물에 비친 내 패딩 점퍼의 갈기를 보면서, 계속 생각이 난다. 이제 나는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라는 생각보다도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이 적은 삶에서, 나를 말리고 나로부터 생각에 알맞는 적절한 단어를 뽑아서 나열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나에겐 이 글도 발버둥 같이 느껴진다. 모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순서대로 적을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은 MBTI 과몰입자 4컷 만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알게 되었고,

하루를 요약하는 귀여운 그림을 그리는 만화도 알게 되었다.


틈틈이 SNS를 하면서 인생의 낭비를 하고 있는데, 그 낭비가 아주 낭비인 것 같지는 않아서 마음에 든다.


MBTI 기도문을 그려낸 계정 ( @ qrrating ) 과  


https://instagram.com/qrrating?igshid=2kpijyelguk3​​​​​​



하루 일기를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내는 인스타 만화 계정( @ goshimperson )을 추천한다.

https://instagram.com/gosimperson?igshid=yuk7l3nzz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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