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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안 Jan 09. 2020

비어있는 밤

잘고 가느다랗고 선명한_200108

 

 오늘은 귀가는 다른 때보다 일찍 (8시 전에 골인하다니, 감격스럽다) 했는데 '거침없이 하이킥', '토크가 하고 싶어서', '광희 영상' 같은 걸 보면서 9시가 될 때까지 바닥과 일체가 되어 시간을 흘려 보냈다. 이란이랑 미국이랑 진짜 싸우나? 주식을 빼야 하나? 친구들이 수군댔다. 주식을 빼려고 매도 걸었는데 주가가 오른다면서 이 사람들 전쟁광들이냐고 한다.

 아까 '남자가 필요하다는 간호사'라는 커뮤니티 글을 읽었는데 그 글 댓글 타래에서 교황이 'War never again! Never again war!'라고 말한 걸 '결코 다시 전쟁! 결코 다시 전쟁!'으로 번역한 걸 봤고 거기에 누가 '오직 전쟁'이라고 코멘트를 달았으며 그에 다시 '교황께서 전쟁을 원하신다!', '성전이다, 우매한 이단들아!', '십자군 출격이다'라고 댓글을 단 타 커뮤니티 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치킨이 너무 절박하게 '땡기는' 밤이다. 늦게 귀가하는 동생에게 택시비 줄 테니까 택시 타고 오라고 했다. 동생 성별은 여자고 밤에 택시 타기 무서워 한다. 지하철에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좀 더 안전하지 않겠냐는 주의다. 그런데 지하철 타고 뭐 하고 오면 1시간 35분 거리인데 택시 타면 30분 조금 넘게 걸리더라. 지하철 타고 우회적으로 돌아와야 하는 루트였던 것.

 예전에 돈 아낀다고 먼 거리도 대중교통 이용하고, 택시 타면 범죄 대상이 될까 무서워서 힘들었는데. 그거 생각나서 동생에게 택시 타고 오라고 G와 나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전에는 힘들었지만 요새는 택시비 대충 얼마 나오겠다 싶고 앱도 있고 나 스스로 길눈도 좀 있고, 지하철에서도 범죄는 일어나며, 30분 만에 집에 올 수 있는데 밖에서 1시간 넘게 더 헤매는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체력 회복에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지는 나이가 되었다.)에 택시 타고 오되 정보 찍어 보내라고 했다. 아마 이것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얼마간 합리적인 타협이지 않을까? 택시 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얼마나 고되고 대단한지 곁에서 종종 볼 수 있기에 모든 택시 기사를 범죄자 취급하려는 건 아니다. 흉악한 사건들과, '아가씨 남자친구는 있어요?', '저 골목 들어가면 못 나와요. 그냥 여기서 내리세요.'라고 했던 어떤 사소한 과친절과 덜친절도 있기에 택시 타는 것 자체를 선호하게 되진 않는 것 뿐이다.  


 올 때 치킨 다섯 마리 사오라고 했는데 그냥 왔다. 단죄해야겠다.


 오늘은 어제 4시간 밖에 못 자서 날짜 바뀌기 전에 자려고 했는데 비건 빵 먹고 도라지 차 마시고 디카페인 커피 마시고 ADsP 수험 서적 앞부분을 조금 읽어보았다. 2011년 경 전세계 디지털 정보량은 약 1.8ZB(제타바이트)였단다. 이것은 1.8조 기가바이트인데, 2,000억 개 이상의 고화질(HD) 영화를 4,700만 년 동안 시청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량이며 이것이 2020년에는 관리해야 할 정보량이 50배 이상 증가할 거라고 했는데 지금이 2020년이다. IDC&EMC, 'Digital Universe Study 2011'에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핸드폰 128GB도 작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1.8조GB 무엇? 너무나 엄청난 일이다.


 쾌변에 좋다는 젤리와 다이어트 젤리를 먹었다. 비타민D가 들어있다는 젤리도 먹었다. 돌이켜보면 젤리를 좋아하는 인생이어서, 치과에 그렇게 돈을 많이 갖다 바치나보다. 오늘은 안에 초코나, 슈크림이 들어있는 빵도 먹었다. 회사에 새로 들여온 미숫가루와 우유를 믹스한 음료를 마시기도 했다. 김치찌개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네시 이십 오분쯤 되니까 딱 허전한 느낌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까 12시 되기 전 쯤에 또 엄청 배고파서 치킨 다섯 마리를 외쳐댔다.


나 : "아, 너무 먹고 싶다."

S : "그래? 이 언니 보니까 사와야 할 거 같아."

G : "안 돼, 내일 먹자, 치킨."

나 : "내일은 안 먹을 거야."

G : "아..."

S : "저건 진짜 절박한 거야. 지금 먹어야 되는 거야. 난 알아."

나 : "넌 아는 구나.ㅠㅠ"

G : "(심각한 어조) 언니. 이 시간에는 진짜 안 돼. (위에) 구멍 나. "

나 :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

S : "....지금 사오는 게 나을 거 같은데..."

G : "지금 먹어야 돼? 어떻게 해 줘? 지금이라도 나가서 사와?"

S : "그래, 지금이라도 가서 사올까?"  

나 : "......(물 들이키며) 그래, 아냐, 구멍나겠지."  

S : "구멍?"

나 : "응, 구멍나면 안 되니까. 그냥 안 먹을래."

G : "구멍나는 거 무서워서 안 먹는다고? 잘 생각했어."



S는 치킨을 먹고 왔고 치킨 다섯 마리를 안 사왔다.

G는 치킨 먹으려는 나를 말렸고 나는 이 일을 감사하게 될까?



 사람들에게 글 쓴다고 알리고 링크를 공유했더니 그래도 우쭈쭈해주는 반응이어서 좋았다. 이제 링크는 안 돌리고 혼자 써나가보려고 한다. 읽는 것 자체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만큼 잘 써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은 많지 않다. 각 잡고 글 쓰면 체력이 많이 닳는다. 오늘은 문서작업을 상대적으로 많이 해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낼 여력이 많이 남지 않았다.

 커피 쿠폰을 선물 받아서 감사 표시로 전화를 했고, 생각보다 전화를 오래 했다. 오늘을 이야기하면서 오늘을 정리하고, 미래를 얘기하면서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인가보다. 날이 풀리니까 공기가 바로 나빠졌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걸어서 집에 왔고, 오다가 내가 딱 키우고 싶은 너무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집에 와서 인스타그램 만지면서 러브둥둥 님 견생일기 봤다. 너무 귀여워서 자꾸 돌려봤다. 진짜 컷 구성+사랑스러움+표현력 미쳤다.


 녹슨 기계를 돌리는 것처럼 뇌가 버벅댄다. 자러가야지. 잠은 중요한 것이다.

 깝치지 말고 잘 자두자. 잠 은행에서 차압하러 오면 답이 없다.




 ______ 당신의 자리는 빈칸

비어있다 그것은 주로 밤이고

밤은 지나가고 아침에는 당신 또

비어있다 일하러 가면 일이고   

살뜰하게 밤이 온다 ______


밤이 차라리 아주 왔으면,

기도해도 또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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