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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안 Jan 10. 2020

귤로 나는 겨울

잘고 가느다랗고 선명한_200109

 펭이 타이벡감귤을 선물해줘서 집에 귤 부족하지 않아서 좋다. 회사에는 효don(돈) 감귤이라는 게 왔는데 작은 걸 시키셨는데 정말 작다. 그래도 맛은 있다. 귤의 표기법이 영어로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것 같고 tangerine 말고도 품종은 많으니까 어서 빨리 정부 유관기관이 정신 차리고 귤 이름 좀 영어로 제대로 정했으면 좋겠다. 정 안 되면 Cure 라고 해도 좋을듯. 외국인들 발음하기 좋고, 신기하게 들으라고 일부러 cure. 하지만 난 귤이 정말 cure (치료제) 같거든.


 오늘은 나의 퇴근 후 넷이 모여서 치킨을 먹었다. 사실 애들이 다 먹고 내 것만 남겨줬다. 야근 한 시간 하고 집에 가니까 8시였다. 남은 치킨을 먹고, 야근 식사로 샀던 김밥도 다 먹었다. 배가 아주 부르다. 다이어트하고 체중 관리하던 시절에는 입에 뭘 넣기 전에 사진 찍고 생각했다. 칼로리를. 지금은 일단 먹고 생각한다. 배에 튜브가 점점 불어난다. 찔 때가 있으면 뺄 때가 있는 법이다.


 아침엔 회사 미숫가루 및 우유 갈아준 음료 먹고, 또 두유 먹고, 고구마와 커피를 마셨다. 점심 때는 스타벅스에 피신을 갔다. 가서 유기농 말차 라떼 먹고 하루종일 우유의 저주 때문에 고생했다. 배 고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때 우유를 마셨다. 비타민D와 칼슘이 든 젤리를 먹었다. 콜라겐 분말 스틱을 먹었다. 프로바이오틱스 분말 스틱도 있어서 먹었다. 서른 두 살이다. 허기질 때마다 까먹은 귤이 한 네 개 되는 것 같다.


 한참 인터넷에 빠져서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아, 자야지' 싶어서 정신이 들었고 부랴부랴 브런치를 켰다. 맨날 이런 식이구먼. 친구들은 내 브런치를 읽어주곤, '너 그냥 웹소설 써.'라고 하기도 했다. 돈 벌려고 하는 거냐면서, 돈 벌 거면 그냥 웹소설이 낫다고 했다. 일기로는 괜찮지만 상업적으로 쓰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스토리를 들려줘야 한다고 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웹소설 시장 치열하다는 얘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웹소설의 세계에서는 두 달 치 비축분을 들고 시작해야 한다던데, 그게 아마 사실이겠지?


 전에 인터넷에 판타지 소설 연재한 적이 있는데, 백 몇 화까지 쓰고 완결 못 낸 적있다. 그 소설 줄거리나 인물 설정 같은 건 참신하지가 않았고 일종의 퓨전물이었는데 현실 탈주의 욕망, 아름다워지고픈 욕망, 힘 세고 영향력 있어지고픈 욕망을 그대로 표출한 설정이었다. 그런 설정으로 시작하면 대개 중박은 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디테일에 울고 웃으며 설정도 비범해야 하는 것 같다. 가난하지만 겜잘알 달빛조각사?


아무튼 아래와 같은 말이 들려서 정신이 돌아왔다.


G : 전에 네*버 딱 들어가면은 원래 쇼핑 나오고 광고 뜨고 해서

쇼핑을 엄청 하고 싶고 그랬는데 이제 바뀌어서 지금은

가운데 검색만 딱 뜨잖아 그러니까 별로 쇼핑 안하구 싶다

안 보게 돼 내가 진짜 필요한 것만 검색하게 돼 훨씬 좋은 거 같다


S : 난 요새 다 네이*로 가입해


SKT는 대통합을 말하고, CES가 열리고 있는 와중에, 네이*로 고지서도 낼 수 있고 네이버*이로 쇼핑도 다 되고 (중소 쇼핑몰은 대부분 네이*페이로 결제가 된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이제서야 컴퓨터 관련된 것, 데이터 관련 된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으니 지금 가나다 배우고 ABC 배우는 아이나 다름없다. 느슨하게 놀 때가 아닌데 너무 놀아버렸다. 반성한다. 흑흑, 오늘은 특히 잠 은행에 이자 내러 가야해서 길게 못 적는다.


길게 못 적도록 된 이유는 시간을 헤프게 썼기 때문이다! 헤프게 쓴 시간을 이유는 없지만 번호를 붙여봤다.


1. json

json에 대해 설명하는 9분 55초짜리 강의 영상을 봄, 인도 액센트 영어를 오래 들으니 신기했다.

json에 대해서 본 이유는 API라는 걸그룹이 생긴다고 하는 소식을 공유한 페친의 글에 누가 xml이랑 json도 같이 제공하냐고 물어봐서였다. (빵 터짐)

뭐 결국 json은 경량 데이터 교환 형식인데 사람이 보기 쉽게 쌍으로 이루어 전달하는 포맷이라고.


2. Emilia Clarke

Emilia Clarke video가 내 인스타 피드 메인에 떠서 보다가 결국 유**에 검색해서 상단에 있는 비디오 4개 정도를 봤다. = 1시간 소요

용엄마 너무 사랑스럽고, 노래도 부른 줄 몰랐고(<미 비포 유> 봤는데 말이지), 이렇게나 해맑은 성격인지도 몰랐다. 해맑아서 핸드폰 주변이 밝아지는 느낌까지 들었음. 장난끼도 많지만 배려심 있고, 너무 귀여운 성격이다. Where are my dragons 를 Meme으로 활용해서 Where is the toilet paper? / Where is my orange caramel frappuchino? 하는데 오랜만에 박장대소 했다.


3. Tichu

Tichu를 해서 1번 지고 3번인가 이겼다. = 20분 소요


4.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장수 드라마, 우리집 공식 애청 드라마) 를 두 편 넘게 시청함 = 1시간 반



정신 차리고 이걸 쓰고 있지만 곧 날짜가 바뀔 예정이다.


 대표님이 집에 어제 일찍(ㅎ) 가서 잠 안 자고 뭐했냐고(?ㅎ) 자기 오늘 얼굴 너무 안 좋아보여요, 라고 하셨고, 점심 시간에 사우나라도 갔다 오지 그래요, 하더니 아 남자들은 종종 그러는데 여자들은 잘 안 그러더만 화장 때문에, 자긴 화장 잘 안 하니까 가도 좋지 않나, 다녀오면 피로도 좀 풀리고 할 텐데 — 라고 하셔서 “앟, 앟하 사우나요, 몸 좀 노콰고? 아하핳” 라고 바보 같이 대꾸했다. 노콰고? 무슨 말이야. 내가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다.

 사무실에는 면접 보러 온 사람이 두 명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은 나랑 비슷한 과라면서 대표님과 팀장님이 내 과라고 두어번이나 말을 했다. 예전에는 나도 얼떨결에 같이 면접관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갔을 때 맘에 들어한 사람들은 안 오거나 대표님 마음에 안 들거나 했고 오더라도 금방 나가버려서 더 이상 면접관으로 들어가기 싫어져서 바쁘다고 뺐다. 인연이 아닌 사람들을 자꾸 만나서 내 정신을 갉아먹히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게다가 면접하는 날은 야근하는 날이다. 업무를 미루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면접 본다고 내 업무 조정해주는 그런 호사를 누려볼 수 없어서 아무튼 면접은 못 들어간다.


 새로 온 디자이너의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고 덕분에 한숨 돌리고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는데 오늘 K2가 디자인 구성안을 퇴근 시간 3분 전에 괴발개발로 던졌고 디자이너는 집에 못 가고 아마 죽을 때까지 그걸 만들었을 것이다. 내일 12시까지 넘기면 될 걸 클라이언트한테 검토 할 시간 준다고 부득불 오늘 야근을 시켰나보다. 출근 4일째이신 분 야근 크리 제대로 타게 만드네. 마케터도 그렇고 회사 사정도 그렇고 참 그렇다. 나도 일을 못하면 집에 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일을 퇴근 시간 3분 전에 주는 것도 좀 정말 아니라고 보는데. 뭐 아까 10시 3분 전에 팀장님한테 메일 오던데. 열어보니까 전부 텍스트 작업이고 요소는 몇 개 안 넣긴 했는데, 그래도 그럴싸하게는 만들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 속에서(...). 나는 오늘 일찌감치 도망나온 기분이어서 이래저래 씁쓸했다.


아, 맞다. 오늘 컴퓨터 무한 부팅 잠깐 걸려서 굉장히 좌절했었다. 명령 프롬프트 켜고 이렇게 저렇게 만져봤는데 도저히 안 되어서 일부러 대표님께 컴퓨터 안 된다고 징징댔더니 약속 있어서 나가봐야 하신다던 분이 끙끙대다 아무튼 어쩧든 복구를 시켜주고 가셨다. 자료 다 날아갈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고, 컴퓨터 블루스크린 제가 올해 봤으니 여러분은 안 마주치시길 기도합니다.



귤이 있고, 밥을 굶지 않는 좋은 겨울이다.

글쓰기도 작심삼일을 넘겼다.

좋아, 이제 다음번엔 농축된 걸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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