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소방서 말고, 초등학교 말씀드렸는데요

by Life as an audiologist

나는 택시를 자주 타는 편이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아주 고마운 교통수단이다.


물론 다양한 성격을 가진 택시 기사님들이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이동 시간 동안 택시 기사님과 차 안에서 나누는 소소한 수다를 즐기는 재미도 있다.

여행을 가서 탔던 택시 기사님과의 어떤 대화는, 돌아오고 나서도 긴 추억으로 가슴에 남는 경우도 있다.


그 지역 길을 잘 모르는 타지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ㅇㅇ 초등학교로 가주세요."

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운행을 시작하셨다. 조용한 차 안 가운데서 잘 가고 있겠거니- 하고 있는데 기사님이 다 왔다고 내려주신 곳은 웬걸, 내가 가야 했던 동네가 전혀 아니었다.


"어? 여기 ㅇㅇ 초등학교 맞아요?"

"ㅇㅇ 소방서 가달라면서요."

"네? 전 그런 적 없고, ㅇㅇ 초등학교 얼른 가야 하는데요.."


기사님은 내가 ㅇㅇ 소방서에 가달라고 했다고 끝까지 우기셨다. 난 소방서 근처에 갈 일도 없으며 이 지역에 소방서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실수로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다시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법도 한데, 끝까지 큰 목소리로 내가 소방서라고 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아, 이 분 귀가 잘 안 들리시는 분이라는 걸 눈치챘다. 여기서 내가 아무리 목소리 높여봤자 이길 수 있는 방도는 없다는 판단과 함께 다시 기사님 귀에 가까이 대고 목적지를 말씀드리려는데 기사님 귀 안 쪽에 cic 형태 귓속형 보청기가 보였다. 제대로 된 소리 조절과 관리가 되고 있는 보청기인지 의심스러웠다. 직업병이 발동하여 입이 근질거렸지만 그날은 참기로 했다. 1분 1초가 아쉬운 날이었다. 나는 기사님과 더 이상의 불필요한 실랑이는 생략하고 이번엔 두 배로 더 큰 목소리로, 천천히 말씀드렸다.

"아저씨, ㅇㅇ 초-등-학-교-로 지금 바로 가주세요."


병원에서 진료받고 난청, 이명 등으로 상담하는 환자분들을 보면 대부분 본인의 청력 손상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잘 안 들리는 상태에 신체가 적응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서서히 나빠진 청력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 없이 점점 더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특히 고주파대부터 난청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2k Hz 이상의 고음역대의 주파수에 해당하는 음은 주로 자음 중에서도 [ㅅ], [ㅎ], [ㅆ], [ㄱ] 등이 있다. 발음 [ㅊ] 또한 1k Hz와 2k Hz 사이의 주파수에 해당한다. [초등학교]라는 말을 [소방서]라고 듣고 잘못 이해한 점으로 유추해 볼 때, 위의 기사님은 난청 중에서도 고주파 난청이 심한 감각신경성난청일 가능성이 크다.


보청기와 같은 청각 보조기기 사용 시, 첫째로 일상생활에서 거북함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적응해야 하는 점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은 제대로 된 주파수 압축과 최근 청력 검사 결과를 토대로 한 적절한 피팅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본인의 꾸준한 관심과 의지, 그리고 전문가의 주기적인 관리가 필수적이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아주 소중한 교류 수단인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일상 속의 사소한 해프닝들이 쌓여 큰 근심과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무조건 못 듣는다고 핀잔을 줄 게 아니라, 주변인들의 배려와 이해가 꼭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소음과 스트레스 등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의학 및 기술의 발전 또한 굉장히 발전한 시대이기 때문에 만일 본인이나 주변에서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난청이 의심이 된다면 하루빨리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 정확한 청력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은 결코 날 기다려주지 않으며, 좋은 날들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씩 만들어가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힘을 내어 함께 나아가 보자.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가는 길은 더욱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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