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춤

by Joao


가을 한복판에 나는 J와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흥미롭거나 보고싶은 전시들이 딱히 없었는데 J는 매년 챙겨본다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그녀의 제안 덕분에 처음 보게 되었다. 약 4명의 올해의 작가들의 수많은 그림과 오브제들이 나열되어있었고 꽤나 난해하고 어려운 전시였다.


약 3시간 이상을 걸쳐서야 전부 놓치지 않고 관람할 수 있었던, 셀 수 없이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고른다면 바로 이강승 작가의 신작 영상 <라자로>였다. 전시 속 <라자로>의 작품 설명을 간단히 인용하자면 퀴어의 시각을 통해 바라본 사랑과 비통함에 관한 안무 작업이라고 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퀴어의 시각을 통해 바라본 문학과 영화 등은 대부분 이성애를 담은 콘텐츠들보다 그 감정선이 훨씬 복잡미묘하고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내가 온전히 그들의 사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어서 좋다. 의식적으로라도 종종 보는 편이고 좋아한다.


아무튼 다시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면, 이 <라자로>에 대한 설명과 해석 없이 처음 이 영상을 접했을 때 상의를 탈의한 채 (영상을 보며 일부 그들의 감정 발현이 비자발적인 듯한 느낌이 들어서 ’상의가 탈의된 채’라고 서술하는 게 더 적절할까 싶어서 잠시 고민하였다) 끈적하게 엉겨붙어 춤을 추는 이 둘의 움직임에서 이들의 사랑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연민과 어쩌면 공감, 그리고 위로가 나에 슬며시 닿았다.


참으로 신기했다. 그 영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컨테이너 박스와 같은 삭막한 배경, 투박하고 어두운 푸른빛 형광등, 두 명의 무용수, 서늘한 노래만이 전부였다. 무용수들의 춤에 대한 해석이나 작가의 의도를 담은 어떠한 자막도, 내레이션도, 가사도 나오지 않았다. 그 춤사위의 의미를 추론할 수 있는 어떠한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았던 영상 속에서 작가와 무용수들이 표현하고자 한 그 복잡하고 양가적인 감정을 오롯이 전달받아 느낀 게 참으로 신기하고 소름 끼쳤다. 내가 이들에 거의 빙의되어 슬퍼했던 지점들을 떠올려본다.


무용수들은 상의를 입지 않고 있었고 다리의 라인이 여실히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고 춤을 추었다. 노출된 상체의 팔, 어깨, 등의 근육의 움직임과 가슴팍, 복근의 근육과 이를 덮고 있는 적절한 부피감을 가진 살의 조화는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했다. 근육과 살 덩어리들의 세밀한 떨림이 포착되는 순간마다 마음 어딘가가 아릿하였다. 살구색 물감의 명도와 채도를 다채롭게 하여 그려낸, 근육과 살가죽이 각각의 자아를 갖고 있는 듯한 생동감의 물성이 느껴지는 고전 회화 한 점 같았다.


그 순간 무용수들의 찌뿌려진 미간과 반 쯤 감아 고통스러워하는 눈까지 동시에 마주한 나 역시 같이 인상을 잔뜩 찌뿌리고 있었다.


적나라하고 가감이 없는 움직임들과의 첫 대면의 순간은 부담스럽고 민망함의 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이 고조되고 복잡해지며 양가성을 띄어갈수록 그 솔직함에 감동하였고 감사하였다.

부러웠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오롯이 전달하는 그 방식과 결국 최종적인 목적이었을, 건너편의 관찰자가 이것들을 한 톨도 흘리지 않고 전달받을 수 있게 됨을 달성해낸 것이. 또한 감동했다. 자신의 춤사위를 관조하는 냉소적인 누군가, 혹은 전달의 목표일 그 누군가의 입에서 나올 대꾸와 얼굴에서 지어질 표정들이 두렵지 않을 수가 없을텐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마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살아숨쉬는 바로 그 것을 도려내어 꺼내보인 용기가 감동스럽다.


난 꽤나 길었던 상영시간 동안 우두커니 서서, 차마 누군가에게 드러내보일 수 없고 나조차 감당해내기 힘든 깊이의 감정들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글로 토해내었던 수많은 나의 밤들을 떠올렸다. 이렇게도 네모반듯한 글자의 틀에 일그러진 것을, 혹은 내 동그란 눈 구멍에 모난 것들을 담아내려고 하니 그리 힘겨웠던 건가 싶었다. 온몸의 살점과 근육의 흔들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진동까지도 담아내는 그 몸의 움직임, 춤을 잠시 동경하게 된 순간이었다.


우린 약 3시간에 걸쳐 전시를 보고 나와서는 카페에서 스콘 두 개와 커피를 시키고는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내가 느낀 것들을 뒤죽박죽 나열해서 이야기해주었다. J는 말도 안되는 설명에도 이해하겠다는듯 끄덕거리며 가만히 듣고는 J가 유럽여행 중 이탈리아에서 아저씨 이야기를 해주었다. J가 이탈리아에서 만난 그 아저씨는 대화할 때 커다란 몸짓이나 제스처를 사용하며 다소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J도 그 아저씨의 적나라하고 과감한 몸짓과 손짓, 음성에 다소 놀란 듯하였지만, 내가 라자로를 보았을 때의 생경함, 동경 등과 같은 감동의 부산물들이 그녀의 마음 속에도 차곡차곡 쌓였던 모양이다.


요란한 이탈리아 아저씨도, 난해하고 적나라한 춤을 추는 무용수도, 그들이 구현하는 솔직함과 용기로 구성된 언어와 그것으로 표현함의 대가는 상당하더군. 그래서인지 나도 언젠가 솔직한 춤을 출 수 있을까 싶었다.


나의 춤은 어떤 고유한 선을 가진 춤일 것이며, 이는 우아할까 혹은 우스울까! 나의 춤을 본 너의 표정은 어떠할까 기대되지만 두렵다. 그러나 난 너의 춤이 어떠한 모양새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니 먼저 몸을 움직여주면 좋겠다. 너의 춤에 용기내어 나 역시 엉성한 나의 춤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혹여나 그럴 준비가 안 되어있다면 내가 기꺼이 먼저 용기를 내보고 싶다. 언젠가는 우리 함께, 서로 같은 음악에 맞춰 출 우리만의 진솔한 춤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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