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토마토

이규리 시인의 <정말 부드럽다는 건>을 읽고

by Joao

구운 토마토.


구운 토마토는 흐물흐물하다.

구운 토마토는 원래도 견고하지 않은 껍질 한 겹 조차의 형태도 잃어간다.

구운 토마토는 눈물을 머금고 있던, 맑고 빨간 빛의 토마토였을 것이다.

구운 토마토는 불에 익어가고 달궈지고 구워지면서 그 무거운 눈물을 내려놓는다.

구운 토마토는 여전히 빨갛다.

구운 토마토는 불에 익어가며 빨갛다 못해 검붉어진다.

구운 토마토는 물러 터지려고 한다.


난 무르다 못해 흘러내리려는 구운 토마토를 보며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치환시킨, 완벽한 줄만 알았던 너에 대한 오해의 환상들이 와해되었고

그 과정에서 처음 연민의 렌즈로 갈아끼우고 너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문득,

모든 것이 무너지고 물러가고 해체되기 시작하는 이 순간이

우리의 토마토가 단단해지고, 무르익어가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난 새로운 실망감의 너를 마주한,

내 예상만큼 지혜롭고 선하지 못한 나를 만난 이후,

내 예상만큼 부드럽지 못한 너가 더욱 힘에 부쳐도 괜찮을 것 같다고,

구운 토마토처럼 온몸에 힘을 풀고 추욱 늘어져 서로 기대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너에게, 또 너를 사랑하는 나에게 구운 토마토를 권유하고 싶다.

매일 아침을 비롯해 매 계절, 우리가 맞이할 알 수 없는 그 시간들을,


우리는 또 토마토를 구우며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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