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터지기 직전의 복숭아는 달다

by Joao

나의 모든 불안과 염려, 이들로부터 파생된 우울감의 기원이 무엇인지 이제는, 아니 이제야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현재의 나의 영혼과 물리적인 육체로 살아가고 존재하는 이상 절대 내가 해결할 수도, 누군가에 의해 해결될 수도 없는 문제임이 날 괴롭지만 나를 조금은 들뜨게 만든다. 내가 보아도 조금은 변태 같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괴로움과 답이 없는 고민들의 시간들이 오래된 엿가락 마냥 늘어지다 보니이 기다란 괴로움이 일상의 기본값으로 설정되었다. 우울감이 없는 날들이 어색하고, 생각의 쉼만이 주어진 날들은 부담으로 다가오거나 심지어는 스스로 무료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매일 고민의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와 나의 몸짓이 지치고 처절해 보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 과정 속에서 우연히 헤엄치듯 앞으로 나아가지면 꽤나 짜릿하고 즐겁기도 하다. 들뜬다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까닭 때문이고, 계속해서 이러한 막연한 움직임들을 만들어내고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하루 중 깊은 심연의 고민들이 한 번씩은 얼굴을 비춰주어야 그래도 좀 하루를 좀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명력을 느끼기도 한다.


꽤나 깊은 고민들의 답 없는 물음표들이 나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오는 순간마다 물음표 곳곳의 뾰족한 모서리들에 찔릴 때 고통과 동시에 쾌락을 느끼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것들을 궁금해하며 다치기도 하지만 이러한 미지의 숲 속을 헤매며 만나는 울창한 나뭇가지들에 긁히고 넘어질 때 생기는 상처. 그리고 거기서 흐르는 빨갛고 생생한 선혈의 그 또렷한 선명함은 나를 끓게 하고, 새로이 한다. 나는 명확하지 않은 자아이기에 내가 가지지 못한 명확함에 흥분하고는 한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해결할 수 없는 자극과 고통의 사유를 자진해서 지속해 나가는 나를 답답해한다. 일부는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다그치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종종 쓸리고 긁히게 되면 이러한 사유와 공상을 더욱더 멈출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은 따스하고 안전한 비닐하우스의 온실 속에서 상처 없이 자라난 복숭아들을 좋아하고, 즐겨 찾는다. 보기에도 좋기에 먹고 싶어 하는 걸까? 내 눈엔 아무 흠도 없이 자란, 옅은 분홍빛이다 못해 뽀얀 색깔을 드러내 보이는 복숭아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리 달아 보이지 않는다.




나에겐 물러터지기 직전의 복숭아가 당도도 높고 흉한 외모를 보기와는 달리 가장 부드럽고 제일 맛있는 것 같다. 내가 찾는 복숭아는 곳곳이 잔뜩 짓뭉개져서 물러있다. 어딘가에 크게 부딪힌 복숭아의 거무튀튀한 멍 부분들. 이 빛바랜 상처와 멍을 촉촉이 한 입 베어물 때 뇌 속 내밀한 어딘가를 깊게 자극하듯, 나의 상처 역시 달큼하지 않을까 행복한 질문과 동시에 슬며시 미소를 띄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