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여덟 시. 특별한 이유도 없이, 혹은 그 이유를 애써 찾지 않았기에 더 기묘한 거북함 속에서 눈을 떴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여행하기로 약속했던 동행자처럼, 어처구니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지겹게 매캐한 갈증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눈은 아직 절반쯤 감긴 채, 나는 몸을 일으켰다. 설하부터 기관지 사이사이까지, 팽창한 복어의 가시처럼 따끔한 통증이 흩뿌려졌다. 낯선 통증이었지만, 새로운 병을 의심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불길한 징조가 한 번도 내 편이었던 적 없으니까.
뭔가 있어 보일 만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짧은 밤 사이 잠이 채 가시지 않은 피부의 털들이 살짝 곤두서며, 나름대로의 자신감 넘치는 육감을 발휘할 뿐. 하지만 나는 내 육감을 믿지 않는다. 내 육감만큼 어리석고 우매한 것도 드물다. 맹신의 화신이 눈앞에 나타난다 해도, 내 불신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내가 이미 그 화신에게 조용히 삼켜진 뒤일 것이다. 접촉 한 번 없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퀴퀴한 것들이 모조리 삼켜지고, 정체 모를 난자와 정자가 떠다니며 텅 빈 공간에 수태하여 알 수 없는 것들이 자라나겠지. 그쯤이면 더는 그것을 뇌라고 부를 수도 없을 테지만.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물 한 컵을 꿀꺽 삼킨다. 복어에게 물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크게 내는 소리로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만 내 목에 박힌 소리의 가시들이 칼집으로 되돌아갈 테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다. 0에 당첨되었다. 복어는 아직 꿈속이다.
어느새 벚꽃은 모두 졌다. 봄 내내 흔들리며도 버텨내던 꽃들이, 5월의 문턱에서 소리 없이 ‘상실되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흔적을 남기며, 냄새와 끈적임, 퀘퀘함을 남기며 어딘가로 잃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한 바퀴 돌아, 내년 봄쯤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변한 건 없었다. 늘 아침마다 간선도로를 메우는 수많은 차량,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이어지는 정체, 트랙 위를 걷는 사람들의 일정한 발걸음, 자전거 체인 돌아가는 소리, 강물의 일정한 흐름, 하늘을 수놓은 구름, 가장 높은 음계에 박힌 듯한 태양, 그리고 천재지변에도 꿈쩍 않을 견고한 건물들까지. 변화는 없다. 다만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 위로 초록이 끈질기게,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목구멍을 타고 오르는 매캐함을 샤워로 씻어낸다. 잘 닦이지 않아 바디워시를 세 번 펌핑해 문지른다. 아직 어린 복어의 가시들이 턱 밑에 잔잔히 매달려 있다. 길어지면 온몸을 겨눌 창이 될 테니, 면도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거울 속 나를 응시한다. 거울을 바라보는 나는 실체를 가진 객체로서 거울 속의 나는 나의 잔영이라 생각했지만 거울 속의 내가 자유의지를 가진 객체이며 그것의 잔영인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거울 속의 개체의 잔영일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거울을 따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거울의 내가 나를 따라 하는 건지, 내가 거울을 따라 하는 건지 헷갈리지만,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면도날로 가시를 회 뜨듯 잘라낸다. 생선이 아닌 사람의 얼굴을 다시 쓰고, 아무 옷이나 입고 가방에 1Q84와 태블릿, 충전기를 챙겨 차에 오른다. 차는 하품을 길게 한다. 밤새 잘도 잤나 보다. 부럽다. 잠을 깬 뒤 다시 들기는 어렵다. 내 그림자는 이제 피로를 데리고 다닌다. 형체 없는 피로는 지구보다도 강한 중력으로 나를 눌러댄다. 탈골된 어깨가 으스러질 듯하다. 이제 '피곤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두개골이 울리고, 뇌수가 떨리고, 동공이 흔들릴 정도다. 정신줄을 붙잡고 선곡을 고른다. 이보다 어려운 일도 없다. 1300곡 중 오늘의 첫 곡은 봄의 ‘123’. 찢어지는 중저음의 락힙이 나를 겨우 깨운다. 완연한 봄이 가기 전, '봄'을 듣는 것도 꽤나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흐뭇해한다.
현을 태운다. 오늘도 웃는 얼굴이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싶지만, 밤이 더 긴 그림자를 지녔을 그의 속을 나는 모른다. 학교 수업은 여전히 고리타분하다. 사람의 몸, 나이별 변화, 외면 속 내면. 지루한 반복이지만, 겉으로만 평가받는 시대에 내면을 공부하는 일은 가끔 흥미롭다. 잠시나마.
집중이 안 돼 책을 꺼냈다. 하룻밤 사이 몇십 킬로는 찐 듯한 거북이 같은 시계의 초침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 두 줄만 읽자. 첫 줄을 읽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두 번째 줄을 읽을 때 다이빙. 하나. 둘. 셋. 점프. 『1Q84』의 세계로. 덴고와 아오마메, 후카에리를 좇다가, 문득 하늘의 구멍을 통해 현실을 들여다보니 수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쉬웠지만 돌아와야 했다. 관념을 다시 몸에 채우고, 책갈피를 꽂아 집으로 향했다.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가 흘러나올 즈음, 집 주차장에 도착한다. 제목이 기막히다. 그런데 목이 왜 또 막히는지. 복어가 깨어났나 보다. 잔기침이 점점 아프다. 무시하자.
허둥지둥 주차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찬과 바다에 가기로 했다. 바람을 이기기 위해 두껍고 긴 옷을 입고, 선크림으로 얼굴을 덮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누구보다 빠르게 변해야만 한다. 나조차도 모르게. ’변장‘은 종종 생존과도 같다. 완성.
밖으로 나서자 찬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두 팔을 벌려 인사하자 내 안에서 금이 간다. 하늘은 맑지만, 내 가면은 점점 부서져간다. 찬은 좋은 사람이다.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간다. 자주 손바닥을 내민다. 그 손바닥이 때로는 나의 땅이 되고, 울음을 삼킨 우물의 가장자리가 되어준다.
1시간 반을 달려 영종도에 도착했다. 바다는 거칠게 인사한다. 두껍게 입었어도 바다는 얕볼 수 없다. 기침이 새어 나왔지만, 기대와 설렘으로 달궈진 몸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낚싯대를 빌려 찌 끝에 미끼를 단다. 냉장 새우와 꿈틀대는 지렁이. 입도 항문도 없는 지렁이를 바늘에 꿸 때마다, 나도 지렁이도 어디가 뚫리는지 알 수 없다. 온몸을 비트는 지렁이의 움직임은, 마트 앞 홍보 인형과 같다. 그리고 자각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낚싯대는 던지는 것조차 어렵다. 너무 멀리 던지면 엉키고, 약하면 미끼가 바로 발밑에 떨어진다. ‘적당히’ 던져야 하지만, 그게 제일 어렵다. 그날의 바람, 거리, 기분까지 어림잡아야 하는 감각. 말로는 쉬운 그 ‘적당히’라는 말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단어다. 터에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찬에게 묻는다. “다들 뭐 하나쯤 낚으러 온 거겠지?” 찬은 대답한다. “난 너와의 추억을 낚으려고.” 그 말에 마음 한구석이 울컥한다. 부끄러움에 붉어진 뺨을 추위 탓으로 둘러댄다.
오늘 나는 ‘낚으러’ 온 게 아니다. 오히려 ‘던지러’ 온 쪽이다. 긴 낚싯대에 엉키고 설킨 무용한 걱정들과 불안들을 미끼라는 한 점의 응어리에 투사해 그냥 냅다 던진다. 착란을 일으킨 생각들을 정리할 겨를도 없다. 생각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니까.낚시터를 바라보다 보면, 의식이 희미해진다. 뇌가 무너지는 대신 그 자리에 묘한 평온이 스며든다. 아까 그 지렁이처럼 나도 이 현실 안에서 의미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현실이 나를 따돌리는 기분이다. 이따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깜빡 잊을 뻔하기도 할 만큼 현실이 나를 두고 가버리는 기분이 지속된다. 기침을 하며 추위를 느끼면 아직 여기(현실에) 있구나 느끼지만 미끼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경계하는 물고기들처럼 의심을 놓을 수는 없다. 발끝에 한기가 맺힌다. 감각이 점점 무뎌진다. 꿈 혹은 다른 세계로 넘어가기 전 초기 증상이다. 무감각.
신발을 벗고 양손을 비벼 얼어붙은 발을 녹여본다. 아, 근데 하늘을 본 게 언제였더라. 최근에 나는 땅만 보며 걸어 지내온 것 같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덴고와 아모마메가 바라본 하늘을 생각한다. 두 개의 달이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