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by 정세훈

네가 쓴 편지지에서의 곰처럼, 새벽녘에 많은 고민을 품은 채 턱을 괴고 써 내려간 글자들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워서, 나도 이렇게 급히 답장을 써. 너도 알다시피, 나 역시 '관계'에 대한 고민이 누구보다 많았던 사람이고 아마 지금도 그 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있잖아—

나는 요즘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가고 있어. 내 울타리 안에 모든 걸 담으려 애쓰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내려는 집착에서도 조금씩 물러나. 그 가운데서도, ‘남겨질 것들’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기로 했어. 비유하자면 말이야, 주먹을 꽉 움켜쥐었을 때 부서지고 마는 것들에 더는 연연하지 않으려 해. 한 줌의 모래알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잠시 우리의 눈을 건조하게 하고 따끔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바람이 시야를 영영 가리진 않더라. 눈을 질끔 감고 두세 번 비비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또렷해져. 잠깐 따갑기는 해도, 결국 별것 아니더라. 다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감각이 조금 더 예민하고, 눈이 조금 더 크며, 손에 담아낼 수 있는 모래알의 양이 조금 더 많을 뿐이야. 그래서 더 잘 느끼고, 더 자주 흘리는 것뿐이겠지. 우리는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투박한 사람들이니까. 아무리 힘을 꽉 줘도 우리 손가락 사이의 틈을 완벽히 메울 수는 없어. 그 틈 사이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불공평한 방식과 거슬러 가는 시간들이 스며들고, 무언가는 빠져나가고 있을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엔 우리가 온전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 무엇이든 ‘잡힌다’거나 ‘잡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아프게 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붙잡음’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러해. 참, 야속하지? 그러니, 우리의 진심을 알아봐 주고 그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손을 건네보자.


어진 마음들을 그대로 잃지 말자. 옅어지는 것들은 그저 옅어지게 두고, 선명해지는 것들은 더욱 또렷하게 바라보자. 어둠이 물러나면 빛이 찾아오고, 새벽이 지나면 아침과 낮이 반드시 오듯, ‘너’라는 시간 다음엔 반드시 ‘우리’라는 계절이 온다는 걸 잊지 말자.


꽤나 추운 봄을 건너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걱정이 되네. 그러니, 우리 언제나처럼 함께 발버둥 치자. 네가 그러하듯, 네가 고개를 돌렸을 때 언제든 너나들이처럼 반겨줄 ‘내가’ 여전히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