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절기를 주세요

by 정세훈

한여름의 더위는 밤을 짧게 만든다.


짧아진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버텨보려 했지만, 내 손에 남은 건 썩어 문드러진 곡식 몇 알뿐이었다. 오래 쥐고 있자 손가락 사이로 부서져 흘러내리고, 남은 건 알 수 없는 냄새와 허무뿐.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게 과연 무엇이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지만, 그 안에는 피도, 빛도 없었다. 오히려 공허한 구멍만이 깊숙이 열려 있었다. 땀에 젖은 몸은 서늘하게 식어갔고, 나는 그 축축한 감각을 눈물 대신 삼켜야 했다.


나는 종교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때때로 7월 10일의 대속죄일 같은 성경 절기의 날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죄를 씻어낼 수 있는 의식 같은 것을 은밀히 바라는 것이다. 손에 쥔 포도주 잔 속 붉은 액체는 단순히 포도주가 아니라, 오래된 눈물과 응고되지 못한 피가 뒤섞인 듯 보였다. 흔들릴 때마다 낯설고 불편한 떨림이 잔에 가득 차올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사실 모든 것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여름의 한가운데, 나는 여전히 썩어가는 곡식들 사이에 서 있다. 그것이 나인지, 세상인지, 아직은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호함이야말로, 이 계절을 지나는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확실성일지도 모른다.

'확실성'은 아름답지 않다. 나는 아직 불완전함이 주는 찬란함을 병적으로 믿는다. 신선한 떨림과 진동으로 이뤄진 진흙으로 빚은 그릇은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다.


사람들은 평범한 것에 큰 관심이 없다. 나 또한 다를 것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쁘고 화려하며 특색 있는 기물을 찾듯이 나는 빈틈이 가득하고 흠집이 많으며 독특한 기물에 흥미가 갈 뿐이다.


입추가 지나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12월이 다가온다.

낮에는 숨어 지내다가 초저녁만 되면 내 그림자는 지하 세계에서 나오고 싶어 발버둥 치며, 밤이 깊어지면 어느새 나보다 몇 배는 커진 깊이감으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며 닥치는 대로 온갖 것들을 먹어 치우며 몸집을 불린 겨울의 그림자는 공포와 불완전함의 결합체다.

한시라도 빨리 나를 잡아 먹어 대속죄일의 축제를 벌이자


한겨울의 추위로 밤이 길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믿지 않는 신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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