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사회의 지배적 조류는 반서구적이다. 이는 이슬람 자체의 자각과 결속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사회, 정치, 경제, 윤리에 미치는 서구와 미국의 영향력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불신과 반발의 기원은 아브라함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무함마드가 이슬람 종교를 창시하고서부터 더욱 본격화되었고,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갈등을 겪으며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미국 등 서구세력이 ‘걸프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에서 보여준 오만과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로 인하여 그 불화를 더욱 부추겼다.
'정교일치'에서 출발한 이슬람은, 종교이면서 정치 그 자체이다 보니, 여느 종교와 달리 정치와 관련이 많다. 한국 정치가 그렇듯이 정치는 어느 사회든 논쟁의 시작이다. 그래서, 서구와 아시아 각국은 무슬림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었다. 이 점을 직시한, 미국이나 서구의 언론은, 중동이나 서남아, 러시아 등지에서 무슬림과 관련하여 무슨 사건, 사고라도 생기면, 그 소식을 가해자, 피해자보다 '정치적 관점'으로 해석하였다.
아랍계 언론은 한술 더 떴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슬람 종교나 정치를 철저히 옹호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조차 이슬람과 관련이 되면 적극적으로 홍보하였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자료 제공에는 매우 소극적이어서, 제3 자인 우리로서는 이들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서구 측 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몰이해'의 시작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슬람을 9.11 테러와 전쟁, 잔인함, 난민, 자살테러, 아프간 반군 등 많은 사건에서 서구적 시각에 경도된 부정적 측면으로 연관 짓는다. 더구나, 서구 언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테러리스트가 무자비한 테러를 가한 뒤 “신이 보시기에 옳은 일이다”며, 자신들이 테러를 벌였다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에 경악한다. 물론, 살인은 그 동기나 목적이 뭐든 세계인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객관점 관점도 필요하다.
사실, 누구든 테러리스트를 무서워하나, 대다수 무슬림이 종교적으로 경건하며 인간적으로 순수하다는 것을 알리려면, 언론이 그 실상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소수의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엉뚱한’ 주장을 내세우며, 외골수의 '경건한 삶'을 고집하는 것은, 어찌 보면, 겁먹거나 비겁한 아랍계 언론의 우유부단한 태도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언론은 누구든 당당하게 테러를 비난하고,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하는데...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미국에 저항하는 이슬람 과격단체 '알 카에다'는, 연쇄적으로 납치한 미국 항공기 4기 중 2기로 미국의 심장인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향하여 자살 테러를 가했다. 나머지 2기 중 1기는 미국 국방부 건물 '펜타곤'을 타격하였고, 1기는 워싱턴 (미국 의사당?)으로 향하다가 추락하였다. 테러의 목표는 세계 최강 미국의 경제와 국방, 그리고 민주주의를 타격하려는 것이었다. 이 테러로 약 3,000여 명이 사망하고, 2만 5천여 명이 부상했으며, 약 100억 달러의 피해와 함께 세계적인 경제 불황도 초래하였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테러단체, 국가에 맞서 군사적, 정치적으로 싸울 것이라 발표하며 서구와 이슬람이 강대강의 대치로 들어선 것이다.
테러 발생 직후인,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전투기를 이용한 공폭과 아프간 북부동맹군을 이용하여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 전역을 함락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 목표였던 '빈 라덴' 체포와 그의 알카에다를 와해시키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2003년 3월 20일에는 알카에다와 동맹한 '후세인'의 이라크 정부를 대량살상무기(WMD) 보유를 빌미로 공격하여 붕괴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이후 수 십 년간 이라크와 아프간의 끈질긴 저항의 늪에 빠져 엄청난 군사적,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자의적으로 철수하였다.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났으나, 테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군사적, 경제적으로 이들 두 세력이 충돌하는 빈도나 횟수가 더욱 잦아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서구의 몰지각과 몰이해에 대한 일반 서민의 반감이 점증하여 자연스레 반서방 의식의 확산으로 가고 있고, 서구는 서구대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무차별적으로 야기하는 연이은 대형 테러와 폭증하는 무슬림 난민 및 인구 증가로 일반 국민과 지도층 모두가 이슬람에 대한 포용을 잃어버려, 이들 상호 간에는 대립이 격화되고 관용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외치며 이라크와 아프간을 공격하였던 미군은, 오바마 정권이 집권하자 이들 지역에서 철수하였다. 그동안, 미국이 이들과의 전쟁에서 비록 ‘군사적’ 작전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지만, 종교적, 문화적 무지로 인해 ‘군사 외적인’ 작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각 분야에서 제기되었다.
사실, 미국 등 서구는, 미국에 의지하여 수립된 무늬만의 민주화를 갖춘 친미 정권에게서조차 환영받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철수한다는 것은 현지 정권의 패배를 의미하였다. 이라크에서 미국군이 철수하고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자, 과격한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집단인 IS (이슬람 국가)가 국가 수립을 천명하였다. 하지만, 이미 철수를 시작한, 미국으로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자신들의 정책적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잎으로도 군사외적으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오랜 기간 누적된 정책적 실수로 인한 후유증에도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발된 '규범과 반문명'의 대립에 대한 문제의 본질은, 미국과 서구가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이슬람 문명을 바라보면서, 이를 세계사적 조류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반문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는 신분제 폐지, 인권 및 여성의 존중, 여성의 참정권 확대, 일부다처제, 기타 여성을 옭아매는 각종 제도와 복장(히잡, 차도르, 니캅, 부르카 등) 폐지 등 이슬람의 기준과 가치관에 역행하는 것을 요구하였으며, 이슬람이 국제 규범이나 현대 문명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무시와 경멸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국제 규범이라는 게 누가 정한 기준인가? 대영제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동안, 그들의 문화와 각종 관습이 이룬 ‘신사도’와, 프랑스의 예의와 규범이 ‘에티켓’이라는 이름으로서, 서구인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자, 양대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강국으로 성장한 미국도 이들의 가치와 기준을 답습하였고, 유엔도 이를 준용하면서 이제는 너도, 나도 이 기준에 맞추고자 하는 것이 국제 규범이 되었다.
그럼, 이제 ‘서구화’가 답인 것인가? 사실, 거대한 이슬람세계의 문화적 우수성은 물론,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양사회의 중심으로서, 중국 주변국들에게 규범의 기준이 되었던 중국식 예법이나 규율도 서구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지만, 근대 200년 동안의 치욕스러운 역사로 인해 이슬람과 중국식은 그 빛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서구적인 ‘물질 지상주의’ 중심의 가치관에 대척하는 이슬람의 율법과 규범, 그리고 ‘신적인 삶의 가치’에 길들여진 무슬림에게는, 서구가 물질에 집착하는 '인간적인 삶'을 살면서, 심지어 마약, 섹스 등 '동물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의 경건한 삶에 반감을 갖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와 꾸란의 계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이교도나 불신자에 대한 무한 보복을 일으키는 악순환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이슬람은 저들의 교리나 기준이 용납하면, 서구나 기타 외부세계의 관점에서 분명히 ‘반문명적인 행동’으로 비치더라도, 천연덕스럽게 그런 행동을 자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애초부터 문화 간의 이질성으로 충돌은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교통과 통신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고, 행동 또한 더욱 과격해지고 반 인륜적이 되면서, 그게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어디서 무슨 생활을 하든, 무슨 종교를 믿든 이를 존중하고, 특정 종교를 믿는다고 차별하거나, 자기와 무엇이 다르다며 쓸데없는 논쟁으로 상대를 적으로 만들면 반문명이 된다. 그러므로, 정치와 종교에 대한 비교와 논쟁은 늘 분쟁을 수반하므로, 항상 모두의 말, 종교, 관습, 전통, 인종, 문화, 역사에 대한 무편견, 이해와 관용으로 서로를 대하며 나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게 새로운 국제 규범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