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드’와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와 ‘소프트 타깃’(Soft Target)
종교적 가치관의 왜곡과 폭력성으로 무장한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각종 전술은, 이제는 어느 테러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 국가(IS)는 물론, 정교일치를 지향하는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이슬람은, 자신들이 약할 경우, 이슬람을 공격하는 세력들에 대응하기 위해, ‘신의 뜻을 위한 성전’이라는 ‘지하드 (聖戰)’의 개념을 적용하였다. ‘신의 뜻을 위한 성전’이라는 ‘지하드’는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꾸란 9:5), ".. 종교가 온전히 알라만을 위한 것이 될때까지 싸우라..."(꾸란 8:39) 등등 전세계를 이슬람 율법에 복속시키고자하는 것으로, 무슬림 남성에게 정해진 의무였다.
하지만, 20세기 이후의 '지하드' 전술은 서구 식민지 시대이던 1928년 이집트의 ‘하산 알 반나’가 북아프리카 일대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만든 수니파 원리주의 조직체인 ‘무슬림 형제단’가 처음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이슬람을 공격하는 이들에 대응하기 위한 소극적인 개념이었는데, 주로, ‘결혼, 금융, 모스크(선교), 그리고 무력’ 등의 수단을 이용하였다. 참고로, ‘무슬림 형제단’은 , 2011년에는 이집트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민중운동을 주도하여, '무바라크'의 30년 군부 독재정권을 타도하였고 한때는 집권도 했었다.
'지하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은 자신이 강할 때는, 포로로 잡은 여인을 성노예 등으로 삼고, 자신이 약할 때는, 현지 여인과 결혼하여 아이와 부인을 무슬림으로 개종시켜 나가는 방식이었다. 요즘, 경제적인 목적으로 많은 아랍인이 국경을 넘어 달려오는데, 그 속에 포함된 많은 이슬람계 근로자들은, 비록, 이미 결혼하여 아내와 자식을 두고 있지만, 이슬람이 일부다처체를 허용하므로 현지 여인과 결혼하는 전술을 당연시한다.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새 애인인 이집트의 억만장자인 ‘도디 알 파에드’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뒤쫓아오던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가 교통사고로 36세에 사망하였다. 사망하기 며칠 전, 영국 신문은 다이애나의 키스 신을 대서특필하였는데… 뉴스에서 보듯, 무슬림은 신분의 귀천 여부에 무관하게 현지 여인과의 결혼에 매우 적극적이다. 반면, 무슬림은 여성을 거의 해외로 내보내지 않는다.
또한, 금융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슬람 펀드인 ‘수쿠크’ 채권을 의미하는데, 이자가 없는 이 돈을 빌려 쓸 수있다. 하지만, 반드시 ‘이슬람 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에게는 채권자가 원하는 바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이는 앞서 ‘샤리아 금융’에서 언급하였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모스크’는 ‘다와’(선교)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지하드 전략이다. 주로 ‘문화교류’ 의 명분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선진국에 침투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은 외국에 나가면 모스크를 건설하려 하지만, 자국에는 외국의 성당이나 교회, 법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통제한다(건축은 가능하다). 특히, 국교임을 내세우며 자국민의 개종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개종자는 죽음을 불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여러 행태 중에서 그 어떤 ‘지하드’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을 동반한 무력’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부 이슬람 국가는 인접국과 문제가 발생하면, 다혈질이고 자존심이 강해서일까? 조그마한 감정다툼에도 군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호전성이 좀 유별난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어느 국가가 군대를 이용하여 전면적이고 대규모적인 무력을 사용할 징후가 탐지되면, 즉각 국제적인 개입으로 이해 당사자들과 중재에 나서기 때문에 대부분 열전(熱戰)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리비아나 시리아 내전사태’에서 보았듯이, 일부 폐쇄적인 국가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감시나 간섭만으로는 무력을 통제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주변국의 이해 당사자까지 개입되면, 중재 효과를 보는 데 장시간이 소요되고, 천문학적인 비용도 소요된다. 이에 비해, 무력을 수반하는 ‘지하드’의 또 다른 수단인 ‘테러’는, 특정 국가나,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공격하는 수단으로써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고 기대 이상의 충격효과를 누릴 수 있어 매우 효과적이다.
2001년, 전 세계의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던 미국이 9.11 테러를 당하였다. 세계무역센터 등 자본주의를 상징하던 미국의 심장이 피격당한 것이다. 그 배후에 ‘알 카에다’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있었다. 미국은 즉각, 테러척결을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전 세계에 선포하였다. 그 당시, 대테러 전문가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에 이 같은 테러를 가했던 이유를 아래와 같이 분석하였다.
먼저, ‘기독교 – 이슬람’ 두 문화 간의 잦은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이다. 양대 문화의 문명 충돌적인 양상은, 과거 이스라엘이 생존을 위해 아랍제국과 치른 4 차례의 중동전쟁을 미국과 서구가 배후에서 지원한 것과, 석유이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 경험을 미군이 이라크에서 활용한 것 등이, 테러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다음은, 그들은 ‘아랍이 비록 서구의 식민지는 아니지만, 정치, 경제적으로 식민지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서구의 물질 지향을 경멸하고, 발전상을 질시하면서도, 그 물질과 발전으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서구와의 투쟁을 과거, 식민시대 때의 독립전쟁처럼 핍박과 억압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며, 서구 문명을 지지하는 것조차 죄라고 생각하며 금지하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사우디 출신으로 미국에서 유학한 이슬람 원리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그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 시, ‘무자히딘 (戰士)’으로서 참전하였고, 1988년에는 아프간 참전 아랍인들을 결속하여 사우디의 재정 지원과 미국의 군사 교육으로 ‘알카에다’를 설립하여 소련 침공 저지에 기여하였다.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협력하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 저지를 위해 미국 등 서구가 중동에 개입할 때 (‘걸프전쟁’, 1991), 사우디가 자국의 안위를 위해 '아랍 성지 수호'를 명분으로 역사상 최초로 사우디에 미국의 군사 주둔을 허용하자, 이를 반대하며 그때부터 반미활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미국에 분노한 계기는, 이라크군을 쫓던 미군이 군화를 신은 채로 모스크에 진입한 때문이라는 또 다른 설도 있다.
그는 항상 ‘미국은 세계 제1의 강국이라기보다 도둑이며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였고, 자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전통적인 아랍식 방법으로 미국의 공격에 대응하겠다고 외치다가, 1998년 미국군 철퇴를 위한 이슬람 궐기 선언문인 『화트와』(아랍어로 지시, 명령의 의미)를 공표하고, 공개적으로 ‘반유대인 및 반십자군 지하드’를 선언하였다. ‘오사마 빈 라덴’이 선포한, 이 『화트와』는 곧 ‘지하드’의 대표적인 행동 지침이 되었다. 그는, ‘지하드’의 개념을 차용하여 ‘미국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살해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세력’이라면서, ‘미국이 무슬림 민간인을 죽이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도 미국과 그 우방국 국민은 ‘민간인 또는 군인을 막론하고 모두 죽여야 한다’며, 이것이 무슬림의 의무’라고 공표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그가 조직한 ‘알 카에다’는 1993년 이래 케냐, 수단, 사우디, 아프간, 파키스탄 등에서 테러 활동을 하였으며, 2001년 9.11 테러 폭파사건을 주도하였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아프간에 이슬람 지원병으로 파견하는 등,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벌어진 국제 이슬람 세력의 반미 제국주의적 투쟁의 중심에 있으면서, 미국의 공세에 쫓기면서도 세력 확장은 물론, 도처에서 테러활동을 일삼았다. 특히, 2011년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공대에 의해 사망하기 전까지도 “블랙호크 다운”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소말리아의 강경 이슬람 반군조직과 그 조직이 지원하였던 소말리아 해적들을 ‘기독교 국가와 전쟁을 벌이며, '알라(신)'의 적에 맞서 해안을 지키는 전사’로 간주하고 그들과 연계를 가졌다. 자칫, 이들의 세력이 커지기라도 했으면, 수에즈 운하와 아라비아만을 경유하는 선박들에게 큰 위협이 될 뻔했다.
그는 ‘지하드’를 과거의 소극적인 개념에서 탈피하여, 이슬람의 방어와 확산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이교도가 이슬람의 계율을 인정할 때까지 싸우며 이슬람을 확장하라는 공격적인 개념으로 변질시켰다. 그는 이슬람의 ‘전투성’을 부추기면서 ‘반서구와 테러’를 ‘알라(신)의 뜻’으로 만들었고, 그들의 ‘지하드’를 더욱 더 반문명적으로 진화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이슬람교도라면 누구나 자발적으로 이에 참여해야 하고, 세계 어느 곳이든 이슬람이 위협받으면 언제든 달려가자는 것이다. 여기에, 수많은 무슬림이 지지하였고, 미국과 서구에 대한 '테러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초기’로 돌아가자던 이슬람 원리주의가 점차 극단주의로 치닫게 되었다.
이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는 테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기관이나 공공시설을 주로 공격하였지만, 최근에는, IS(이슬람 국가) 등 수니파 원리주의자는 '국제 규범'을 비웃듯 무고한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아무 때나 테러의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공격하면서 그들의 반문명성, 반인륜성에 대해 전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2016년 3월 27일, 파키스탄의 제3 도시 ‘라호르’에서 ‘부활절’ 행사를 맞아 놀이공원에서 어린이들과 놀던 기독교인들을 겨냥한 자폭테러가 발생하여, 어린이 27명을 포함한 70여 명 이상의 인원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하였다. 한 파키스탄 탈레반 조직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폭탄 속에 쇠구슬을 잔뜩 넣어 터뜨렸다. 다분히, 어린이들을 목표로 자폭테러를 감행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린이, 노약자, 여자 등 아무런 방어능력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들’ (Soft Target)을 공격 대상으로 정한 것은,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처단’하라는 꾸란의 계시를 따른다는 명분도 있지만, 그들의 경제력이나 무력 수준으로는 군사력 대 군사력, 경제력 대 경제력이 월등한, 미국과 전쟁 등 '고강도' 분쟁으로는 맞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동 소총과 급조 폭탄 등 '저강도' 분쟁 수단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위협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미국, 프랑스 등 민주 국가는 인권이나 여론에 민감하며, 특히나, 민간인 노약자에 대한 보호 본능이 강하다는 점에 주목하였고,
더구나, 그런 노약자, 민간인들은 경비가 삼엄한 특정 국가시설과 달리, 극장, 운동장, 공항이나 지하철 등 다중 이용 시설에서 무방비 상태로 수없이 노출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교리에 따라 모두가 한 치의 온정도 베풀 필요가 없는 이교도나 불신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비인간적인 무차별 테러로 공포심을 조장하며 존재감을 더욱 극대화하며 다른 이슬람들에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서이다. 게다가, ‘화트와’에서 그들을 공격하라고 하니, 저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반문명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로서는 저들과 ‘테러와의 전쟁’은,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어있다. 그러면, 반대 여론은 비등할 것이고… 미국이나 서구으로서는 그 점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 수행에 자칫 동력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딜레마일 것이다. 반면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처단해야 한다면서, 이런 폭력 행사를 ‘지하드(성전)’로 치부하고, 이를 수행하는 자를 ‘무자히딘(전사)’으로 부르고 정당화한다. 하지만, 어린이를 목표로 한 저런 테러조차 그들이 말하는 ‘지하드(성전)’이고, 이 과정에 숨진 테러분자가 과연 그들의 종교가 의도하는 ‘무자히딘(전사)’일까?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아무 곳에서나 자폭테러를 감행하는 자들… 왜, 그렇게 할까?
무슬림은 ‘알라(신)’와 ‘무함마드’와 더불어 이슬람 교리의 6 신(여섯 가지 믿음)에서 나오는 “내세”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정명(定命)을 믿는다. 사실 많은 무슬림은 자신의 죽음으로 무슬림의 의무를 다하고 신이 정한 내세를 가질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그들의 운명에 기꺼이 순종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 듯하다. 이런 마음자세를 가진, ‘지하드’를 수행하는 ‘전사(무자히딘)’을 확보하려는 듯, 많은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죽음을 미화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내세’와 ‘운명’ 등 정명에 대한 믿음은, 현세에 대한 불만도 감내할 수 있으니, '세속주의'든 '정교일치'든 아랍국가의 독재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논리이다. 특히, 이슬람 국가(IS) 등 극단주의자들은 이를 수많은 젊은이에게 ‘지하드’에 대한 정당성을 보여 주는 종교적 이론의 근거로 활용하였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죽음을 미화하는 일에, 순수하게 종교의 숭고성을 실천하려는 사명감에 더하여, 일부는 경제적인 필요성에 의해, 종교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는 테러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원되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에, 가난과 실업으로 가뜩이나 힘겹게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동안, 꾸란 암송으로, 또 사원에서 이맘에 의해 무수히 반복되는 세뇌교육으로 미국과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가득한 청년에게(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미국이나 서구에 의해 피해를 입어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자신이 악의 무리를 제거하며 성스럽게 죽을 때, 그의 내세가 알라(신)의 은총으로 보장이 되어 있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설득한다면, 그것을 거부할 무슬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더군다나 남은 유족까지도 ‘영광스러운 일(무슬림은 가문의 명예를 중시)이며, 경제적인 도움도 뒤따를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로서는 자살 테러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이해하면,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들이 범한 여러 가지 종교적, 문화적 무지로 인한 실수를 들추어내고 복수를 다짐하는 '수니파'의 반감이나,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대한 '시아파' 레바논 ‘헤즈볼라’의 저항심은 물론,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하마스’ 등 과격 단체들이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진압과 경제적 고통 속에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을 부추기는 것이나, IS가 서구 각국에서 차별과 냉대를 받아온 무슬림 청년들을 유혹하여 그들을 지하드의 전사로 내몰고 있는 것을 보면, 전 세계 각지에서 자살 테러 지원자가 줄 지어 있다는 외신의 보도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서구인은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고 현재를 ‘평화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알카에다’나 IS 등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지도자들은, 꾸란에서 여전히 ‘불신자와의 대결’을 강조하고 있어 평화에 대한 인식자체가 다르다. 즉,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불신자가 있는 한, ‘전시 상태’라고 긴장감을 조장한다. 이들은, 뒤끝이 강하고, 복수심에 민감한 아랍인의 의식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권력 쟁취를 위해 끊임없이 서구와 긴장관계를 조성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