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골목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느 낡은 서점을 발견했다.
그 서점의 간판은 원래 색을 잃어버린 것처럼 바랬고,
건물의 크기도 정말 작았다.
하지만, 나를 서점으로 이끈 건 간판 아래쪽에 쓰여있는 작은 글귀였다
“기억 팝니다” 이 문장이 새로우면서도 이상했다.
그 문장에 이끌려 나는 더 다가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점 주인이 ‘찾으러 오셨군요’
라고 말했다.
‘여기는 뭐를 파는 곳인가요?’
나의 질문에 서점주인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여기는 사람들의 기억들을 살 수도 있고, 팔 수도 있는 곳입니다.’
서점주인의 말을 듣고는 나는 당황했다.
‘기억을 사고 판다고요?’
기억을 사고판다는 사실에 나는 이상했다. 기억을 어떻게 사고파는 걸까. 아니 애초에 기억을 파는 사람들이 있을까?
천천히 생각하다가 내가 먼저 서점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뭘 찾으러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내 말이 끝나자 서점주인은 뒤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 책을 가져와 나에게 건넸다.
‘이거는 당신의 것일 겁니다.’
책의 제목은 “당신이 잃어버린 1년”이었다.
나는 제목을 보고는 그 상태로 몸이 멈췄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책을 보는 순간
나의 마음이 돌멩이에 부딪힌 것처럼 흔들렸다.
이게 진짜 나의 기억이라는 듯이.
서점 주인은 책을 내밀긴 했지만,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의 표정을 천천히 살피며 오래된 시계를 두드릴 뿐이었다.
그 순간에 서점 주인이 말을 꺼냈다.
‘기억은 언젠가는 흐려지죠..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흐려진 채로 어딘가에 숨어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잊기를 선택했습니다.’
‘제가요? 내가 내 기억을 팔아버렸다고?’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나는 목소리 톤을 높여버렸다.
이 책을 보자마자 누군가에 얼굴이 지나갔다.
분명 손으로 만질 정도로 생생했는데, 동시에 다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먼지가 되어버린 얼굴
주인은 천천히 책 끝을 펼쳤다.
안에는 글도 사진도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은은하게 빛이 흐르묘,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정말 투명했다.
‘1년의 기억은 당신이 가장 아끼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의 말투는 담담하고도 분명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잃었고, 그 고통이 너무나도 컸나 보네요. 거래를 한 걸 보니’
나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내쉬었다.
떠오르지 않는 얼굴, 떠오르지 않던 감정
무언가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거래라니요? 무슨 거래를 말하시는 거예요’
서점주인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한 책장을 가리킨다. 그곳엔 많은 책들이 쌓여있었고, 그 책들의 제목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첫사랑의 이름(판매완료)”
“겨울의 바다(판매완료)”
“어머니의 웃음(고가 매입 중)”
“어린 시절의 공포(교환 가능)”
그리고 나를 얼어붙게 한 한 줄
“당신이 잃어버린 1년(보관 중)”
‘진짜로 이런 걸 사고파는 건가요?’
주인은 천천히 책장 속으로 걸어가 더니 어떤 금고에서 한 유리병을 꺼낸다.
그곳엔 어느 한 빛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뚜껑을 돌렸다.
유리병이 딸깍하면서 열리자 아련한 멜로디 같은 노래가 흘렀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듣자 바로 알아챘다.
‘나의 행복?’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고통을 버리는 대신, 행복을 두고 가셨습니다. 그래야 균형이 맞으니까’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갔다.
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야 아까 전에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웃음이 희미했는지,
왜 사람들의 얼굴이 희미했는지,
왜 매일매일이 색 빠진 사진 같았는지
나는 행복을 버린 것이었다.
‘그것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나요?’
‘당연하죠, 언제든지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두고 간 고통이 그때와 차원이 다르게 아플 것입니다.’
‘시작하시겠습니까?’
‘네.. 열어볼게요’
나는 숨을 천천히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장을 천천히 넘기자, 책에서 빛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나의 과거 한가운데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