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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Dec 26. 2024

위키드

위키드

연말에 이런저런 일들이 바쁠 것 같아서 올해의 마지막 리뷰는 

지난번에 했던 리얼 마래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연휴를 맞아 조금 늦게 위키드를 보게 되었고, 

그 감동의 여운을 남기고자 리뷰를 하게 되었다.


내용 소개에 앞서서 개인적인 추억을 잠깐 되집어 보자면, 나에게 있어서 위키드는 뭐랄까나

오랫동안 아껴놓고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던 작품이다. 예전에 나름 뮤덕까지는 아니어도 뮤지컬에 심취하던

시절에 각종 내노라하는 작품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상하게 위키드와는 연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언젠가 보게 될 기회가 있다면 꼭 가장 좋은 공연으로 보리라 마음 먹고

그걸 대비해서 작품의 내용이나 인물들에 대한 정보도 되도록 미리 알지 않게 일부러 귀를 닫고 살았었다.

그런데 그걸 예상치 못하게 영화로 접하게 될 줄이야.


세월의 흐름이 무섭고, 어느새 시간이 흐르면서 오랫동안 숙성시킨 와인처럼 소중히 간직했다

스페셜한 상황에 개봉하리라 마음 먹은 것을 왠지 실수로 툭하니 열어버린 기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작품의 만족도는 높았다. 와우... 이 무슨 생각치도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일까?


일단 작품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이 작품은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 격인 작품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동쪽과 서쪽의 마녀의 숨겨진 이야기를, 도로시의 조력자로 나왔던 

글린다의 입장에서 서술한 팬픽 형식의 작품이다.


나중에 서쪽의 마녀로 불리우는 주인공 엘파바는 엄마의 불륜을 태어나고, 거기에 녹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불행한 아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마법의 재능이 있고, 올곧은 성격을 가진

엘파바는 강직한 아이로 성장하고, 여동생 네사로즈와 함께 쉬즈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거기서 학교의 공주님 같던 글린다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여러가지 면에서 맞지 않는 성향으로 

항상 아옹다옹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내는 과정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 오즈에는 변화가

찾아오고 그것은 말하는 동물들을 분리하고 핍박하는 끔찍한 것이었다.


엘파바는 마치 남의 일 같지 않은 그런 정책에 반대하고 자신의 재능을 개화하여 오즈의 세상을 지배하는 

마법사를 만나 그 일을 해결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엘파바에게 갑자기 나타난 피예로는 묘한 호기심을 보이고

그러다 학생들이 몰려간 무도회장에서 엘파바는 글린다가 별 생각없이 넘겨준 모자로 큰 망신을 당한다.


하지만 거기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마음을 춤으로 표현하고, 거기에 죄책감을 느낀 글린다가 엘파바에 맞춰 주면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점점 조여오는 동물 학대의 분위기 속에서 엘파바는 오즈의 마법사의 초대를 

받아 에메랄드 시티로 가게 되고, 그 여정에 글린다도 동행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도착한 에메랄드 시티에서 만난 마법사는 그저 사기꾼에 불과했고, 알고보니 오즈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행동의 흑막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리고 엘파바야 말로 오히려 오즈의 마법의 근간이 되는 

그리모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자였고, 엘파바는 자신을 압박하는 오즈의 마법사와 권력자들에게서 도망쳐서 

중력을 뛰어넘어 무한한 힘으로 자신의 세상으로 날아오른다. 


여기까지가 공개된 위키드 1부의 내용이고, 내가 관람하고 감동을 받았던 이야기였다.

뮤지컬이 아니라서 절반 밖에 보지 못했지만, 내가 느낀 감상은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 작품은 이래저래 우려가 섞여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원작자의 성향 문제도 있고, 작품이 담고 있는 

메세지도 사실 상당히 근래에 물의를 발생시키는 LGBT 소재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솔직히 아껴둔 작품이었지만 보러가면서 우려가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과하면 어쩌나...

그런데 관람 후에 그런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그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그 관점이 추구하던 초심의 정의, 핍박받는 자는 없어야 하고, 세상은 다수의 상압에 의해 전체주의 적인

형태가 아닌 소수의 의견이 수용되어야 한다는 정의를 순수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소수 계층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과한 보정과 말도 안되는

개연성으로 물의를 빚는 것과는 달리, 엘파바는 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에 속하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세상을 진지하고 옳바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안티 히어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영웅의 면모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감동을 안겨주었다.


누군가 위키드를 보면서 엘파바가 defying gravity를 부르면서 망토를 휘날리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뮤덕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을 했었는데,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도 살짝 눈씨울이 붉어졌으니깐. 그 인간 초월의 장면에서 누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결론적으로 아주 잘만든 작품이다. 다소 무리수를 둘 여지가 많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받을 수 밖에 없는 정석적인 영웅의 비극적인 탄생과 시련, 그리고 역경을 헤쳐나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거나 주면서, 마침내 저 하늘 위로 우뚝 서는 장면을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춤과 노래와 흥겨운 분위기에 더 몰입했던 과거 뮤지컬 매니아의 시절이 아닌

글을 쓰고 아이를 키우고 이야기를 만드는 지금 더 큰 감동을 받고, 더 깊은 울림에 손이 떨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오즈의 마법사 원작 자체도 여러가지로 사회 풍자와 블랙 코미디가 많은 복잡한 배경을 가진 작품이다.

금본위 시대의 비극을 묘사한 원작에 더불어, 영화도 over the rainbow라는 불후의 명곡 아래 

숨겨진 주디 갈란드의 비극과 헐리우드의 아픔이 많이 담겨져 있는 동화 너머에 잔혹한 현실이 있는 이야기다.


그런 원전에서 파생된 팬픽이 오늘에 이르러 오히려 더 동화와 같은 사람을 매료하고 순수함을 

주장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에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역시, 현실과 동화는 수면을 경계로 마주한 밀접하지만 섞일 수 없는 복잡한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글린다와 엘파바의 사이처럼 말이다.  


사실 시즌이 거의 끝나서 극장에서는 막을 내리기 직전에 끝물에 본 작품이고, 나머지 후반부가 아직

개봉하지 않아 큰 흥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가슴속에 불꽃을 남겼다.


아마도 내년으로 예상되는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즐거운 기다림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꼭 아이들도 같이 보리라는 생각을 다짐하며 오늘 생각치도 못하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리뷰를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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