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이번에 리뷰할 책은 역시나 집어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책이다.
예전에 책을 처음 집어들었을 때 호기심을 가지고 보려고 하였다가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서
보지 못한 사연이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다시 눈에 띄어서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예전에 판데믹 상황을 연상케 하는, 갑자기 전기가 끊어진 세상에서 벌어지는
공포와 혼란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고 책을 완독하고 나서 조금
깊은 탄식을 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부모님이 중국으로 일주일동안 출장을 간 주인공 남매는
갑작스럽게 세상에 전기가 끊어진 블랙 아웃 상황에 남겨지고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자신의 주변 생활을 좀먹어가는 공포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 발버둥친다는 내용이다.
사실, 생소한 소재는 아니다. 이미 아포칼립스 소재의 장르에서 많이 다뤄진 배경이고
컨텐츠화도 많이 이뤄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같은 작품에서
독자분들이 이미 비슷한 내용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특출난 것은, 광기와 피폐로 치닿는 멸망한 세상 속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투쟁이 아니라,
홀로 남겨진 저항할 수단이 없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 공포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어른들에게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두려운 상황이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핸드폰으로 모든 일상을 처리하는 시대에서, 갑자기 모든 전기가 끊어진다고 생각해보자.
단순히 불편한 것을 넘어서서, 그 즉시 파멸에 가까운 느낌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것이 어른도 아닌 아이들이라면? 당장 밥도 할줄 모르는 아이들이
변기에 물이 안내려가서 오물로 악취가 가득차고, 냉장고도 멈춰서 음식들은 전부 부패하고
물조차도 없는 지독한 더위 속에서 놓여진다면... 그 공포는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그런 아이들의 시점에서 본 일상이 파괴되어가는 모습과 사람들이 이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너무도 냉정하게 그려내고 거기에 일말의 동정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 서늘한 칼날같은 현실의 공포에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숨이 턱막히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 작품이 더 탁월한 것은, 주인공 소년이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발버둥치는
어느 길고양이 새끼에 대한 묘사 때문이다.
사실 별거 아닌 미장센일지도 모른다. 계속 언급되고 있지만 사실 극중에서 그 고양이가 어떤 역활을 하거나
내용의 키가 되는 부분은 없다. 잔혹한 세상은 아기고양이라고 해도 예외가 없고,
다친 상태로 골골대며 죽어가는 고양이를 보며 주인공은 아무런 도움도 못주고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잠시 몇번 생기를 보여주며 희망의 클리셰가 아닌가 착각하게 하기도 하지만,
결국 허망한 죽음으로 인해 주인공을 절망하게 만들고, 그 분노를 폭발하게 만드는 고양이는 어쩌면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절망 속에서 무기력한 우리들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소년은 숨이 턱턱 막히는 절망 속에서 버티려고 하지만,
세상보다 더 잔혹한 사람들의 광기 속에서 조금씩 아이의 순수도 무너져가고, 결국 그것이 극에 달하는 순간,
얄궂게도 하늘은 세상에 비를 내리고, 끊어진 전기가 다시 돌아온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적인 결말이다. 하지만, 그 신은 기계장치의 만능신이 아닌
인간의 절망을 조소하는 악신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블랙코미디와 같은 결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깊은 한숨을 몰아쉴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 너무 온기와 따스함이 가득한 동화들을 편식해서 그럴까?
오랜만에 느끼는 킥과 같은, 현실적이고 서늘한 이야기에 마치 킥을 맛본 것 같은 느낌이다.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지만, 반드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보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어쩌면 자신이 칼날과도 같은 너무나도 부숴지기 쉽고 부숴진 순간
우리를 도려낼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세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지하게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깐.
#블랙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