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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Jan 14. 2024

나의 몽골이야기-1편

몽골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함께 했던 동행들과 도시의 메뉴 햄버거로 저녁식사를 해치우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일주일을 조금 넘게 동고동락한 우리 멤버들은 내일 아침이면 이곳을 떠난다는 게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서 아침 비행기지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 소파에 모여 짧지만 우리에게는 길었던 지난 일주일에  대한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소파 옆 쪽 식탁 테이블에 한 남자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사람은 뭐지? 내일 아침 투어를 떠나는 사람인가?


나에게 물음표를 가지게 한 그 사람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우리 멤버들의 이야기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편의상 이 글에서 그를 A라고 칭하겠다.


내게 미지의 땅이었던 몽골은 여행자체만으로도 스페인 순례길만큼이나 강렬하고 좋았지만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날 A와의 대화가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게스트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으레 자신들의 여행 경험을 이야기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A도 각자 경험한 여행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화 도중 내가 먼저 "유로자전가나라"를 언급했는데 그가 그곳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좋게 언급했는데 그 역시 그곳을 좋게 말하는 것이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A가 정말 그곳을 알고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아님 대화의 흐름상 단순한 추임새 같은 반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직업에 대한 꿈을 꾸었던 게 가이드였다. 그런데 그냥 가이드 말고 유로자전가나라의 소속가이드가  되고  싶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이불 킥하고 싶을 만큼 민망한 도전이었다.

비록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나처럼 가이드가 꿈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기 때문에 A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A는 나의 에피소드를 듣더니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이 내가 몽골여행을 여행할 수 있게 해 준 <오다투어>의 관계자라고 말했다. 가이드라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인데 나는 꿈과 전혀 멀어진 일을 업으로 하고 있고, A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여행을 업으로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많아졌다.


A의 여행에 대한 진심과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가 좋았다.

무엇보다 A는 내가 처음 유로자전거나라 지식가이드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을 상기시켜 주었다.

자신의 일을 즐기며 신나 하며 말하는 모습, 바로 그 모습에 자신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보여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몸 담은 회사라면 믿음이 갔다. 역시 나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며 <오다투어>를 선택한 스스로를 칭찬했다. 더불어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곳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얼마나 크게 성장할지 기대된다.


 



지금보다 한참 어릴 때 혼자 유럽여행을 떠났다. 물론 자유여행이었다.

뒤돌아서면 몽땅  잊어버리는 나지만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로마에 갔을 때 유로자전가나라를 통해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그때 나는 그들로 인해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당시 내가 만난 가이드는 하민철가이드님과 박인규가이드님 그리고 류재선가이드님이었다.


와우!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들의 이름을 바로 기억하다니..


그들은 나의 편견 속에 자리 잡혀 있던 그런 가이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명 ‘지식가이드’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런 명칭이 부끄럽지 않게 설명도 훌륭했지만 당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들이 보여준 열정이었다. 그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 일에 미쳐 보이는 그래서 열정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물론 당사자였던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진짜 그들은 자신을 일(업)을 좋아하며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하민철가이드님은 큰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얇게 쉰 목소리와 검게 그을리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덕지덕지 바른 선크림, 박인규가이드님은 야간열차를 연속 10번 탄 듯한 피곤에 쩌든 모습임에도 숨겨지지 않았던 열정, 그리고 류재선가이드님은 내가 직접 투어를 신청해서 받은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스페인광장에서 투어 하는 모습을 본의 아니게 보고 듣게 되었는데 이분도 진심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무더위 속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인솔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 텐데 그들은 쉼 없이 우리들을 이끌었다. 내 눈에는 그들이 한없이 멋있어 보였다. 그때 나는 그들에게 반하고 말았다. 살면서 어떤 직업에 대해 반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첫사랑처럼 반한 감정을 가지고 귀국했을 때 나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듯 고스란히 그때의 감정을 담아 투어 후기를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모르던 번호로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자신을 유로자전거나라의 대표라고 소개했다.

순간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의 사연이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그는 나의 후기에 감동을 받았다며 회사의 대표로서 그냥 있을 수 없어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내게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두서없이 쓴  글이라  내용도  맞춤법도  엉망이었을 텐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 가지 깨달았다.

진심은 통한다. 그리고 그 진심도 내가 표현을 해야만 상대가 알 수 있는 것을.


이 일로 인해 나는 유로자전가나라라는 회사와 심리적으로 더 가까워졌고 무엇보다 일에 미쳐있는 그들 바로 지식가이드라는 직업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원래 여행을 좋아했기에 가이드라는 직업에 호감은 있었지만 막연하게만 생각했지 도전해 보겠다는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유로자전거나라를 만남으로써 도전에 대한 의지가 활활 타게 된 것이다.


나는 그 회사의 채용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대포 정신으로 이력서를 보냈다.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게 10년도 더 전의 일인데 당시 나는 짧은 동영상과 그 회사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여행상품을 나름의 기획서로 작성해서 보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생각했을 때 그곳의 가이드는 다른 여행사들과는 분명 차별화가 있어 보였다. 즉, 그곳은 가이드가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특정 가이드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세워 여행 상품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 그런 내용을 기획서로 작성한 기억이 난다.  

최근에 그 영상과 보냈던 메일을 다시 보고 싶어 찾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라 파일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저장했는지 아님 삭제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쉽다. 역시 기록은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다. 다 추억이  되고 배움이 되며 또 어딘가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하튼  무대포 정신으로 돌진한 나는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돌이켜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열정만 앞서있지 하나도 준비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부족했다.

대표님과 만났을 때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 나는 신문기사와 그 회사의 홈페이지만으로 그를 접했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는 인상 좋은 모습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실제 내가 만난 대표님은 여전히 인상은

좋지만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매서운 눈매의 사업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기가 죽어 쭈글이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그분과의 면접은 이불 킥하고 싶을 만큼 창피한 순간이다. 어버버 한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다.


그렇게 무모한 나의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내 인생에서 열정이란 게 끓었던 유일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소중한 기억의 한 챕터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평범한 나날들 속에 가이드라는 직업에 대한 꿈은 서서히 사라져 갔고 어느 순간 완전히 잊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몽골여행 아니 오다투어 아니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A 때문에 잊고 있었던 나의 꿈이 다시 모락모락 올라오게 되었다.

남들에게는 가이드라는 직업이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멋진 직업이다.

나도 A처럼 여행을 업으로 하는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이 업이 되고 밥벌이의 수단이 되며 그렇게 여행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여행 같은 그런 삶을 오늘도 나는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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