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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Nov 11. 2023

사는 이유-장인성

이 책을 읽고 눈물 흘린 사람 있나요?

저자인 장인성 님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짐작은 간다.

아마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그에 대한 영상을 접했을 것이다.

그렇게 저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찰나 그의 산문집이 나온다는 소식에 출간되자마자 잠실교보문고로 달려가 책을 구입했다.


제목: 사는 이유


산문집이다. 나는 산문집을 좋아한다.

내가 알 수 없는 저자의 일상과 생각, 가치관을 알 수 있기에 좋다.

물론 유튜브나 각종 SNS를 통해서도 엿볼 수도 있겠지만 글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목차를 훑어본다.

먼저 달리기라는 소재가 눈에 들어온다. 글을 읽기 전 나는 그의 인스타에 들어가 본다.

그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러너였던 것 같다.


나는 달리기를 생각하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먼저 연상이 된다.

장인성 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나?

이런 궁금증은 그의 산문집을 조금만 읽으면 금방 해결된다.

그는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고 그의 삶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 역시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

다만 저자와 달리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만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나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먼 북소리는 여행기 중 단연 으뜸으로 꼽는다.

사진은 고작 흑백으로 프린트된 몇 장뿐이지만, 글을 읽고 나면 마치 수십 장의 컬러 사진을 본 것처럼 생생하게 피부에 와닿는다.

그 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읽은 나로서는 저자인 장인성 님의 산문집은 하루키의 영향을 받았음이 느껴졌다. 이건 칭찬이다. 그리고 부럽기도 하다.


사는 이유는 어렵지 않은 글이다.

글의 서두에 이미 저자가 글을 씀에 있어 추구한 스타일이라고 밝힌다. 그러다 보니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그러다 1차 공격을 당했다.



그가 호놀룰루 마라톤에 출전한 경험을 나타낸 부분이다.

30km를 지나면서 그의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고 결국 피니시라인에는 걸으며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아내를 만나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울었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첫 경험을 글로써 남긴 부분이다.

나는 그가 몸의 통증을 표현한 부분부터 글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내가 그로 빙의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건지 이때부터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했다.

울면서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

그의 책을  완독 후 호놀룰루 마라톤 부분만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런데 또 눈물이 났다.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의 산문집 챕터 중 p80 [Honolulu Marathon 형편없고 부끄러운 달리기였다] 편은 하루키가 러너로써 작성한 글 못지않게 내겐 생생하게 와닿았다.




그렇게 눈물의 1차 공격 이후 다시 책을 읽어가고 있었다.

그날은 출근길 5호선 지하철 안이었다. 운이 좋아 좌석에 착석까지 성공한 날이었다. 출근길 시작이 좋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제 읽었던 부분을 이어 읽기 시작했다.


방심했나? 2차 공격을 다시 당했다.


p126 [Meimei (우리가 사랑하며) 사는 이유]

저자의 아내가 결혼 전부터 함께 살던 고양이 메이메이와의 동거와 추억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글로 나타낸 부분이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죽음은 흔한 소재(라는 표현이 불편하긴 하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묘사한다고 매번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글은 나로 하여금 눈물을 터지게 만들었다.


고양이든 강아지든 혹은 다른 동물이든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산다는 것은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인간처럼 느껴지게 된다. 즉 동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집 역시 어릴 때 백구라는 이름의 풍산개와 10년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지금도 개를 무서워해서 싫어하신다. 결국 짐승이라 무섭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가끔 옛날이야기를 하면 "백구는 개가 아니다. 그 녀석은 사람이었다"라고 하신다.

그만큼 반려동물은 단순히 동물이 아닌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생명이 소멸해 가는 과정, 그것도 사랑하는 존재의 생명이 꺼져가는 과정을 묘사한 그의 글은 평소 얼마나 메이메이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글을 쓰며 눈물을 참는다고 힘들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메이메이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아빠의 죽음과 오버랩되어 눈물이 더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빠의 생명이 소멸되는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아빠의 생명이 꺼져가던 순간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으며 노력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무방비로 지하철에서 당해 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아침부터 지하철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주변에서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곁눈질로 살펴보며 휴지를 꺼내 흐르는 콧물과 눈물을 닦아 낸다.




메이메이를 가슴 아프게 떠나보내고 다시 글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다 저자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최근에 나는 저자처럼 잘 나가는 사람도 아닌데 시간이 없어 시간을 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시간을 거래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공상을 펼쳤다.

그런데 저자도 시간이 없어 시간을 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저자와 나 통했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이 현실인지 소설인지 구분할 수 없게 전개되는 시작하는 것이다.


p187 [1 Hour Coupon 어느 시간강박증 환자의 고백] 편이다.

분명 조금 전까지 저자가 시간이 없다며 툴툴거렸는데 갑자기 '어? 뭐지? 이거... 픽션인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자연스럽게 논픽션에서 픽션으로 넘어온 것이다.

시간을 거래하는 세상에 대한 픽션은 부의 불평등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문제까지 담아내며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었다.

물론 이런 시간에 대한 소재는 다른 창작물로도 있지만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글은 이제 처음 산문집을 출간한 장인성 님의 글이다.

'이 분 소설에 욕심내봐도 되겠는데...'생각했다.

짧은 글로 풀어내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만큼 재미있었다.




사는 이유는 전반적으로 저자 장인성 님의 작가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준 글이다.


평소 책을 읽으면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거나 좋은 문장이 있으면 연필로 밑줄을 긋는다.

하지만 이 책에는 밑줄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에서 보여준 생동감 있는 묘사와 문체들 그리고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들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다음 책이 매우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이 책을 읽고 울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메이메이를 떠나보내는 부분에서는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외 다른 부분에서는?


아직도 모르겠다.

호놀룰루 마라톤 부분에서 내가 울었고,

지금도 그 페이지를 펼치면 눈물 나는 이유를.


여하튼 간만에 좋은 책을 읽었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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