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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토 Mar 17. 2023

헤어질 결심을 먼 바다에 버리기 위하여(1부)

(무비토끼 시리즈)<그리스 신화>, <오디세이아>, <무진기행>과 읽기




 








 이것은 재난 영화다. 내게 영화관을 나서며 각인됐던 첫 이미지. 몰아치는 파도. 기암괴석. 그들끼리의 황량한 충돌. 점점 내려앉는 검푸른 어스름과 부유하는 안개. 이들의 색을 알 수 없는 빛깔. 그리고 무엇보다, 당황한 표정으로 닿지 않을 구조요청을 외치며,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해안가를 헤매는 양복 차림의 한 남자. 그리고 그를 극단적인 망원 렌즈를 통해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카메라의 흔들림. 마치 그가 극 초반부에 망원경으로 즐긴 관음에 대한 거울인 것 마냥. 손전등을 붙들고 천재지변에 맞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한 남자. Man VS Wild. 자연스레 몰두하게 됐던 첫 질문. 과연 서래(탕웨이)는 어디로 갔는가. 이것은 해준(박해일)과 서래를 투 톱으로 내세운 멜로 영화이지 않은가. 왜 마지막 쇼트에는 해준만이 남아 서성이는가. 왜 이렇게 서래는 일찍, 의식적으로 퇴장했는가. 두 번째 질문. 과연 그렇다고 한다면 해준의 발 밑 저 구덩이, 물길이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 밑에 서래가 묻혀 있는 것일까. 혹은 해준을 바라보는 이 시선이 서래의 시선이라고 한다면? 영화의 마지막은 해준만이 담긴 클로즈업 쇼트이니만큼. 그렇다면 더더욱 재난 영화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지 않은가. 어떤 쪽도 해준에겐 지옥일 텐데. 생 내내 벽에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그녀 생각만 하며 방에 갇힐, 확실히 닫힌 결말. ‘진짜’ 붕괴. 사랑이라는 거대한 재난. 아니 코즈믹 호러. 영원히 알 수 없고 계속해서 엇나가고 끝내 닿을 수도 없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그 것(Thing)에 대한 공포, 그 스산한 안개 재앙(미스트).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소리치질 지도 모른다. 그 남자도 양복을 입었을 지도 모르고.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냐.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누군가 미결과 해결을 말하고,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는 사랑과 구원을 말할 때, 도저히 이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의 틀로 해석할 수 없는 나는 장르라는 타겟에만 총을 연발 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이 사랑을 일반적인 멜로 영화의 도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일반적인 멜로 영화라면 서래가 영화 후반부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던 비행기가 뜬 공항에서 페도라와 선글라스를 쓰고 하이힐을 또각또각 거리며 비릿한 미소를 남긴 채 걸어가거나(솔직히, 이 영화에서 <백야행>의 유키호를 수없이 많이 떠올렸다.), 끝없이 차오르는 거품과 어둠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해준의 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며 졸도하는 시점 쇼트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클리셰의 파괴를 위해 해준과 서래가 나눠왔던 그 수많은 눈맞춤과 관음을 이리 무용한 물거품으로 끝을 내는 건가. 이해할 수 없으니 선뜻 사랑할 수도 없다. 언뜻 잘못된 질문처럼 보이는 나의 천착은 나의 관념을 엉뚱한 곳으로 데려간다. 인공적인 불빛이라곤 띄엄띄엄 보이는 횃불밖에 없어서,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빛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고, 이해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종교라는 신성으로 설명했던 시대로. 사랑 또한 바다거품에서 태어난 신의 모습으로 이해하던 그 곳. 바로 그리스다.



박찬욱식 2022 코리안 오디세이


 그리스 신화와 헤어질 결심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 당혹감이 들 지도 모르는 이 두 텍스트의 사이에 아교를 발라보자. 헤어질 결심의 사운드 트랙 <안개>는 김수용 감독의 영화 안개의 주제곡이다. 안개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한다. 이 무진기행을 오디세우스 마스터 플롯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계속돼왔다. 그 중 등장인물에 대한 해석 한 가지는 무진기행의 여주인공, 성악을 전공한 음악선생 하인숙을 세이렌으로 읽는 것이다.*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괴물 중 하나로, 반인반조 혹은 반인반어로 묘사되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자신의 돌섬으로 유인한 후 잡아먹는 팜므파탈의 원형같은 존재다. 무진기행의 주인공 윤희중은 하인숙의 ‘무자비한 청승맞음’과 ‘절규하는 목소리’에 매혹을 느끼며, 그녀를 만난 후 돌아온 숙소의 잠자리에서 기이한 사이렌(Siren) 소리를 듣고 모든 사고가 없어지는 경험과 함께 그녀를 껴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대목에서 구태여 사이렌(Siren)의 어원이 세이렌(Seirēn)이라는 점과, 영화 2부에서 서래가 경찰서의 사이렌을 직접 울리는 장면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마치 그물 치는 자가 사냥감을 바라보듯, 해준을 관찰하는 서래의 시점 쇼트. 오디세이아를 직접적으로 참고하지 않았더라도, 이 사이렌을 울리는 장면에서 서래가 세이렌으로 읽힐 이마고(imago)*를 제공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송서래의 이름은? 이름의 ‘래(내, 하[河])’ 자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친절한 이름에 의심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송. 서. 래, 서쪽에서 와서 서, 래? 감독은 전작 올드보이에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의 입을 빌어 그 스스로의 이름을 친절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다. 내… 이름은 오. 대. 수. 관객들에게 대수의 딸에 대한 정보, 그리고 추후 드러날 진실에 대한 증거인, 대수가 준비한 딸의 생일선물을 보여주는 이 시퀀스는 정보의 제공이 끝나는 동시에 오대수에게 그 임무를 수행시킨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그래서 오대수거덩. 이 설명은 너무나도 친절해서 극장을 뜨고 난 뒤엔 치명적인 변명처럼 와 닿게 된다. 바로 오대수가 코린토스의 왕자이자 테베의 왕, 운명에서 벗어나려 했기에 그 운명을 맞이해버린, 근친을 저지른 발이 부은 남자 오이디푸스라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막기 위한 변명 말이다. 감독의 이 지독한 말장난은 후작에서도 태주(테레즈), 강우(카미유) 등을 통해 반복된다. 게다가, 서래를 시렌, 즉 세이렌과 같은 선상에 놓는 장면에 더불어 서래를 하인숙과도 등치한다면 증거는 증가한다. 전자는 서래가 약학에 능하고 동물을 잘 다루는 마녀적인 모멘트가 드러나는 이미지들에서,(세이렌은 주인공을 유혹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키르케나 칼립소와 같은 마녀, 혹은 팜므 파탈의 큰 틀에서 묶이곤 한다.) 후자는 서래가 해준을 미 해군이 발명한 호흡법과 함께 다정한 목소리, 즉 청각의 자극으로 그를 재워주는 침실 씬에서 드러난다. 전술한 사이렌이 울리는 무진기행의, 윤희중이 불면하고 있는 한 대목이다.



사이렌을 울리는 서래


 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통금 사이렌이 불었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요란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길었다. 모든 사물들이 모든 사고가 그 사이렌에 흡수되어 갔다. 마침내 이 세상에선 아무것도 없어져 버렸다. ...(중략)... 잠시 후 나는 슬며시 잠에 들었다. (무진기행)


 내 호흡에 당신 호흡을 맞춰요. 눈도, 코도, 생각도 사라지고, (헤어질 결심)


 그렇게 송서래를 세이렌, 혹은 그 의미를 확장해 해준 앞에 선 유혹자와 고난의 바다로 변환시켜 본다면, 장해준은 오디세우스다. 오디세우스는 인류 최초의 계몽주의자*다. 코즈믹 호러에서 뒷걸음질해 다시 한 번, Man VS Wild, 바다에 맞서 해준이 귀향하(거나 실패하)는 이야기로 바라보자. 이것은 박찬욱의 2022 오디세이아다.


유독 그녀는 물의 이미지에 가까이 있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수음하는 오디세우스, 노래하는 세이렌, 무진기행의 한 읽기

*오랜 시간을 걸쳐 문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각인된 신화적이고 내재적인 이미지 정도의 뜻으로 사용했다.

*천병희, 오뒷세이아 서문, 오뒷세이아를 이끄는 힘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사는 무서운 곳들을 찾아가 오뒷세우스는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확인하고 이해하고 싶어한다. 작품 전반에 배어 있는 그의 호기심에 주목해보면 오뒷세우스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이다. 이야기 중심에는 오뒷세우스의 지혜와 재능, 빛나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끊임없는 선택에서 그가 마침내 살아남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오뒷세이아에서는 일리아스와 달리 신들이 아닌 인간 ‘스스로’가 선택하는 모험과 도전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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