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도희 Feb 03. 2023

Just Chillin’ in Copenhagen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Heading to Christiania, Copenhagen

 교환학생의 시작을 코펜하겐 여행으로 맞이하면서, 나에게 ‘여행’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교환학생 준비로 코펜하겐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에 집중할 수 없어서 ‘무계획’ 여행을 처음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아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등의 최소한의 계획은 항상 존재했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계획을 세웠다.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코펜하겐 여행은 이러한 여행 계획의 필요성을 완전히 없애버린, 나에게는 새로운 느낌의 여행이었다.

Christianshavns Kanal, Frederiksholms Kanal

 코펜하겐에서 뭘 했어?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걷고 걷다가 지치면 앉고 눈에 보이는 것을 먹고 마시고 풍경을 보는 것 밖에 한 일이 없다. 사실 처음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를 걷고 운하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순간들이 모여서 하나의 조각들을 만들고 결국 많은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 시간들이 처음 느껴보는 ‘무계획’의 시간이었고 계획이 없으니 뭘 하고 있는지에 더 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좋았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점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Freetown Christiania

 코펜하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아보자면 자전거를 다섯 시간 동안 타면서 도시를 구경하고 좋은 곳이 있으면 잠시 멈추는 모든 시간들, 그리고 창영이와 코펜하겐 마지막 날에 Raffen에 앉아서 일몰을 보며 한없이 이야기했던 시간이다. 편한 친구와 함께해서인지 서로의 생각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의심할 여지 없이 잘 맞았고, 오히려 즉흥적으로 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았다. 그리고 각자의 모습을 꾸밈없이 표현할 수 있어서 더 즐거운 순간들을 만들어낸 것 같다.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도시는 그저 존재할 뿐이고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여행이 묘하게 더 기억에 남았다.

Nyhavn Kanal

 뭐든 처음 하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만큼, 처음으로 혼자 타지에서 타지로 비행기를 탄 것과 한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친한 친구를 만났던 순간이라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코펜하겐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도시 느낌이 가장 좋았고 기억에 많이 남았다. 사람들이 뜨거운 햇살 아래서 각자의 방법으로 하루를 즐기고 그게 월요일이든 토요일이든 상관없이 ‘주어진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항상 바쁘게 살아야 하고 계속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 그냥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보내면 그게 행복한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해야지 생각했던 포인트도 창영이가 강에서 다이빙을 하고 싶다고 말한 뒤 진짜 빠지는 모습을 보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고민하지 말고 just do it 하면 그게 나의 삶을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여행의 전반적인 모습도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뭐든 다 했던 것 같다. 그게 나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

Kalvebod Bølge, Night of Copenhagen

 첫째 날 저녁에는 창영이가 앓아누웠고 그 덕분에(?) 혼자 코펜하겐의 일몰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당연히 같이하면 더 좋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을 때 그 자체 또한 즐기는 편이 훨씬 좋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샌드위치와 맥주 한 잔을 사서 나무 덱에 앉았다. 이어폰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을 재생하고 서서히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에 앉아있는 내가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앉아서 내가 교환학생을 다짐한 이유와 여행을 하는 이 순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 교환학생이 시작되었고 덴마크에 와있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Lake Pavilion

 그래서 덴마크는 아마도 스웨덴 다음으로 (내가 진짜 살아가야 될 나라이기 때문에) 가장 의미 있는 나라가 될 것 같다. 코펜하겐은 다른 나라의 수도 중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에 여행하면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많은 시간이 지나고 어쩌면 또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시기가 온다면 꼭 오고 싶은 나라가 될 것 같다.

Café Kopenha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