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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es Blog Dec 31. 2022

가면증후군 극복기

아직도 진행 중인

가면증후군은 기질이 낙천적이고 활달한 사람도 쭈그려뜨린다. 


특히 '너 대단하지 않아' '네가 잘해서 된 건 아니잖아.'라고 끊임없이 귀에다 속삭이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가면을 벗기보단, 없던 가면도 만들어 쓰게 된다. 


몇 시간이고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을 해도 심드렁하다. 간이 심심하다, 짜다고 하거나, 뜬금없이, 맛있게 먹었던 음식점 이야기를 꺼낸다.

좋은 상을 받고 우쭐해서 자랑하지만, 같은 상을 받았던 김 00, 박 00을 거론하면서 찬물을 끼얹는다.

자만하지 말라며, 겸양의 미덕을 가르친다. 

지금의 내 처지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을 가리키며, 빨리 올라가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마음이 뭉개지고, 자신감이 기체화되어 사라진다. 

Lo & Abbott (2013). Review of the theoretical, empirical, and clinical status of adaptiv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는 가면증후군 극복을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 Learn the facts (사실관계를 따져보라)


내가 이룬 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난 얼마나 공부했었나. 전공을 바꿔서 유학 가기가 또 얼마나 어려웠는가. 직장생활을 거쳐, 다시 또 유학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4번의 휴학(leave of absence)과 1번의 inabsentia를 다 쓰며 공부했던 내가 아닌가. 코넬대학교 학사담당이, 학교 역사상 가능한 한 모든 휴학을 다 쓴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박사학위를 받는 건 쉬웠나? 대학강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며, 혼자 논문을 썼다. 논문이 다 되었다고 보낸 이메일에 지도교수님은 "I thought you had given up." 이라셨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은 여자 박사과정생이 휴학했다 돌아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하셨다. 


박사를 받았다고 '어서 오세요'하는 대학은 없었다. 시간강사를 거쳐, 전임강사가 되고, 연구비를 따서 실적을 내자,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남들은 5년 만에 따는 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임용되는 교수를 나는 매우 오랜 시간을 걸려 굽이굽이 돌아갔다. 


그래. 대단해.

열심히 노력한 것, 포기하지 않은 것, 여기까지 온 것, 모두 다 대단해. 짝짝짝.


사실 교수가 된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은 내가 엄마가 된 것이다.

엄마가 된 것, 엄마를 '하고 있는 것'은 Absolutely amazing 한 것이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부모일 (parenting)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인생 최고의 업적을 쌓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2. Share your feelings (다른 사람과 이 기분을 나누라)

나에 대한 의심, 작아지는 자신감과 자존감, 무기력한 느낌을 믿을만한 사람에게 털어놓으라고 한다. 나는 불행히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고, 기회도 없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나와 같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걸 털어놓으면 나의 '약점'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더 불안하다.


이럴 땐 심리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완벽한 타인인 데다,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준다. 그때의 나는 받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심리상담을 받을 것이다.


3. Celebrate your successes (성공을 축하하라)

박사논문이 통과되고, 교수가 되고, 논문이 publish 될 때, 연구비를 탔을 때마다 축하했더라면 나는 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가면증후군 환자들이 그렇듯이, 나의 빛나는 '업적'들은 일상처럼 평범하게 지나쳐갔다. 

그러나,

내가 쉽게 했다고 해서 나의 업적이 작은 것은 아니다.

남 보기엔 작은 일이지만 나에게 큰 일이고 의미가 있으면 '업적'이다.

온 힘을 다해 Celebrate 하자. 

샴페인도 터뜨리고, 친구들에게 한턱도 쏘고, 나를 위한 작은 선물도 사자.

응. 역시 나는 대단해라고 칭찬해 주자.


4. Let go of perfectionism (완벽주의는 이제 그만)

완벽주의는 2가지가 있다.

Adaptive perfectionism- 자신이 세운 기준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완벽주의

Maladaptive perfectionsm -남이 세운 기준을 맞추려고 애쓰며,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하는 완벽주의

Lo & Abbott (2013). Review of the theoretical, empirical, and clinical status of adaptive

가면증후군 환자는 전형적으로 Maladaptive Perfectionists이다. 남이 세운 기준에 갇혀 사는 죄수인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취향, 목표를 반영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보자.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걸 추구하는 것이, 동기부여와 자존감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물론 정신건강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하다. 

잘할 수 있는 만큼만 잘하면 된다. 


5. Share your failures (실패도 공유하자)

성공만 광고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가면증후군을 악화시킨다. 

Instagrammable 하지 않으면 공유하지 못하는 소셜미디어의 문화도 한몫한다.

괜찮다.

망치고

못하고

실패한 것도 공유하라.

당신이 이룬 많은 것들 뒤에는 무수한 실패와 실수, 거절과 낙담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라. 당신의 '부족함'을 본 다른 이들도 동참할 것이다. 잘해야 멋진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 하고 있다는 것이 멋진 것이다. 


6. Accept it (그러려니 생각하자)

1번부터 5번까지 클리어!

후우~~ 

나 이제 맘도 편하고 살만해!


하지만 가면증후군은 시도 때도 없이 또 찾아올 것이다. 

주위환경과 사람, 상황이 바뀌면 또다시 가면증후군이 도진다. 

직장을 옮기고, 승진을 하고, 새 프로젝트를 맡으면 다시 불안해진다. 

학교에서 일등만 달리다 대학을 가니, 사방에 일등 천지다. 


그럴 땐 다시

1번부터 5번을 반복한다. 아마 한 가지만 해도 이젠 가면증후군을 극복할 근육이 생기지 않았을까?



참고문헌

Hamachek, D.E. (1978). Psychodynamics of normal and neurotic perfectionism. Psychology, 15, 27–33.


Lo, A., & Abbott, M. J. (2013). Review of the theoretical, empirical, and clinical status of adaptive and maladaptive perfectionism. Behaviour Change30(2), 9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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