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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Aug 14. 2023

니넨자카 二寧坂(二年坂)

길 위의 사람 -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이치넨자카(一念坂) 끝에서 우측으로 돌면 니넨자카(二寧坂)가 시작된다. 석첩이 깔린 비슷한 길이지만 이름의 무게는 사뭇 다르다. 두 개의 편안함인지 두 번째 편안함인지 해석은 어렵지만 가운데 ‘녕(寧)’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모두 만족해서 오는 편안함’이다. 그 또한 편안하다는 건지 편안해지길 바란다는 건지 명쾌한 기록은 없지만 니넨자카엔 결코 평안하지 않았던 연인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20세기 초 미인화로 유명했던 다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란 문인이자 화가가 있었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다케히사 유메지도 뭇여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만큼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다케히사 유메지는 그녀의 제자 히노코(彦乃)와 12살 차이도 극복해 연인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이라도 이혼남에 애까지 딸렸으니 히노코의 아버지는 둘 사이를 극렬히 반대했다. 이대로 맺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둘은 도쿄를 떠나 교토에 몸을 숨기고 함께 동거하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니넨자카였다. 누가 뭐래도 둘에게 교토의 니넨자카는 안락하고 행복한 장소였음이 분명하다.

어느 날 히노코의 아버지가 딸을 데리러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둘은 다시 교토를 도망치듯 떠나 이곳저곳을 다니다 벳부 온천에 들르게 된다. 그곳에서 둘은 불행과 대면한다. 히노코가 결핵에 걸리고 만 것이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병원을 다녀보았지만 히노코는 차도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히노코는 아버지를 따라 도쿄로 돌아가 큰 병원에 입원했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25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아버지가 데려간 이후 문병조차 허락받지 못한 다케히사 유메지는 그녀를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떠나보낸다. 5년여간의 짧고 강렬한 사랑은 다케히사 유메지의 가슴속에 남았고 그는 한동안 넋을 잃고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한다.



니넨자카의 모습도 그들의 삶과 닮아 있다. 완만한 경사를 어려움 없이 오르면 길 끝엔 경사가 있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힘겹게 다 올라 맨 위에 다다르면 니넨자카는 끝이 난다.

1900년대 초에 조성된 마치야들 사이에서 같은 시기를 살았던 타케히사 유메지와 히노코의 삶의 정취도 느껴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니넨자카를 걷는 동안 안타까운 마음과 동행했다. 둘의 사랑이 잘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니넨자카의 실제 의미가 무엇이든 하늘에서 만난 ‘둘에게 평안함’이 깃들길 바라본다.  


카페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안녕하세요?’이다. 손님과의 첫인사이자 대화의 시작이다. 습관처럼 외치던 이 인사말이 니넨자카와 같이 무게감 있는 의미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편안함(安)에 더해 정신적, 물질적 만족에서 오는 평안(寧)하시냐는 물음은 모두가 어려운 요즘 같은 시기에 실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오히려 손님이 떠날 때 ‘안녕하세요!’라고 기원하듯 말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손님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안녕(安寧)이란 것도 새삼 깨닫는다.


나와 네가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하다가 그렇게 되기가 어디 쉽겠나 생각하니 살짝 치켜든 희망이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늘 대뇌이지만 ‘어려우니까 귀하고, 귀하니까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서로 귀하면 둘 사이의 ‘안녕’은 당연스레 만들어지지 않을까?


나부터라도 사람이 모두 귀한 존재임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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