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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Aug 21. 2023

산넨자카 産寧坂(三年坂)

길 위의 사람 - 염원이 스며든 언덕

니넨자카의 다케히사 유메지와 히노코가 해로(偕老)했다면 새로운 탄생의 염원을 품고 걸었을 언덕이 산넨자카(産寧坂)이다. 다른 두 언덕에 비해 경사가 있는 산넨자카는 기요미즈데라로 향하는 가장 유명한 언덕이다. 경사가 급해 오르기 힘든 길임에도 산모들이 많이 찾았다. 출산의 평안함(産寧)을 기원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기 때문이다. 산넨자카가 지금의 명성을 갖게 되기까지 예로부터 전해진 이야기들이 있다. 아마테라스(태양신)에게 받은 자안관음상으로 황자와 황녀를 순산한 황비가 현재의 기요미즈데라 근처에 절을 짓고 탑에 자안관음상을 안치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유명한 장군의 아내가 아이를 잉태하기 위해 올랐던 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기록된 사실은 없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길에 스며든 거다.


산넨자카를 걸으며 마치야 사이로 나있는 경사길을 산모 혹은 그의 가족들이 같은 염원으로 힘겹게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정겨움이 솟는다. 길에는 얄궂은 전설 하나가 더 있는데 내용은 정겹지 않다. 언덕을 오르다 넘어지면 3년 안에 죽거나 수명의 3년이 줄어든다는 전설이다. 소망이 있는 이들에게 가혹한 이 전설은 불운을 막는 방법까지 전해진다. 표주박을 가지고 있으면 막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길 가에 표주박을 팔고 있는 상점도 눈에 띈다. 병 주고 약 주는 전설이 이 길에 얽혀있다. 믿음이 안 가는 전설이라도 절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에겐 께름칙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사가는 이들도 있겠지.

표주박까지는 사고 싶지 않아 비가 내려 살짝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끝에 다다르니 니넨자카처럼 계단이 있고 계단을 모두 오르고 나면 산넨자카는 끝이 난다. 그 끝에서 조마조마했던 마음에 숨 한번 뱉고 돌아서서 왔던 길을 바라보니 아이를 안고 있는 산모마냥 정겹고 이쁜 길이 눈앞에 있다. 이래서 유명한 거군.

무언가를 염원하는 걷기는 들숨과 날숨에 정성이 깃든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떠올리고 기원하며 소망하는 걸음에 담긴 정성이 다른 것에 비할 데가 있겠는가. 정성이 깃든 바람이 발끝을 통해 전해져 만들어진 길은 또 다른 바람으로 다져진다. 산넨자카에서 느꼈던 정겨움은 그 때문이 아닐까..

가만히 서서 돌이켜보니 나만을 위한 것 같아 반대쪽으로 걸으며 다른 사람을 위한 염원 한번 가져 본다. 함께 걷지는 못하지만 삶에 기쁨하나 즐거움하나 깃들도록 기원하다 보니 어느덧 그들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렇게 반복해서 걸었더니 숨은 가쁘지만 가슴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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