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가꾸어 가고 싶은 나의 꿈, 나의 희망, 나의 길
언젠가부터 12월의 직전이면 새해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작년 12월 31일에는 가족들과 서로의 새해 목표를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부디 잘 지켜보자고 영상으로 담아 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것을 한 번 더 다이어리와 블로그에까지 못 박아 놓았는데, 오랜만에 꺼낸 글을 보니 지켜내지 못한 결심이 수두룩하다. 8개의 목표 중 그나마 가늘게 이어오고 있는 것은 두어 개. 하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읽고 쓰는 것이다.
운동을 시작한 것은 꼭 일 년을 채웠는데, 첫 시작은 포동포동해진 모습 때문이었다. 많이 먹든 적게 먹든 비슷한 체중을 유지하던 시절은 이제 끝나버린 것인지 일 년 전의 겨울에는 유난히 살집이 올라서, 다이어트에는 큰 관심이 없던 나조차 긴장하게 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면 알지 못하게 체질도 바뀌어서 근육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릴 때 체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튜브를 껴 놓은 모양새라는 옆구리살에 대한 공포도 한몫하기는 했지만, 당시 심적으로 쓰라리던 시기이기도 해서 마음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골똘히 집중할 대상도 절실히 필요했다. 꼬박꼬박 헬스장으로의 출석과 식단관리에 꽤 재미를 붙였던 초반의 기세로 다음 해에도 운동이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 있기를 바랐는데, 몸과 마음이 회복되었다는 긍정적인 의미일까. 오늘도 나는 헬스장을 모른 척 지나치고 있다. 그렇지만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찝찝한 생각을 말끔히 지우지 못한 것으로 미뤄보아 아직 운동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유일한 다행이다.
읽고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가늘게 이어오고 있다. 다른 것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던 지난날과 비교하여 작년부터는 쓰려는 노력을 조금씩 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하고 싶다’는 말뿐인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서, 반강제적인 환경이라도 만드는 것이 시작의 동력이 될 것 같아서 이곳저곳에 잔뜩 발을 걸쳐 놓았다. 팔자에도 없던 문어발 인생이 이런 것인가 웃음이 나올 때도 있지만. 독서의 영역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사유의 범위를 한계 짓는 것 같아 독서 모임에 간간이 참여하고, 조용히 웅얼대던 마음을 글자로 옮기는 연습을 시작하며 바쁜 한 해를 지나왔다.
만약 누군가가 지난 일 년 동안 이룬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애석하게도 뚜렷하고 당당한 결과를 당장에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사실은 이제껏 막연한 어떤 두려움으로 글과 책을 덮어놓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아득한 두려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자’는 용기가 더해지자 더 큰 세상이 열렸다는 것. 먼 희망으로 품고 있는 것과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이지 않던 과정에서 잉크의 향으로만 만나던 반가운 분들을 직접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도 내게는 희망에 가까워지는 길이었다. 앞서 걸어간 순례자 같은 그들이 나에게 더 큰 용기를 선물하고, 꾸준히 걸어보라고 다독이는 것은 감히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읽고 쓰는 시간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더 먼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닿지 않을 것만 같던 미래에 도착할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자라난다. 내일과 한 달과 일 년을 기대하고 궁금하게 한다. 비록 지켜내지 못한 다른 몇 개의 다짐들이 남아있지만, 읽고 쓸 수 있는 힘만은 연약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근사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옮기는 자유와 나와 나의 다른 것들을 다정히 여기는 사랑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12월이 지나고 1월이 되면 으레 그래왔듯, 또다시 새해 결심을 할 것이다. 암만 세워도 반도 채 지키지 못하는 그저 의식 따위에 불과한 결심이지만, 지키지 못하더라도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목표로 삼는 것은 그때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나타낼 테니까. 전부 이뤄내지 못하더라도 신중히 고민하고 소중히 가꿔가고 싶은 나의 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