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북스 Aug 12. 2023

당당한 녀석

둘째의 인공와우 커밍아웃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말을 거는 것... 어른인 나에게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다행히도 우리 둘째에게는 참 쉬운 모양이다. 새로운 곳에 가면 꼭 친구 한 명은 만들고 오는 녀석이 어제도 나는 참 대견하고 기특했다. 


어제는 00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로봇 과학 수업에 둘째가 당첨이 되어 3시간 동안을 로봇 클래스를 듣게 되었다. 3시간 동안 교실을 3번이나 옮겨야 하는 곳에서 담당 선생님께 인공와우 전용 마이크를 부탁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첫 교시 시작하기 전에 아이랑 내가 같이 들어가서 "청각보조기기를 착용하고 있어서 선생님께서 전용 마이크 목에 걸어 주시면 아이에게 선생님 목소리가 잘 들리거든요. 부탁드립니다."하고 나왔다. 문제는 초2 학년 아이가 그 마이크를 1시간이 끝나고 선생님께 받아서 다른 교실에 가서 다른 선생님께 부탁을 드릴 수가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그래도 두 번째 시간부터는 내가 일부러라도 나서지 않았다. '이런 상황도 겪어봐야지' 하고는 마음은 조여 왔지만 나는 참기로 했다. 


수업은 12시가 넘어 끝났는데, 아이의 표정을 보니, 과학 좋아하는 둘째에게 요번 수업은 꽤나 맘에 들었나 보다.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선생님께 마이크 잘 전달드렸어?"라고 차에 앉자마자 물었고, 둘째는 "응, 문제없었어. 잘 들렸어."라고 말해 주었다. 


둘째는 "엄마, 내 옆에 앉아 있는 애랑 친구가 되었는데, 그 친구랑 몇몇 형아들이 귀에 이거 뭐냐고 물었어. 

그래서, 이건 인공와우야. 안경이랑 똑같다고 생각하면 돼. 귀가 잘 안 들려서 잘 듣게 해 줘."라고 이야기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궁금했다. 마이크를 도대체 뭐라고 하고 선생님께 전달드렸는지.. "도윤아, 그럼 선생님께는 마이크 뭐라고 말씀드렸어?" 둘째가 하는 말 "내가 말하려던 참에 친구가 "인공와우를 해서 이 마이크 착용해 주시면 잘 들린대요"라고 거들어 줬어." 


당당하게 다음 선생님께 마이크를 전달 한 둘째도 기특했고, 옆에서 오늘 만난 친구 사정 알고 대신 설명해 준 그 친구가 나는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이제 인공와우를 누군가가 물어봐도 별 뜻 없이 받아들이고 대답할 수 있는 둘째. 자신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당당한 둘째. 고맙고 고마운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와는 무관했던 장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