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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Jul 03. 2023

읽는 것이 직업이 되었다

가난은 낭만이라고 생각된 시절이 있었다

직장에 다니지 않을 때에는 바빴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전에는 교회에 나가 봉사하고 성경을 읽고 토론하고 어려운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했다. 저녁에는 큰 아들과 작은 딸의 재롱을 보고 낮에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십 년 동안 이러한 일들을 했으니 나에게 하나님이 전부였고, 성경책을 읽는 것이 낙이었다.

 10년 전 직장을 그만둔 이래 남편의 수입에 의지해 살다 보니 허리띠를 졸라매도 여전히 가난했고, 가난은 낭만이라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돈이 없어 쪼들리면 '이 천 년 전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얼마나 헐벗고 굶주렸는가? 그래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천국을 전파하다가 다들 순교당하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마땅히 돈을 돌같이 봐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먹고 마시는 것을 뒤로한다 쳐도 당장 전기세나 건강보험료 같은 세금 고지서가 나오면 성격상 당장 처리하고 싶지만 돈을 쌓아 놓고 있지 않으니 어쩌랴. 예수님도 로마로부터 세금고지서를 받았다. 반 세겔을 내어야 한다는 세리의 독촉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었다.

 "베드로야, 너 생각에는 어떠냐? 임금이 자기 아들에게 세금을 받느냐? 타인에게 세금을 받느냐?"

 "타인에게 받나이다"

 "그래. 아들에게 받진 않지. 그러나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네가 낚시하여 맨 먼저 잡는 고기의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다. 그것으로 너와 나의 세금을 내려무나."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예수님은 만물의 유업을 얻을 자인데 로마의 세금독촉에 오해가 없게 하려고 물고기입에서 돈을 얻어 세금을 냈다는 내용이다.

물고기입이라 해서 진짜 물고기를 생각하면 곤란하다.(성경은 동화가 아니라 비유적 표현을 한 것뿐이다)

하박국에 보면 사람을 가리켜 바다의 어족과 같다고 했다. 넙치, 오징어, 문어, 갈치, 고등어 등이 어족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9장 11절에는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라는 사도바울의 말처럼.

예수님이 물고기입에서 한 세겔을 얻은 것은 전도하여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은혜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보고 청빈하게 살아가는 예수님의 삶은 나에게 거울이 되어 아름답게 비쳤다.



 내가 즐겨있는 김덕무의 삶은 또 어떠한가? 18세기 후기 실학자며, 서얼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책 읽는 선비로 알려져 있는 그는 평생 가난과 더불어 살면서도 고통이라 하지 않고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삶의 가치를 노래하지 않았는가?

김덕무의 글을 읽노라면 과도한 경쟁사회를 잊게 하고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맞선 자신을 느끼게 된다.  '과거도 보지 않을 거면서 뭣 때문에 그리 책을 주야장천 읽어 대는가?' 하는 주위의 조롱과 헐뜯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읽는 모습은 어쩌면 고고한 한 마리 학같이 보인다.

그는 술에 취해 이렇게 노래한다.

'내 마음 깨끗한 매미, 향기로운 귤 같으니/ 나머지 번다한 일 나는 이미 잊었노라' 세속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의 시는 깨끗하고 청빈하다. 그래서 책 읽는 바보라는 별명이 붙은 이덕무를 좋아한다.

이래저래 가난한 삶만 흠모하다 보니 나 역시 가난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도 커가는데 도저히 지체할 수 없어 면접을 보게 된 H교육회사. 거기서 내가 할 일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동화, 소설을 읽는 일이란다.



'진짜? 책을 읽는 것이 일이 된다고?'

학년별로 어떤 책을 읽혀야 하는지 감이 안 왔는데 독서지도사가 되면 아이들의 책 선정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주어진 책을 읽기 시작한다.

'정말 내가 아이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기가 올까?' 하는 두려움반, 설렘반의 감정을 품고서.


현대인에게 가난이란 말은 어감 자체가 나쁘고 부끄럽게 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청빈함의 상징이다. 비록 나는 가난하지만 나의 삶만은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리라. 책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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