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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Jul 14. 2023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지?

글을 첨삭하되, 빨간펜을 쓰지 않는 이유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다 보면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은 비린내가 나기 마련이다.

좋은 작가는 초고를 들여다보고 매만지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독서지도사란 나의 일은 아이들이 쓴 초고를 읽는 직업이다.

초고만 보면서 내 마음에 '이 아이는 글을 잘 쓴다 '혹은 '어쩌면 이렇게 글이 안 써지는 거야?'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만약 스스로 글을 고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누가 더 탁월한 글쓰기의 재능을 나타낼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을 고치는 것을 '퇴고'라고 한다.

퇴고라는 말이 글을 고친다라는 말이 된 것에 대한 유래가 있다.

당나라 시인 가도가 시를 짓다가 '스님이 문을 밀친다(밀:추 밀:퇴)'라고 할지, '스님이 문을 두드린다(두드릴:고)'할지 곰곰이 생각하다 그만 당대의 고관인 한유의 수레와 부딪히고 말았다.

가도가 정신을 빼놓은 까닭을 얘기하니 한유 역시 시인이었는지라 함께 고민하고 '두드릴 고'가 낫겠다고 말한 것이 퇴고의 유래가 되었다.


고쳐쓰기를 할 때는 진솔성, 주체성, 명확성, 타당성, 구체성을 토대로 검토한다.

이것은 내용에서 고칠 부분을 찾는 것인데 무엇보다 진솔성이 중요하다.

진솔성이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란 것으로 진실하고 솔직한가? 하는 문제이다.

아이의 솔직한 글을 보고 있노라면 글을 잘 쓰고 못쓰고 가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그냥 아이의 글 속에서 그 아이의 생각을, 혹은 삶의 태도를, 삶 속의 에피소드를 느끼게 되면서  피식 웃기도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한다.


<할머니의 닭 두 마리>를 수업하고 편지로 글쓰기를 했다.

이모할머니가 뱀을 잡아 닭에게 먹인 후 닭 두 마리를 라면상자에 싸들고 재호집에 온 이야기다.

닭을 가져오길래 닭을 잡아 주려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재호 학교 사육장을 빌려 닭 두 마리를 임시로 키우면서 달걀을 낳을 때마다 보물처럼 귀하게 가져와 재호 할머니에게 먹이는 이모할머니 이야기다.

독후 활동으로 상상해서 할머니가 이모할머니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보자고 했다.


초등학교2학년인 O군은 이렇게 비뚤비뚤 적어 내려갔다.


마이 동생에게

이 녀석아  닭을 이제부터 우리 집에 들고 오지 마.

들고 오면 냠냠 맛있게 먹을 테다.

그리고 이 녀석, 어딜 감히 나 몰래 뱀을 잡아?

이제부터 로켓배송 아니면 마트에서 사 와.

알겠지?



동생이  언니에게 주려고 닭에게 뱀을 먹여 약닭을 만들어 달걀을 먹여준 동생한테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보라고 했더니 호통을 치고 있다.

그러나 진솔하지 않은가?

2학년 남자아이는 편지도 쓰지 않겠지만 솔직한 자기 마음을 담는다면 장난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체성 역시 자기 다운 모습이다. 자기 생각, 자기 관점의 글을 지향한다.

거기에다 자기 경험을 녹여 예를 들어준다면 구체성을 확보할 것이다.

문장은 길게 적지 않는다. 문장 하나에 생각 하나를 담는다. 그러면 문장은 꼬이지 않고 명확성을 확보하게 된다.

주장을 쓸 때는 타당한 근거를 들어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렇게 내용적인 피드백을 통해 자기 생각을 글이라는 그릇 속에 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첨삭은 빨간펜으로 휘젓지 않는다. 나의 기본원칙이다. 아이들의 글은 부족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생각을 끙끙거리며 표현한 아이들의 노력을 존중하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피드백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로 하고 스스로 고치게 하고 그다음 읽어 보게 함으로써 자기 글에 남이 손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그 글은 누가 뭐래도 아이들의 글이므로.


아이들은 나의 수업을 통해 매주 한 번의 초고를 작성한다. 특별히 빛나는 문학적 성과를 보이는 작품도 없다. 현실에 필요한 촌철살인적인 경구도 없는 평범한 글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는 습관을 갖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이 평생 가져가야 할 글쓰기의 토대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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