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닫은 아이에게 묻는 질문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렸을 때의 나는 말수가 없는 아이였다. 수다쟁이 언니의 별명은 '촉새'였는데, 언니는 이 별명을 질색하면서 싫어했다. 촉새가 뭐냐고 물으니 새 이름 이긴 한데 말이 빠르고 다소 경박한 느낌이 나기 때문에 수다쟁이를 가리킨다고 했다. 언니는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었고 논리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이다. 촉새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딱따구리를 떠올렸다. 지금 와서 보니 촉새가 딱따구리의 방언이란다. 반면에 나는 별명조차도 없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유난히 나를 사랑한 이모가 있었는데, 나를 볼 때마다 말 한번 해보라고 쫓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입에서 군내가 날 거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민물조개처럼 입을 닫고 좀처럼 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걸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긴 했지만 아이들이 민물조개처럼 입을 닫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토론수업은 아이의 입에서 여러 가지 말을 듣게 되는 재미가 있다.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고 또 물으면서 점점 책의 주제로 들어가는 묘미가 있다.
아이 혼자 수업하는 경우도 많은데, 아이가 예전의 나의 모습처럼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을 때 논술선생님은 힘들 수밖에 없다.
왜 말을 하지 않는가?
사람마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말하기 싫을 때 말을 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인정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또 처음 접하는 어른에 대한 경계심일 수도 있다. 어른에게 자신의 의견이 묵살당하곤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는 책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거나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질문을 받을까 봐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책에 대한 질문보다는 책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물어봐주면 좋다. 나름대로의 입을 열지 않는 아이에 대해 진단하고 처방하는 노하우가 나에겐 있다.
Y는 3학년 남자 아이다.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글도 써보지 않아서 맞춤법,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책을 읽기는 했으나 행간의 의미파악이 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무슨 책이었는지 파악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선생님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지치고 축 늘어진 어깨로 글자를 깨작깨작 쓰는 아이였다. Y는 논술시간이 많이 힘들 것이다.
나는 Y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넌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Y는 여전히 눈을 내리 깔고 대답을 한다
"사람은 죽지 않아요. 전 봤어요"
"뭘?"
의외의 대답에 온 신경이 팽팽해진다
"할아버지 제삿날에 온 가족들이 모였는데 한밤중에 할아버지 모습을 봤어요"
"왓뜨?"
얘가 이런 기상천외의 말을 할 줄이야.
"그럼 할아버지 혼령이 나타났다는 거야?"
"혼령이 뭐예요?"
Y가 처음 질문 하는 날이다.
이런 능동적인 대화. 고무적이다.
"그러니까 혼과 영이지. 영혼 말이야.
육체와 똑같이 생긴 영혼이 육체 밖으로 스~윽 빠져나온다는 거지. 물론 육체는 돌아가시면 흙이 되거나 태워 뼈만 남기지만 말이야"
이렇게 얘기하니 Y도 그렇다는 것에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할아버지 혼령을 본 게 꿈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감히 아이가 봤다는 것에 초를 칠 이유는 없다. 나는 아이의 모든 말을 믿어주고 아이가 더 자신 있게 얘기하도록 말을 시킬 뿐이다.
Y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얘기해 준다. 아빠와 야외에 있었는데 UFO가 지나간 것을 봤다는 것이다.
'왓뜨' -속으로 놀란 소리.
"진짜 특이한 체험을 했네. 난 평생 그런 거 본 적 없는데 넌 정말 희한한 경험을 했구나"
"이걸 본 것은 저밖에 없어요. 커다랗고 환한 빛을 내는 UFO가 빛의 속도로 사라져 버렸죠.
그래서 나는 외계인의 존재도 믿어요"
Y는 영적체험을 했기 때문에 세상의 불가사의에 대한 것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보탠다
"저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만 같아요"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내가 죽지 않을 거라 여겼다. 어떤 아이는 보자기를 매달고 고층 아파트에서 "슈퍼맨~~"이라고 외쳤다지 않는가?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생명의 힘이 굉장히 왕성하기 때문에 자신이 영원히 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도 고층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당부를 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중요한 것은 Y는 입을 열었다. 한 번만 입을 열게 되면 그 후는 걱정할 게 없다.
아무하고도 공유하지 못한 어떤 비밀을 나눈 사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마음을 나눈 대화 5분은 마음을 닫은 채 얘기하는 5시간보다 더 큰 힘이 있다.
Y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인간은 묘한 존재인 것 같다. 학교에서 온통 배우는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등의 교과서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를 배우는데, 왜 영적인 것은 배우지 않는 걸까?
죽음 저 너머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교과서로 만들지 못하는 걸까?
Y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피드백해 줄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 아이의 순진한 발상이라고 무시받지나 않았을까?
삶에서 영적인 인식도 물질적인 인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영적인 인식에 기반하여 자신의 삶을 꾸리게 마련이다.
어떤 아이들은 영적존재를 믿지 않는다. 죽으면 소멸할 뿐이라고 여긴다. 이렇게라도 영적인 인식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여기서부터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경험을 통해 각자의 답을 찾아갈 것이다. 나는 Y가 사유하는 어른이 될 거라 생각하며 그의 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