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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Aug 15. 2023

하나밖에 없는 입사동기

우리의 삶은 익어 가는 중

 P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8년 전이다. 입사 동기라고는 딱 그녀와 나. 둘 뿐이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늘씬한 미인형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쳐다보는데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사모님. 저 00이에요. 같은 교회에  다니는데 모르시겠어요?"

그제야 교회 여청년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제야 낯이 익은 이유를 알겠네요. 앞으로 잘해 봐요."

으이그. 같은 교회식구도 못 알아보고.


그 후 우리는 단짝이 되어 책도 함께 읽고, 질문도 해가면서 독서지도사로서 역량을 갖추어 나갔다.

청년인 줄 알았는데 괜찮은 신랑감을 만나 결혼도 했다고 했다.

유부녀라 하니 더 편하게 느껴졌다.

얼굴을 알고 보니 교회에서도 더 자주 만나게 된다.

P선생님은 남편이 PC방을 차리게 되었다며 일손을 보태야 한다고 했다. 독서지도사는 일 년 조금 넘어 그만두었다.

사업가의 아내.

썩 내키지 않는 포지션이다.

물론 내가 내키지 않을 이유야 없겠지만 어쩐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직업으로서는 그녀와 나는 인연이 끊겼고, 교회에서는 그녀가 힘들어한다는 소리를 건너 건너 듣곤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때 P선생님을 찻집에서 만난 적 있다.

남편의 PC방은 코로나로 인해 매출이 급감한 상태였지만 월세는 나가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도 다 내보낸 상태라 아르바이트 빈자리는 P선생님이 채워야 했다.

남편과의 불화는 잦았고 그 와중에 남편은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있었으므로 PC방은 그녀가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녀의 입에서는 차라리 이혼을 하고 싶다고까지 했다. 남편과 맞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코로나는 소규모 사업체를 강도 5 이상의 지진처럼

지반부터 흔들어댄 모양이다. 나는 마스크 착용하고 아이들과 1대 1로 대면수업을 하면서 버텼다. 정 안되면 온라인수업으로 돌려가면서 휴회인원을 최대한 잘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P선생님은 코로나에 이를 갈 정도로 힘들어했다. 시대의 이슈에 희생이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누구에게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큰 파도로 다가와 상처가 나기도 했고, 누구에게는 잔파도가 되어 가볍게 파도 위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다.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예요.  잘 계셨어요?

선생님 인스타를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아직 일을 하고 계시네요? 우리 한번 만나요"

P선생님의 목소리였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던 차에 무척 반가웠다.


P선생님은 내가 논술지도하는 어떤 아이의 학교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이게 웬 우연.

그녀는 교육학을 전공했고, 초등교사자격증을 따두었다고 한다. 계약직이긴 하지만 학교선생님이 된 그녀를 보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PC방  처분도 잘했고, 남편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으며 자신도 일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써붙이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어려울 때 내가 해주었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사모님은 명언을 해주셨어요.

서로 어려울 때 이혼을 꺼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나이가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하셨어요. 어려움을 서로 극복하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 간다고요"

그녀는 남편이 힘들 때 곁을 지켰고 남편 또한 어려움을 넘기면서 아내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서로 신뢰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고, 코로나가 꼭 다 나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좋은 일을 경험하면 경험이, 나쁜 일을 경험하면 교훈이 된다'라고 하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다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 두고 진짜 어른이 되도록 계속 노력할 거라고 했다.


예민해서 건들면 터질 것 같았던 그녀가 여유를 찾은 듯 보였다. 성격도 둥글둥글해진 것 같다. 나도 독서지도선생님에서 브런치작가로 승인받아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하니 그녀는 잘했다고 손뼉을 쳐주었다.


또 언제 만날지 모르지만 스타벅스 앞에서 두 손을 꼭 붙잡고 우리 된장, 고추장같이 세월이 갈수록 맛깔난 사람이 되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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