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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Aug 20. 2023

소풍

경쾌한 스탭이 필요해

밀양 낙동강 유역에서

일요일 오후, 가만있어도 땀이 배이는 무더운 여름이다. 시간이 남는 날은 무얼 하면 좋을까?

일요일 오후 시간을 뭉텅 거려 강으로 가서 쓰고 오련다.

남편은 고기 구울 준비를 하고, 항정살과 상치, 고추, 마늘을 준비한다.

나는 김치, 물, 접시, 가스버너, 프라이팬, 가위, 집게를 준비한다.

매주 일요일 오후는 강을 따라 드라이브하다가 마땅한 그늘이 보이면 자리를 잡는다.

모든 것은 말없이 숙련된 솜씨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남편은 말없이 고기를 굽고, 나는 채소를 씻는다.

우리 인생이 너무 즐겁지 않냐고 농을 걸어본다. 남편은 파란만장한 질곡이 많았음을 안다. 그래도 지나고 나니 다 즐겁지 않냐고 물어본다.

남편이 웃는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기억'이라는 데생 위에  '의미'라는 색채가 더해져서 더할 나위 없는 예술품이 된다.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억지로 즐겁다고 할 필요는 없다.

당신과 내가 건강하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따라 걷는 것을 지켜본다는 게 행복한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문득 문정왕후의 장자방이었던 난정이 얘기를 꺼낸다.

명종 때 권세를 누리던 난정이가 문정왕후가 죽은 후 실권을 잃고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의금부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난정이는 지레 겁을 먹고, 가지고 있던 독으로 목숨을 끊었는데 의금부 사람은 난정이와 전혀 무관하게 유배지로 온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뭐? 지나가던 나그네? 하필 난정이 있는 유배지에 의금부 사람이? 인생은 자잘한 오해와 우연 속에서 비극을 만들기도 하나보다.


인생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랬다.


오해로 인한 섣부른 자살이라니ᆢ분명 비극인데도 희극 같아 보이기도 한다. 권세라는 것은 꽃으로 많이 비유한다. 한 시대를 권력으로 주무르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 한 여인의 삶을 얘기한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이랬다.


아무리 이쁜 꽃도 열 흘이면 지고, 권세라고 해봤자 십 년을 못 간다고 했다.

그러니 어떻게 사는 게 행복이겠는가?

마음을 비우고 하루하루 사는 것에 만족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많이 웃고, 대화하며, 사랑하고,

안분지족 하면서 살아야겠다.


나는 적당한 도전이 적당한 긴장감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목표를 이룬다는 것이 큰 만족감을 주지만,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몇 배의 큰 만족감을 준다는 것도 안다.

엊그제 한국사 시험을 치러 갔다. 

한 달가량의 공부를 통해 주변의 잡다한 생각을 물리치고 평안한 집중력을 즐겼다.

조만간 결과가 나오면 만족감을 느끼겠지만 공부할 때의 만족감보다는 덜할 것이다.

나는 어느새 공부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이 세상과는 다른 지향점이라 문득 내가 바보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어쩔 수 없다. 남편은 요즘 말수가 줄었고, 사색이 늘었고, 한숨이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갈수록 경쾌해지고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같이 나이 먹어 가면서 혼자 무게 잡다니ᆢ 너무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남편은 저녁에 남원에 가서 물고기를 잡고 싶다고 했다. 개울가에서 모든 시름을 던지고 대신 물고기를 잡아 올 것이다.

경쾌하고 가벼운 스탭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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