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습관적으로 구독 중인 브런치글들이 올라오는지 자주 폰을 보게 된다.펜모양의 아이콘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모른다.
알림음은 없지만 브런치의 머리글자인 'b'를 멋들어지게 만든 아이콘이 뜨면, 설레는 마음으로 제목을 살짝 엿보게 된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소중한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참 신기하고 놀라운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자신이 쓴 글을 단 몇 분만에 출판사를 거치지도 않고, 편집부원의 글 교정도 거치지 않은 채 세상밖으로 용감히 내보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단 몇 분만에 독자의 피드백을 받는 세계에 살고 있으니 이런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위대한 작가들도 이런 시대에 사는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숙성되지 못한 생각들을 나열한 채, 문장마저 그럴싸한 비문으로 이루어진 나의 글들을 세상에 내보낸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절로 난다.
이렇게 간이 커도 되나?
그래도 모방심리가 강한 나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나도 비슷한 뭐라도 긁적거리고 싶어 안달을 하게 된다. 이런 내 모습을 권정생 선생님은 하늘에서 뭐라고 하실까?
'글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니, 안달복달하지 마세요. 당신의 모습을 진실하게 써 내려가면 그만이라오'평생을 진실하게 책을 쓰신 분이시니 이렇게 답변하지 않았을까?
혹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리면 좀 어떻소? 글이란 생각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오. 우주를 담을 만큼 큰 생각주머니를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한 일이라오' 평생 어린이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심어 주신 분이니까 이렇게 격려해 주지 않았을까?
권정생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 와서는 병과 가난으로 점철된 삶을 사셨다.
교회 종지기를 하면서 굶는 것도 다반사였는데 귀한 종이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그래도 친구가 원고지라도 사주었기 때문에 그는 책을 쓸 수 있었다.
평생 병마로 고통을 당했지만 마음만은 천사처럼 예쁘신 분.
1969년에 '강아지 똥'으로 등단한 이래 '몽실언니', '길 아저씨 손 아저씨','밥데기 죽데기' 등을 쓰셨고, 글을 다 써놓으면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님이 찾아와 원고를 들고 가셔서 출판사에 보내시곤 했단다. 이오덕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가난하고 병든 권정생선생님이 출판사에 본인의 글을 기고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릴 때 나에게 '원고료'라는 말이 참 매혹적으로 들렸다. 권정생 선생님은 원고료를 받으셨을까? 기자가 아니니 원고료도 없었을 것이다. 책이 잘 팔려 출판사에서 선생님께 인세를 준 적 있었는데, 권정생 선생님은 인세는 무슨 인세냐며 어린이가 사 본 책값이면 어린이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끝끝내 인세를 거부했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 유언장에 인세를 어린이에게 돌려놓았고 어린이재단이 설립되었다고 들었다.평생 가난하게 사셨으면서 이런 결단이 가능한 걸까?
가난하고 외로운 권정생 선생님 곁에 이오덕 선생님이 계셨다.
나이 차도 꽤 났는데 서로 존칭을 쓰며 우정을 다졌다고 하니 참 아름다운 인연이다 싶다. 이오덕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권정생작가도 없었을 것이다. 원고지도 사주고, 책도 출판해 주시고, 외로움도 달래 주신 벗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 안동시 생가에는 권정생 선생님을 기리는 권정생어린이문학관이 있다.
잘 팔리는 책을 써서 인기를 누리고, 돈을 벌고 싶은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인지상정이다. 많은 분들의 좋은 글을 공짜로 읽을 수 있는 브런치도 좋고, 패기 있고 열정 넘치는 젊은 작가의 글도 좋다. 그러나 윤동주시인이 너무 쉽게 써진 시가 부끄러웠던 것처럼 나는 너무 쉽게 발행하는 게 부끄러워 주춤거려질 때가 있다,
그리고 세상에 좋은 글들이 차고도 넘치는데 부족한 나까지 덩달아 글을 발행하는 게 맞나 싶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의 진정한 작가.
권정생 선생님을 종종 생각해야겠다.
사람 나고 글났지, 글 나고 사람 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숙성되어 영글어진다면 글도 더불어 아름답게 차오를 것이다. 글과 함께 나의 삶도 성숙해지기 위해서 부족한 글이지만 써내려 가야겠다.
권정생 선생님이 나에게 해줬을 법한 격려를 스스로 하면서 부끄러운 글을 발행한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