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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Jul 06. 2023

삶의 무게를 빼고 경쾌하게

삶은 당신이 바라보는 감정의 무게이다

 내가 살면서 ‘큰 일이다’라고 말할 때면 어머니는 ‘그것이 뭣이 큰일이냐?’라고 핀잔을 주셨다. 함부로 큰 일이라 말하지 말라 단단히 주의를 주셨는데 그 이후로 나는 왠 만한 일들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사자성어 중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가장 인생의 묘미를 잘 관통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새옹지마란 세상만사가 다 변화가 많아서 어느 것이 화가 될지, 어느 것이 복이 될지 모른다는 말이다.


 드라마를 볼 때면 어떤 일에 호들갑을 떠는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그게 저렇게 놀라고 난리법석을 떨 일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고 문득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들을 보면 문득 ‘부럽다’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애오욕’의 칠정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인생을 풍성하게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철학자는 잘 알지 못하지만 어느 날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에 대한 강의를 유튜브에서 듣게 되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니 왠지 불경하다는 인상을 어릴 때부터 받아온 인물이라 이런 선입견으로 여타 다른 무신론자의 책은 많이 읽으면서도 유독 니체의 책은 꺼려했다. 그는 철학자면서도 문학적이다. 그는 몸이 유독 병약했는데, 어느 날 마부가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순간 정신발작이 일으켰다고 한다. 사람은 동물들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잡아먹을 요량으로 따로 가둬두고 키우고, 일을 시킬 요량으로 소나 말을 먹이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죽이거나 살리거나 한다. 지리산이나 백두산에 호랑이나 늑대가 멸종되었다는 말은 곧 사람의 요구에 따라 동물의 생태계까지 좌지우지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인간 중에 니체는 말의 고통에 기꺼이 괴로워했다.

 니체는 왜 말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에 크게 발작을 하며 그 말과 자신을 동일시했을까? 생각해 보면서 니체야말로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며 인생의 고통과 즐거움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면 저울의 추는 지극히 사람의 감정의 무게를 달 것이다. 나는 어떤 것에 예민하고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는 문제가 삶을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이며 삶의 무게가 감정의 무게가 될 것이다.


 중학생 딸이 조퇴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열이 나는 것 같아 코로나로 의심되기에 속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보니 열은 나지 않았고 컨디션이 최고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결국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봐야 하겠지만 딸은 잠시동안의 의심으로 일곱 시간을 벌었다고 즐거워하고 있다. 일곱 시간을 죽이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일곱 시간을 죽이는 건 학교에 있는 친구들이란다. 많은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시간을 허비하면서 공상을 하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과 몇몇 친구들인데, 오늘같이 좋은 날은 공부하기보다는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분명 꾀병 같은 데 나는 먹는 즐거움까지 보태주겠다고 했다. 집에서 맛있는 파스타를 배달해 먹기로 했다. 나는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고 사는 중학생 딸이 밉지가 않다. 순간이야말로 영원을 쪼갠 시간이므로.


 딸이 사는 방식이 마치 니체의 철학과 닮았다고 얘기해 주었다. 니체는 화살처럼 목표를 향하여 자신을 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을 피로하고 피폐하게 두라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춤추듯 경쾌하게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긍정적이고 경괘한 안목으로 바라볼 때 우리 삶은 지극히 가벼운 것이 된다.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소소한 행복을 순간순간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딸의 방식이 나쁘진 않다. 혹시 삶의 무게에 눌리는 고통을 겪을 때가 온다면, 영원한 불행도, 영원한 행복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듯이, 삶의 고통에 괴로움이 생길 때마다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꺼내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과 어떤 처지에 있든지 내적인 충만함과 자부심으로 어려운 상황들을 지극히 가볍게도 볼 수 있는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지혜를 배우게 되리라.


 무라카미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이 일상인 되는 삶. 그리고 니체가 말한 화살을 쏘아 어떤 목표를 지향하여 가는 삶. 중학생 내 딸의 경쾌한 일탈. 이 모든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경쾌하게 스텝을 밟아가는 인생의 과정임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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